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천주교의 가르침은 우리들을 영생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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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9.*]

2006-04-25 ㅣ No.614

Q.

게시글 제목: 도대체 천주교는 누구를 위한 종교입니까?

게시처: 굿뉴스 신앙상담

작성일:  2006-04-24 오후 4:40:34

 

Q.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릴때부터 성당을 꾸준히 다녔습니다.

대학시절 주일학교 교사도 하였고 각종 청년 활동도 많이 하면서 나름대로의 신앙을 쌓아갔습니다.

결혼하고 사회생활하면서 활동하기는 어려워져 미사만 겨우 참례하는 식으로 성당을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천주교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는데 하느님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천주교를 이끈다는 종교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상한 논리의 교리가 신자들을 옭아매고 있어 도대체 이런 교리는 신자를 위한 교리인지 종교의 권위와 권력유지를 위한 교리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많은 의혹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과 아기 금지에 대한 것입니다. 원론적인 취지는 생명에 대해 하느님 이외에 그 누구도 만들지도 죽이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많은 불임환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안된다는 식으로 막기만 하고 있으니 너무나 답답합니다.

 

천주교가 처음 한국에 상륙했을때 제사가 금지되었고 갖은 박해속에서도 신자들이 그 교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허용했고 대신 조상에 대한 공경의 의미만을 부여하고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용하여 현재는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럼 제사를 금지하고 있던 시절에 마지못해 제사를 지낸 사람들은 죄를 지은 것이고 지금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까?

 

교회의 교리는 현재 시점에서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여 유동적으로 변화되고 있어 개신교와는 달리 술과 담배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공수정이나 시험과아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기도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낳을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불임부부들이 온종일 기도에만 전념해야 하는걸까요? 개신교에서 목사가 결혼하여 자녀를 가지도록 하는 것은 성경에 '자손을 번식하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독신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손을 번식하라는 성서말씀은 성직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모두 해당되는 것인데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자연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도록 하려는 노력이 왜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이외에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한다면 병에 걸려 있는 사람 역시 하느님께 맡겨 기도를 통해 고쳐야지 치료를 하면 안되지 않나요?

 

지금 제 가족중에 한사람이 불임 상황인데 그토록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지만 말도되지 않는 천주교교리에 묶여 시험관아기나 인공수정은 생각도 못한채 맨날 기도나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럴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과거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개신교와는 달리 성서에 대한 해석을 엄격하게 금지하여 일반 신자들이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분열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교리나 성서해석은 종교지도자들만이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과거에는 좋게 해석했지만 지금 보면 그들의 권위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라는 의심마저 듭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누구나 동감하는 것이고 따라서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기를 그토록 바라는 사람들 한테 지금과 같은 가혹한 금지를 통해 결국 아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가 나중에 그것을 슬그머니 허용해줄 경우 그 당시 아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럴땐 종교지도자들이 쉽게하는 말이 있죠. '하늘에서 보상 받을 것입니다....'

 

전 아직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맞는 교리를 신자들에게 맞춰주거나 융통성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되지 말도 되지 않는 기도의 힘만을 믿으라고 한다면 전 로또 당첨되도록 해달라고 매일 기도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도에 지나칠 정도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요?

 

죽어서의 세상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세상이 천국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현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그런 고통도 하느님께서 주신것이다라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천주교 회원수(?) 늘리려는 종교지도자가 있다면 엄연히 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만 되게 한다는 말 역시도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으며 그렇게 하도록 자유의지를 부여 하셨고 그것을 항상 곁에서 바라만 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길 바라며 공부는 안하고 기도하는 것이나 불임부부가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만하는 것이나 뭐가 차이가 있습니까? 정말로 답답한고 한심한 천주교 교리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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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찬미 예수님!

 

형제님께서 불임과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 특히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대한 의문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여러가지를 비판적 시각에서 문제점이라면서 언급을 하신듯 합니다. 그러나 예를 들자면,

 

주신 비판적 게시글에서, "과거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개신교와는 달리 성서에 대한 해석을 엄격하게 금지하여 일반 신자들이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분열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교리나 성서해석은 종교지도자들만이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과거에는 좋게 해석했지만 지금 보면 그들의 권위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라는 의심마저 듭니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가톨릭 신자인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문제가 많습니다.

 

즉, 성서에 대한 올바를 해석권은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에 있는 것이지, 말씀하신 바와 같이 "종교지도자" 누구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교리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이런 개신교측의 모함성 말씀을 하시는지..

 

[

내용 추가: 다음의 파란색 링크설정을 클릭하여 제 12항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제 12항을 발췌하였습니다.

 

성서 해석
12.
하느님께서는 성서에서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방식으로 말씀하셨기에6) 성서 해석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성서 저자들이 정말로 뜻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며, 하느님께서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


성서 저자들의 진술 의도를 알아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문학 유형’들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 예언적, 시적 양식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 해석자들은 성서 저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그 시대와 문화의 여러 조건들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유형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려 하였고 또 표현한 그 뜻을 연구해야 한다.7) 성서 저자가 글로써 주장하고자 한 것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 쓰이던 그 지방 고유의 사고 방식, 언어 방식, 설명 방식 그리고 사람들이 상호 교류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방식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8)


그러나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9) 성서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성서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성서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서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 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서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10)

 

다음은 위의 발췌문의 영문본입니다. 출처: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http://www.vatican.va/archive/hist_councils/ii_vatican_council/documents/vat-ii_const_19651118_dei-verbum_en.html

 

12. However, since God speaks in Sacred Scripture through men in human fashion, (6) the interpreter of Sacred Scripture, in order to see clearly what God wanted to communicate to us, should carefully investigate what meaning the sacred writers really intended, and what God wanted to manifest by means of their words.

 

To search out the intention of the sacred writers, attention should be given, among other things, to "literary forms." For truth is set forth and expressed differently in texts which are variously historical, prophetic, poetic, or of other forms of discourse. The interpreter must investigate what meaning the sacred writer intended to express and actually expressed in particular circumstances by using contemporary literary forms in accordance with the situation of his own time and culture. (7) For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what the sacred author wanted to assert, due attention must be paid to the customary and characteristic styles of feeling, speaking and narrating which prevailed at the time of the sacred writer, and to the patterns men normally employed at that period in their everyday dealings with one another. (8)

 

But, since Holy Scripture must be read and interpreted in the sacred spirit in which it was written, (9) no less serious attention must be given to the content and unity of the whole of Scripture if the meaning of the sacred texts is to be correctly worked out. The living tradition of the whole Church must be taken into account along with the harmony which exists between elements of the faith. It is the task of exegetes to work according to these rules toward a better understanding and explanation of the meaning of Sacred Scripture, so that through preparatory study the judgment of the Church may mature. For all of what has been said about the way of interpreting Scripture is subject finally to the judgment of the Church, which carries out the divine commission and ministry of guarding and interpreting the word of God. (10)

 

게시자 주: 위의 발췌문 일부에 파란색을 입힌 것은 게시자가 한 것임.

이상, 내용추가 끝.

]

 

하여튼, 상당한 부분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인간적인 시각, 즉 일방적인 시각, 에서 또 논리의 정당성을 위하여 그냥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적당히 섞어가며 주신 말씀이라, 설득력이 많이 결여 되어 있다는 말씀을 우선 드리면서, 차분히 다음의 입장에서 생각을 정리해 보시고 또 형제님께서 위에 쓴 글을 다시 한번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천주의 인류 구원 사업에 대한 의지가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에서, 지난 2000년간의 유구한 교회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2. 가톨릭 교회는 영생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세우신 단 하나의 교회이었고 또 앞으로도 단하나의 교회이어야 하므로, 교리체계 또한 단 하나이어야 한다.

 

3.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의지와 원죄 이후 죄로 물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역사의 전개와 그 완성과정이라는 절대 불변의 진리를 추구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4. 가톨릭 교회는, 천주의 거룩한 의지(Divine Will)에 합당한 것만 진리라고 인정하며 또 교회의 신앙을 걸고 이들만을 진리라고 이 세상에 공포하며 가르친다.

 

5. 가톨릭 교회의 사제 및 수도자들은, 제 1 - 4 항의 내용을 이 세상에 제대로 전하고 또 스스로 생활화 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천주께 봉헌한 거룩한 분들이시다.

 

6. 가톨릭 교회의 신자들은, 제 1 - 4 항의 내용을 믿으며 또한 살아있는 동안에 제 5항의 내용 또한 신앙으로 굳게 믿는 분들이시다.

 

7. 우리들은 알든 모르든 간에 최선책, 차선책, 차차선책, 차차차선책을 선택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는 오직 절대 진리에 가장 가까운 우리들의 최선책만이 언급될 수 밖에 없다.

 

8.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가톨릭 사제, 수도자, 남녀 노소 평신자 구분 없이, 모두를 위한 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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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님께서 주신 비판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가.

아직은 나이가 젊기 때문인듯, 동연배인 청년 사제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많은 실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형제님께서 좀 더 나이가 들면 청년 사제의 인간적 갈등과 고민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해 하는 마음으로 거듭날 것이므로, 형제님께서 스스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도록 하는 것이 최선인 듯 합니다. 

 

나.

동,서양의 문화적 장벽으로 인하여 조상제사 문제로 인하여 최소한 거의 3만명 이상의 신자가 우리나라에서 순교하였는데,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으나, 주신 비판의 핵심이 이 문제가 아닌 듯 싶어,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신 교황님께서 특별히 우리 민족에게 청하신 화해와 용서의 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05년도 봄에 선종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동양 사회 (여기서는 주로 우리나라와 중국)에 조상제사와 관련하여 발생하였던 "교회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가톨릭 교회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교황청을 떠나 103위 순교자에 대한 시성식을 1984년 초여름에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집전하셨습니다.

 

다.

불임 문제는, 기본적으로 아래의 만레사님 글에서 잘 언급하셨습니다만, 위의 제 1 - 8 항의 내용을 상기하면서 조금 더 추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1. 태어날 때부터 난세포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기에 전혀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의 비율이 10% 정도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이 전혀 아닌 이 경우에 해당하면 어떠한 인간적인 노력으로도 임신 불가능하기에, 이런 종류의 불임을 사유를 가진 자매님께서는 "주님의 십자가"로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다-2. 여성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과자,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섭취한 관계, 즉 섭생의 영향으로, 난세포는 가지고 있으나 배란 시점 이전에 제대로 발육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여, 설사 배란이 된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부부관계로서는 도저히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점차로 늘어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의 잘못이겠지만, 그 댓가를 자녀들이 치루게 되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다-3. 남성들 또한 성장하는 과정에서 환경 호르몬을 포함한 인스턴트 식품 (즉, 공장에서 가공과정을 거쳐 이윤을 목적으로 시판되는 모든 식품)을 많이 섭생하여, 설사 정상적인 성숙한 난자가 배란된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부부관계로서는 도저히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점차로 늘어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의 잘못이겠지만, 역시 그 댓가를 자녀들이 치루게 되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다-4.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 위하여 가임 적령기를 지나서 결혼을 하게 되면, 천주께서 이미 정해두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진행되는 임신 자체가 점점 불가능하게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입니다만, 자녀를 4명 정도 두려면 한 8년 혹은 9년 정도를 자녀의 출산을 위하여 부부가 합심하여 인내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5. 설상 가상으로, 이런 저런 세속적인 이유로 자녀는 가임 적령기를 지나 늦게 결혼하여 가지고자 하면서도, 배우자될 사람은 붙잡아 두고 싶어 연애기간 동안 여성이 피임을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더 악화되기에, 위의 다-4항이 한층 더 심화되어 결혼 후에 정작에 자녀를 가지고자 아무리 노력하여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서 나중에 울고 불고하는 것을 그동안 주변에서 좀 많이 보아왔습니다. 

 

다-6. 술과 담배, 커피 등의 기호식품을 좋아하는 여성의 경우에 있어서는 임신과 관련된 위의 각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것 또한 의사들이 주로 던지는 매우 심각한 경고들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다-7. 적령기에 결혼도 하고 또 부부관계에 아무런 문제도 없으나, 예를 들어, 자궁암 등의 이유로 자궁적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는 아무리 기도를 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수가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해서,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불임 자매님이 위의 어느 경우 혹은 위에 언급하지 않은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지 또한 잘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라.

이제 자녀를 가지는 것에 대한 교황청 제공 가톨릭 교리서의 내용을 살펴 보도록 합시다. 

 

라-1.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 제 2376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ttp://222.109.34.30/pds/bishop_docu/CATECHISMUS/CATECHISMUS_03_2.htm#i2401

 

2376 부부가 아닌 제삼자의 개입(정자나 난자의 제공, 자궁 대여)으로 부부의 분리를 유발하는 기술은 매우 파렴치한 일이다. (이종[異種]의 인공 수정과 착상 같은) 그러한 기술은 혼인으로 맺어지고 부모라고 알고 있는 남녀에게서 태어날 아기의 권리를 침해한다. 이 기술은 “오로지 서로를 통하여 부모가 되는 부부의 배타적인 권리”127)를 저버린다.

 

이 조항에 해당하는 영문본 내용은 다음과 같으니, 올바른 내용 이해를 위하여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Source: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86.HTM

 

2376 Techniques that entail the dissociation of husband and wife, by the intrusion of a person other than the couple (donation of sperm or ovum, surrogate uterus), are gravely immoral. These techniques (heterologous artificial insemination and fertilization) infringe the child's right to be born of a father and mother known to him and bound to each other by marriage. They betray the spouses' "right to become a father and a mother only through each other.

 

게시자 주: 대리모를 통한 자식 가지기 혹은 다른 남성의 씨앗을 받는 것이, 가톨릭 윤리관에 의하면, 매우 비도덕적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라-2.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 제 2377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377 이런 기술들은 오로지 부부 사이에서만 쓰인다면(상동[相同]의 인공 수정과 착상), 아마도 덜 비난할 만한 것이 될지는 몰라도,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 기술은 성행위를 출산 행위에서 분리시킨다. 이 경우에 아기가 생겨나게 하는 행위는 더 이상 두 사람이 서로를 내어 주는 행위가 아니라, “의사나 생물학자의 기술에 배아의 생명과 신원을 내맡기는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기술이 인격적 인간의 기원과 운명을 지배하게 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이런 기술의 지배야말로 부모나 자녀에게 공통적이어야 할 존엄성과 평등의 원칙을 거스르는 일이다.”128) “도덕적 견지에서 볼 때, 부부의 일치를 특정하게 표현하는 부부의 독특한 행위의 결과가 아닌 출산은 출산 고유의 도덕적 측면에서 온전성이 결여된 것이다.……부부 행위의 참뜻과 인간의 유일성에 대한 존중의 상관 관계가 존중될 때에만 인간 품위에 알맞는 출산이 가능한 것이다.”129)

 

 이 조항에 해당하는 영문본 내용은 다음과 같으니, 올바른 내용 이해를 위하여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377 Techniques involving only the married couple (homologous artificial insemination and fertilization) are perhaps less reprehensible, yet remain morally unacceptable. They dissociate the sexual act from the procreative act. the act which brings the child into existence is no longer an act by which two persons give themselves to one another, but one that "entrusts the life and identity of the embryo into the power of doctors and biologists and establishes the domination of technology over the origin and destiny of the human person. Such a relationship of domination is in itself contrary to the dignity and equality that must be common to parents and children. Under the moral aspect procreation is deprived of its proper perfection when it is not willed as the fruit of the conjugal act, that is to say, of the specific act of the spouses' union .... Only respect for the link between the meanings of the conjugal act and respect for the unity of the human being make possible procreation in conformity with the dignity of the person.

 

게시자 주: 부부사이에 임신이 잘 되지 않아 인공수정 등을 하는 것에 대하여는, 위의 제 2376 조항에서와 같은 정도의 심각한 수준의 비도덕적은 아니라 하더라도, 여전히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한 임신이 아니므로, 가톨릭 윤리관에 의하면 비도덕적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라-3. 위의 제 7항의 내용과 함께 라-1항 및 라-2항의 내용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게시자 주: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구하러 오지 않고 죄인을 구하러 왔다"고 직접 말씀하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특히, 가톨릭 교리서 제 2376조항과 2377 조항에서는 다른 두 종류에 인공수정 방식에 각 각에 대하여 비도덕적이라고 언급하는 데 있어서도 정도의 차이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비도덕적이라고 지적을 하면서도, 더 나아가, "인공수정을 무조건적으로 금한다"는 표현을 교리서에 명기하지 않은 것 또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라-4. 다음의 내용은 가톨릭 교리서 제 2376 조항 및 2377 조항에 대한 미국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려진 미국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중간에 한 줄 정도가 오타로 들어가 있으나, 내용이해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피임과 인공 유산, 인공수정 등의 문제가 우리사회보다 훨씬 일찍 대두된 사회의 주교회의 입장이므로, 참고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 인터넷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http://www.usccb.org/prolife/tdocs/part2.shtml (클릭하십시요)

 

라-5. 가톨릭 교리서 제 2378조항에서는, 자녀는 모두 천주께서 주시는 고귀한 선물이므로 우리들이 자녀들을 잘 보살펴야할 의무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2378 자녀는 당연한 어떤 것이 아니라 선물이다. ‘혼인의 가장 뛰어난 선물’은 인간이다. 자녀는 소유물일 수 없다. 이른바 ‘자녀를 가질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한다면, 자녀를 소유물로 보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자녀만이 참된 권리를 갖는다. 곧, 자녀는 “부모에게 고유한 부부 사랑의 행위가 맺는 결실이 되는 권리와, 또한 임신되는 순간부터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130)를 가지고 있다.

 

2378 A child is not something owed to one, but is a gift. the "supreme gift of marriage" is a human person. A child may not be considered a piece of property, an idea to which an alleged "right to a child" would lead. In this area, only the child possesses genuine rights: the right "to be the fruit of the specific act of the conjugal love of his parents," and "the right to be respected as a person from the moment of his conception.

 

라-6. 가톨릭 교리서 제 2379조항에서는, 불임이 절대적 악이 아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조항은 위의 다-1항의 경우 혹은 다-7항의 경우에 해당하는 자매님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79 복음은 육체적 출산 불능이 절대적 악이 아님을 보여 준다. 의학적인 모든 정당한 수단을 동원한 후에도 임신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부부는 모든 영적 출산의 근원인 주님의 십자가와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거나 타인에게 필요한 봉사를 함으로써 그들의 헌신을 드러낼 수 있다.

 

2379 The Gospel shows that physical sterility is not an absolute evil. Spouses who still suffer from infertility after exhausting legitimate medical procedures should unite themselves with the Lord's Cross, the source of all spiritual fecundity. They can give expression to their generosity by adopting abandoned children or performing demanding services for others.

 

 

조금 더 말씀 드렸으면 하는데, 지금 시간에 쫒겨 이 정도로 마무리 짓습니다.

 

좋은 답글 주신 만레사님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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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이하는, 만레사님께서 주신 답글과 원질문자의 답글, 그리고 또 만레사님께서 주신 답글입니다.

 

Re: Re:인공수정은 사실상은 낙태와 같습니다.

 

생명의 영역은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아니된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공수정을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만일 그런 이유로만 인공수정을 금지한다면 통상의 의료행위도 해서는 안되고 오로지 기도만 해야 겠지요.^^

 

일단 인공수정과는 달리 낙태가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여성의 몸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되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임신을 하지 못하는 이른바 불임부부들에게는 인공수정이 하나의 구원과도 같습니다. 인공수정은 결국 몸 속에서는 안되니 몸 밖에서 수정해서 자궁에 넣는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게만 알고 있을 따름이지 실제의 인공수정 시술과정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생명을 말살하는 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적어도 가톨릭의 가르침데로라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되는 순간은 온전한 '인간생명'이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몸 밖이던 몸 안이든 인간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이루어지고 '수정란'이 되면 결국 그 수정란이 자라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공수정의 경우는 실패 가능성 때문에 보통 단 하나의 수정란을 만들지 않습니다. 통상 여성의 몸에서 여러개의 난자를 추출하여 인공수정을 시도합니다. 이때 통상 하나가 아닌 여러개의 수정란이 만들어집니다.

 

통상적으로는 3-4개 정도의 수정란을 만들어서 자궁에 넣어 착상되기를 운에 맡깁니다. 이때 하나도 착상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 알게 되셨듯이 여성의 몸으로 부터 난자를 추출하는 과정은 위험하고 고통스런 과정입니다. 물론 대개 불임부부는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감수하고 불임시술에 임하겠지만요. 물론 이런 고통은 주로 여성쪽이 거의 전적으로 부담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시술 과정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한번에 많은 난자를 추출하고 한번에 10개 이상의 수정란을 만들어서 착상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이때 만들어진 수정란을 모두 한꺼번에 착상시도 했다가 실패하면 난자 추출의 첫 과정부터 다시 시도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수정란을 미리 많이 만들어 두고 몇 번에 나누어서 착상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첫 착상 시도에서 실패하더라도 손 쉽게 재시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이런 방식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생명윤리가 적용되는 구미 선진국에서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여러번 착상을 시도할 수정란을 준비했다가 초반에 착상에 성공해버리면 나머지 수정란들이 소위 말하는 잉여 수정란으로 남아 버리게 됩니다.

 

착상을 시도했지만 착상에 실패하는 수정란들의 경우도 생명 윤리적인 관점에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인데 착상을 시도할 여지도 없이 남아버린 수정란들은 그야말로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설마 고민할 거 없이 그냥 폐기하면 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이런 인공수정 불임시술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의료인들은 물론 인간생명의 기준을 자궁에 착상된 이후부터라고 통상 주장하고 싶어합니다. 스스로를 인간을 죽이는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단지 종교 교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려운 생명 윤리의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생명공학의 발달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인간의 인위적 개입이 가능해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 만일 장래에 가톨릭에서 인공수정을 허용한다면 성실하게 한번에 하나의 수정란만 만들어서 착상을 시도하는 것일 겁니다.

 

아직 몸밖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유로 온전한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고 낙태라는 방법으로 살해되는 무수한 태아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적절한 조건만 계속 유지된다면 온전히 자라서 인간이 될 수 있는 수정란을 단지 아직 우리와 같은 다 자란 인간의 꼴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인권이 없는 단지 세포덩어리로 취급하고 함부로 폐기되고 줄기세포 추출의 실험대상으로 전용되거나 한다면 이는 엄연히 인간 생명을 살해하는 살인 행위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수정란이 인간이 아니고 세포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정할 권한이 있을까요?

 

우리모두가 한 때는 다 수정란이었습니다.

 

인공수정 불임시술 과정에서 폐기되는 수정란들과 차이가 있다면 억세게 운좋은 수정란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공수정을 해서라도 2세를 가지기를 원한다면 교회는 그걸 막을 아무런 물리적 사회적 제재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직도 교회의 교도권이 예전 중세때 처럼 세속적으로도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냥 여기시는 분들이 있는데 교회가 신자들에게 도데체 무얼 강요할 수 있나요? 교회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고 벌금을 물리기를 합니까? 아니면 감옥에 가두기를 합니까? 사형을 집행합니까? 하다못해 천국에 갈수 없다고 선언하기라도 합니까?

 

고작해야 영성체 같은 중요한 성사집행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누가 따라다니면서 감시하던가요?

 

성당에서 판공성사 받지 않고 판공성사표 제출하는 지 감시하던가요?

 

모두 양심에 따라 스스로 행동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정말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하느님 앞에서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교회의 지도자들이 뭐라고 하던 양심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하지만 교회의 지도자들이 도데체 왜 그러는지는 좀 성실하게 잘 알아보시고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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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원게시자의 만레사님 답글에 대한 답글]

 

답글 써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공수정의 구체적인 절차는 정확히 모르고 단지 사람이 생명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금지시 되고 있는줄 알고 있었습니다. 상세한 설명에 많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인공수정이 인간이 몸밖에서 수정시켜서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수정된 세포중에 착상되지 못한채 사라지는 세포가 있어 그것 때문에 낙태와 동일하다고 인정하여 금지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수정된 세포를 생명으로 보느냐 착상된 세포를 생명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공수정의 허용여부가 결정되는 것인데 일단 그점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고민해야될 숙제라 생각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회지도자에 관한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신교든 불교든 어느 종교가 강제성을 가지고 강요하고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단지 교리상으로 아니면 분위기 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도록 하고 본인의 양심에 의해 결정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우리 천주교가 가장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가장 깨끗한 종교라고는 생각합니다. 일부 개신교의 경우 겪어보았지만 유명한 교파의 경우 일종의 프랜차이즈 구조로 담임목사가 총회에 브랜드를 빌려 사용료를 내고 개업(?)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천주교는 교구와 같은 조직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관이기도 하지요.

 

저는 교회지도자 전부를 매도하는 것은 아닌데 과거 미사만 드리던때의 사제의 모습과 활동을 하면서 가깝게 지내면서 봐온 사제의 모습이 너무나 차이가 많이나서 과연 문제의 교회지도자가 일부 극소수인지 상당수인지 그것이 의문스럽습니다.

 

어떤 곳이든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특별한 케이스가 있기는 마련이라 그런 경우가 드물다면 그 집단 전체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이 비난의 대상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 대상의 수가 상당수에 이른다면 그때는 말이 달라지겠지요.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성당을 가면 역대 신부님 사진과 함께 역대 총회장 사진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그 본당에서 총회장이 돌아가자 본당 벽면 전체에 현수막을 걸었고 주임신부님께서 직접 그분의 업적을 미사때 기렸습니다. 이 분은 성당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셨던 분이지요.

 

어느 본당 주임신부님께서는 취미생활로 BMW오토바이를 장만하여 성당안에 금쪽같이 아끼면서 보관하고 있는데 공간 문제로 결국 성당 영안실을 없애고 오토바이 주차장을 만들어 보관하면서 쉬시는 날 즐겨 타시곤 합니다.

 

어느 신부님께서는 신형 고급 승용차를 모델이 바뀔때마다 구입하고 사제관에는 빔프로젝트를 비롯한 홈씨어터를 꾸며 놓고 명작 영화들을 감상하고 시간 날때마다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나름대로의 취미 활동을 즐기고 계십니다.

 

위의 내용을 보면 나쁜일을 하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그다지 비난받을 만한 일도 아니고요.

하지만 성직자로써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려고 하니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여러 본당에서 많이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실제 표본조사를 해보지 않아서 정확한 통계치를 알 수 는 없어 이 부분에 대한 신뢰성이 낮지만 저 개인적으로 겪거나 전해들은 많은 수의 교회지도자의 모습이 이런것이라 실망이 커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분들이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기도 더 열심히하고 생활도 더 훌륭한 건 사실이겠지요. '네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느냐?'라고 물으면 저 역시 들었던 돌맹이 내려 놓고 돌아가야지요.

 

 

 

제가 감히 사제를 비난할 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법이나 교리에 대해 잘잘못을 논할 처지도 아니지만 결국 교회는 저 같은 평신도를 위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는 원칙을 놓고 본다면 현 체계가 그다지 좋은 것 같지만은 않아보이네요.

 

저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교회가 올바른 길을 과연 걷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고 하느님을 등에 업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군림하려하는 그런 모습, 즉 교회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와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으로 인해 정말로 하느님만을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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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만레사님의 답글 계속]

교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공수정이 금지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부부간의 성관계의 온전성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합당하게 혼인한 부부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임신과 출산과 양육등을 수반합니다.

 

적어도 가톨릭에서는 하느님께서 이러한 부부사이의 성관계로부터 출발한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이 온전한 하나의 전체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신다고 믿습니다. 물론 성관계에 수반되는 쾌락도 포함해서입니다.

 

인위적인 의도없이 자연적인 이유로 중간에 과정이 끊어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인공 피임이나 낙태등으로 그 과정을 인위적으로 중간에서 가로 막을 수 없습니다.

 

낙태의 경우는 어쨌든 태아를 죽이는 살인행위이기 때문에 그 것으로도 심각한 죄이지만...

인공피임의 경우는 선뜻 그 금지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것을 인간이 함부로 조작하지 말라는 단순한 논리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성관계에서 오는 쾌락만 취하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책임과 의무는 배제하는 이기적인 행위이기 때문에도 죄가 됩니다.

 

서로 사귀고 있는 남녀 사이에서 "너랑 자고 싶다"는 말과 "너랑 아이를 가지고 싶다" 말의 차이를 아신다면 무슨 말인지 조금 납득이 가실 겁니다.

 

좌우지간 인공수정은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성관계 없이 인위적으로 수정을 하는 겁니다.

이런 인공수정에는 크게는 체내수정과 체외수정이 있는데...

통상적인 불임 시술로서의 인공수정은 보통 체외수정을 말합니다. 

소위 '시험관 아기'라고도 불리는 시술이죠.

 

일단 교회가 모든 종류의 인공수정을 금지하는 이유는 남녀간의 성관계가 배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수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수정에서 합당하고 진실된 성관계에 수반될 수 있는 남녀간의 육체적인 교류와 정신적이고 영적인 교감은 전혀 배제되어 버리고 단순히 기계적이고 생물학적인 과정만 남게 됩니다.

 

물론 서로 합당하게 혼인한 부부가 불임이라는 어려움에 처해서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하고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비록 육체적인 성관계는 없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한다면 그나마 정상 참작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물론 이건 저의 개인적이고 매우 섯부른 견해일 뿐입니다.)

 

새로운 인간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교감은 사라지고 오로지 생물학적인 처치로서의 과정만 남게 된다면 인간 생명이 얼마나 대상화 도구화 될 건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시험관 시술로부터 생겨난 잉여 수정란이 줄기세포 연구라는 미명(?)하에 단순한 실험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교회가 인공수정을 금지하는 것은 하느님이 부여하신 생명의 과정을 인간이 함부로 조작하지 말라는 단순한 이유도 물론 있지만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이유가 더 큽니다.

 

수정의 과정이 몸 밖에서 가능해지면 남편과 아내가 아닌 이의 정자와 난자로 수정된 수정란이 아내의 자궁에 착상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돈을 주고 다른 여자의 자궁을 빌릴 수도 있고, 새생명을 키우는 여성의 성스러운 자궁이 단지 아기 만드는 공장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최근의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도 보였듯이 여성의 존재가 단지 난자를 제공하는 난자 생산 공장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새로운 인간이 잉태되는 과정이 이런식으로 난도질 되었는데 과연 이런 일이 더욱 일상화 되어 가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요?

 

결코 불임부부의 고통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이 함부로 취급되고 심지어 생명을 함부로 박탈 당할 수 있는 일보다 아이없는 설움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셔야 할 사실이 시험관아기 불임시술의 이면에는 거대한 상업적 이익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도하는 불임부부라면 난자를 채취하기 위한 고통이나 비싼 시술비 없이도 부부간의 조금의 수고로움으로 임신 가능률을 확실히 높여주는 무상에 가까운 다른 자연적인 치료법도 있습니다. 물론 100%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그러기는 시험관 아기 시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상 시험관 아기 시술이 아닌 다른 불임치료 법은 충분히 시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이 권유됩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이 적극적으로 권유되는 이유는 그 시술이 가장 좋은 것이라서기 보다는 의사들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제왕절개수술이 일상으로 이루어지고 생명을 살려야 하는 산부인과에서 낙태 시술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우리의 의료 현실에서 돈 때문에 시험관 아기 시술이 권유될 수도 있다는 건 짐작하고도 남지요.

 

좌우지간 돈 안되는 치료법은 돈 벌이에 활용될 수 없기에 의료 현장에서 배제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돈만 많이 된다면 그것이 설사 인간을 도구화하고 생명을 해치는 것이라고 해도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입니다.

 

비전문가인 저보다는 인공수정이 이나 생명윤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가톨릭 신문 등에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결론만 달랑 접하고 쉽게 판단해서 섣불리 비난하기 보다는 교회 언론 매체등도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특히 교회 성직자들에 대한 불만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물론 지적하신 것 같은 그런 꼴불견의 성직자들도 있습니다.

저도 그분들의 부족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고 정당한 비판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신도니깐 당연히 대충 사는 것이고 니들은 성직자이니 우리보다 몇배로 성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우리도 스스로 짊어지기 싫어하는 도덕적인 짐을 그분들이 제대로 지지 못한다고 욕할 권리가 과연 있는지 모르겠군요.

 

정말 평신도로서 부부간에도 인공피임이나 낙태를 하지 않고 교회가 가르치는 바 대로의 정결을 충실히 지키며 자녀들을 올바르게 기르고 이웃을 위해 전심으로 봉사하고 일상의 삶속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살아야 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스러움을 향한 의무는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오히려 평신도야 말로 최전선에서 세속과 싸우고 있는 전투부대이고 성직자나 수도자는 오히려 후방의 지원 부대가 아닐까요? 우리가 정작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서 후방에 있어야 하는 분들을 앞으로 떠밀어 놓고 잘 싸워라 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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