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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서 11,1-13에서 [성경공부_에제케엘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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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15.214.*]

2012-06-06 ㅣ No.1209


질문:

에제키엘서

11장 7절 너희가 이 도성 안에 쌓은 살해된 이들이 바로 살코기고 이 도성은 솥이다.
 
11장11절 이 도성은 너희에게 솥이 되지 않고 너희는 그 안에 든 살코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뜻이 이해가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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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우선, 에제키엘서 제11장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주일 혹은 주간 독서로 전혀 발췌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질문을 주신 구절들에 대하여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백성의 수령들이 심판받는다"라는 소제목이 붙여진에제키엘서 11,1-13 전문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다음에, 주신 질문과 관련된 가톨릭용 성경 구절들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주석들을 찾아 비교/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2.
다음은 "새 번역 성경"에제키엘서 11,1-13 전문입니다. 이 글의 게시자가, 질문과 관련된 부분은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추가적으로 밑줄도 치고, 굵게 그리고 색깔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주석 성경"의 주석을 또한 추가하였습니다:

(발췌 시작)
백성의 수령들이 심판받는다(소제목)

1 주님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어, 주님의 집 동쪽 대문으로 데려가셨다. 그 대문 어귀에는 스물다섯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에 아쭈르의 아들 야아잔야와 브나야의 아들 플라트야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백성의 수령이었다. 

2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사람들은 이 도성에서 부정을 꾀하고 악한 계획을 꾸미는 자들이다. 

3 그러면서 그들은집을 지을 때는 아직 멀었다. 이 도성은 솥이고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살코기다.2) 하고 말한다. 

4 그러므로 그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5 그런 다음 주님의 영이 나에게 내려오시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의 생각은 이러하다. 너희 영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는 알고 있다. 

6 너희는 이 도성에서 살해된 이들의 수를 늘려 거리거리를 시체로 가득 채웠다. 4) 

7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말한다. 너희가 이 도성 안에 쌓아 놓은 살해된 이들이 바로 살코기고 이 도성은 솥이다. 그리고 너희는 이 도성 밖으로 끌려갈 것이다. 5) 

8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칼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칼을 끌어들이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9 나는 너희를 이 도성에서 끌어내어 이방인들의 손에 넘기겠다.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심판을 내리겠다. 

10 너희는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나는 너희를 심판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1 이 도성은 너희에게 솥이 되지 않고, 너희는 그 안에 든 살코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나는 너희를 심판하겠다. 

12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규정들을 따르지도 나의 법규들을 지키지도 않고, 오히려 주변에 있는 민족들의 법규를 따랐다.’”

13 내가 예언하는 동안에 브나야의 아들 플라트야가 죽었다. 그래서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아, 주 하느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마저 완전히 없애려 하십니까?”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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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성경 주석:

2)
이 두 문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것은, 예컨대 기원전 597년의 첫째 유배 때 예루살렘이 부분적으로 파괴된 것을 충분히 복구해서거나, 또는 이 성읍을 파괴할 적군의 또 다른 위협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여겨서거나 간에,  예루살렘 주민들이 이제 고생할 필요 없이 편안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비유도, 솥 안에 든 고기 요리를 주인이 귀중히 여겨 벌레나 짐승 따위가 건드리지 못하게 뚜껑을 닫아 잘 보관하듯,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 성벽으로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에제키엘은 24,3-5에서 같은 비유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설명을 이끌어 낸다.

4) ... 그릇된 재판으로 오히려 사람들을 죽이는 범죄(7,23), 권세가들의 억압(22장), 아니면 예컨대 기원전 597년의 환난과 같은 재앙으로 백성을 몰고 가는 정치를 생각할 수 있다. 예언자는 또 백성의 죄악이 불러일으킨 전쟁에서 살해되어 예루살렘에 쌓인 주검들을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7절; 30,11; 35,8 참조).

5) 많은 히브리 말 수사본과 고대 번역본들은 "나는 너희를 이 도성 밖으로 끌어가겠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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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결론 1) 
위의 성경 본문과 "주석 성경"의 주석들을 참고하면 다음을 알 수 있습니다:

2-1. 하느님께서는 위의 본문 중에서 게시자가 대단히 큰 글자로 보라색으로 표시한 자들에게 벌하시겠다고 말씀 중이시다. 

2-2. 특히, 제7-11절들에서는, 솥 안의 살코기 처럼 주님의 보호의 대상이, 게시자가 대단히 큰 글자로 굵게 보라색으로 표시한 자들결코 아님을 대단히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즉, 비록 그 당시에 예루살렘이 난공불락의 도성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이 도성이 위의 성경 본문에서 게시자가 대단히 큰 글자로 보라색으로 표시한 자들을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예언자 에제키엘은 대단히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2-3. 그리고 이것은, 바로 아래의 제3항에 발췌한 NAB 주석을 또한 참고하면,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3.
3-1.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제공의 NAB(New American Bible)에제키엘 11,4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ezekiel/ezekiel11.htm

(발췌 시작)
[3] These words reflect the false confidence of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in the face of the Chaldean invasion. Jerusalem, they think, is like an iron kettle protecting the meat within it from harm; but cf Ezekiel 24:3-6.

[3] 이 말들은 칼데아 침공(the Chaldean invasion)(*)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주민들의 그릇된 확신을 반향하고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그 안에 있는 살코기를 해악(harm)으로부터 보호하는, 한 개의 가마솥(an iron kettle)과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에제키엘 24,3-6을 참조하라.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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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여기서 말하는 칼데아 침공(the Chaldean invasion)은 바빌론의 임금인 네부카드네자르가 기원전 597년에 행하였던 예루살렘 포위 공격을 말한다. 그리고 네부카드네자르는 이로부터 약 11년뒤의 예루살렘 포위 공격에서, 솔로몬 왕(통치기간: 기원전970-930년)이 자신의 통치 제4년째에 건축을 시작하여 일곱 해가 걸려 완공하였던(1열왕 6,1.37.38), 예루살렘 성전을 처참하게 파괴해 버렸다. 이 포위 공격들에 대한 간략한 요약은 아래의 제4항에 있으니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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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다음은 "새 번역 성경"의 예제키엘 24,1-14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예루살렘이 포위되리라 (소제목)

1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오늘, 바로 오늘 날짜를 기록해 두어라. 바빌론 임금이 바로 오늘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3 너는 저 반항의 집안에게 비유를 들려주어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솥을 걸어라, 걸어라. 물을 붓고

4 고깃덩이들을 집어넣어라. 모두 좋은 고깃덩이로 넓적다리와 어깨 고기를 골라 가장 좋은 뼈와 함께 가득 채워라.

5 양 떼에서 가장 좋은 것도 잡아넣고 그 밑에 장작을 쌓아 안에 든 뼈까지 삶아지도록 펄펄 끓여라.

6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피의 도성! 안에 녹이 슨 솥,녹이 없어지지 않은 솥! 그 안의 고깃덩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라. 제비를 뽑아 고를 것도 없다.

7 그 도성이 쏟은 사람의 피가 그 안에 그대로 있다. 그 도성은 피를 맨바위 위에 그대로 내버렸다. 흙으로 덮지 못하도록 땅에 흘리지도 않았다.

8 내 화가 타올라 원수를 갚으려고 그 피가 덮이지 못하도록 내가 맨바위 위에 그것을 쏟아 놓았다.

9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피의 도성! 나도 이제 불구덩이를 높이 쌓으리라.

10 장작을 많이 넣고 불을 지펴라. 고기를 푹 삶고 국물을 비워 뼈를 태워 버려라.
11 솥을 빈 채로 숯불에 올려놓아 그것이 뜨거워지고 놋쇠가 달아올라 솥 안의 부정이 녹아 버리고 그 안의 녹이 가시게 하여라.

12 그러나 지치도록 고생만 할 뿐 그 솥의 녹이 많아서 그 녹은 불로도 없어지지 않는다.

13 너의 부정과 추잡한 짓 때문에 내가 너를 정결하게 하였지만, 네가 부정을 벗고 정결하게 되지 않았으니, 내가 너에 대한 화를 풀 때까지 너는 정결하게 되지 못할 것이다. 

14 나 주님이 말하였다. 때가 오면 내가 그대로 하겠다. 나는 돌이키지 않고 동정하지도 않으며 뉘우치지도 않겠다. 네가 걸어온 길과 행실에 따라 내가 너를 심판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이상, 발췌 끝).

3-3.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제공의 NAB(New American Bible)에제키엘 24,3-5 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ezekiel/ezekiel24.htm

(발췌 시작)
[3-5] This present comparison of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to meat boiled in a pot symbolizes their punishment rather than their supposed protection as in Ezekiel 11:3.

[3-5] 예루살렘 주민을 한 개의 냄비(a pot) 안에서 삶겨진 고기에 비교하는 이러한 현재의 비교는, 에제키엘 11,3에서처럼 그들이 예상하였던 보호라기 보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벌을 상징한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주신 질문에 대한 1차 답변입니다. 그런데, 이 답변만으로는 당시에 어떠한 상황 속에서 에제키엘의 그러한 예언들이 주어졌는지를 알 수 없기에, 이 글의 독자들이 예제키엘 예언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래의 제4항에서는, 에제키엘이 예언을 하였던 시기들에 관하여 간략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
4-1.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짝수해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제1독서(에제키엘 12,1-12)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19_thu.htm

(발췌 시작)
 12:1-14:23. Up to this point, the warnings to Jerusalem have been given by way of symbolic actions (chaps. 4-5) and chilling prophecies (chaps. 6-7), and the vision of the outrages committed in the temple (chaps. 8-11). However, neither the people living in Jerusalem nor the exiles seem to accept that a catastrophe is about to happen. In this section of the book Ezekiel speaks out against the people and their refusal to believe by announcing that King Zedekiah is to be deported forthwith (chap. 12) and then by condemning the false prophets who deceive the people by giving them false hopes (chap. 13); he also criticizes pagan beliefs (chap. 14). These oracles are designed to move the listeners’ hearts and to get them to put all their trust in the Lord: he can help them in their exile. That is the import of the phrase that recurs in this passage: “You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12,1-14,23. 이 시점까지(up to this point),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들은 상징적인 
행위들
(제4-5장) 그리고  냉기가 스미는 예언들(제6-7장), 그리고 성전에서 저질러지는 불법 행위들에 대한  환시로서(by way of) (제8-11장) 이미 주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유배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 둘 다는 대참사가 곧 발생할 것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예언서의 바로 이 부분에서 에제키엘은, [남쪽 유다 왕국의 마지막 임금(통치기간: 기원전 597-587/6년)인] 치드키야 임금(Zedekiah)이  조만간(forthwith) 국외로 추방될 것임을 선포함으로써(제12장)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그릇된 희망들을 제시함으로써 이 사람들을 속이는, 그릇된 예언자들을 힐난함(condemning)으로써(제13장), 이 사람들과 믿는 것을 그들이 거부하는 것에 반하여 큰 소리로 말하며, 그리고  그는 또한 다신교 믿음들을 비난합니다(제14장). 이러한 신탁(oracles)들은 듣는 이들의 심장(hearts)들을 움직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신뢰 모두를 주님께 두도록 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유배 동안에 그들을 도울 수 있으시다. 바로 이것이 지금의 절(passage)에서 반복되는 구(phrase)의 의미(import)입니다: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에제키엘 12,16.20; 13,21.23; 14,8).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위의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이 주신 질문에 대하여 조금 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게 합니다만,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4-2. 다음은, 총6권이 한 질을 이루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나해-II" 해설서(클릭하십시오), 연중 제11주일 제1독서(에제키엘 17,22-24) 입문에 주어진, 에제키엘 예언자의 삶에 대한 소개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위의 교재를 참고하십시오.

4-2-1. 남쪽 유다 왕국의 역사에 있어, 기원전 605년, 8년 뒤인 기원전 597년, 그리도 다시 11년 뒤인 기원 586년, 이렇게 바빌론으로 세 번의 유배가 있었다.

4-2-2. 첫 번째 유배는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 하에서 발생하였으며 그리고 이 유배는 젊은 예언자인 다니엘(Daniel)을 포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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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위의 내용의 성경 근거는 다니엘서 1,1-2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만약에, 예를 들어, "주석 성경"의 다니엘서 1,1 주석에서 그 어려움을 언급하고 있듯이, 다니엘서 1,1-2에서 언급되고 있는 예루살렘 포위 공격에 대한 언급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다면, 바빌론으로의 유배는 세 번 있었으나, 그러나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은, 세 번 있었던 것이 아니라, 두 번(기원전 597년 및 기원전 586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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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기원전 597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 동안에, 여호야킨 임금(King Jehoiachin)과 약 만 명의 남자들, 특히 용사(soldiers)들과 대장장이(metal workers들이 두 번째 유배 (혹은 성경 학자에 따라 첫 번째 유배)라고 알려진 때에 유배가 되었으며, 에제키엘은 이 포로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4-2-4. 에제키엘은 (그의 유배 후 4년째인) 기원전 593년에 그의 예언직 소명(prophetic calling)을 받았으며 그리고 그 첫 번째 임무는 그의 동료 유배자들에게 조기 귀환에 대한 그들의 기대가, 성전(Temple)의 절대로 더럽혀지지 않는다는(inviolability) 그들의 신념(faith)처럼, 헛된 것임을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주님께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그리고 유다 왕국 백성의 분산(dispersion, diaspora)를 명하셨기 때문이다.

4-2-5. [이러한 그의 첫 번째 예언 임무 수행 이후] 7년 뒤에 발생하게 된 사실인 예루살렘의 함락은 에제키엘의 예언자적 사목(prophetic mission)의 진위(truth)를 증명하였기에, 이제 에제키엘은 이 백성이 그들의 선조들이 범한 죄들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죄 많음(sinfulness)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가장 중요한 진리를 납득시켜야(drive home) 하였다. 이는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면(repent), 그는 구원받을(will be saved)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이상 제4항에서 추가적으로 함께 살펴 본 바로부터, 우리는 성경 본문 중의 어떤 특정한 한 개의 절에 대한 상식의 정도에서 납득할 만한 수준의 올바른 이해가 때로는 대단히 힘듬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주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여기까지입니다.


4. [우리말 번역에 관하여]
4-1. 다음의 발췌문에서 붉은 색으로 칠한 부분"새 번역 성경"의 에제키엘서 11,3 에서, 전후의 문맥 안에서 살펴 볼 때에, 우리말 번역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의 문장들을 정밀하게 상호 비교/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발췌 시작)
3 그러면서
그들은집을 지을 때는 아직 멀었다. 이 도성은 솥이고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살코기다.’하고 말한다. 
(이상, 발췌 끝)

다음은, 몇 개의 영어본 성경들에 있어서의 해당 절입니다.

(Douay Rheim Verson)
3 Saying: Were not houses lately built? (졸번역: 최근에 집들이 지어졌던 것이 아닙니까?) This city is the cauldron, and we the flesh.

(King James Version 1611)
Which say it is not near; let us build houses (졸번역: 그들의 침공이 아직 멀었기에, 집들을 짓도록 합시다): this city is the caldron, and we be the flesh.

(RSVCE 1960년대)
[3] who say, `The time is not near to build houses(졸번역: 집들을 지을 시기는 아직 멀었습니다); this city is the caldron, and we are the flesh.'

(NAB 1970)
"Shall we not,"
they say, "be building houses soon? (졸번역: 우리가 조만간 집들을 지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The city is the kettle, and we are the meat."

(NIV 1973)
They say, 'Will it not soon be time to build houses? a) (졸번역: 조만간 집들을 지을 시기가 아닌지요?) This city  is a cooking pot, and we are the m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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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Or This is not the time to bulid houses. (졸번역: 혹은 지금은 집들을 지을 시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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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B 1976)
They say, 'We will soon be building houses again (졸번역: 우리는 조만간 집들을 다시 지을 것입니다). The city is like a cooking pot, and we are like the meat in it, but at least it protects us from the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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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결론 2) 
이상 비교/검토해 본 바로부터, 1970년에 초판 발행된 NAB 번역이 다른 번역들 보다 더 정확하다고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공동번역성서의 에제키엘 11,3에서의 우리말 번역과도 다른, "새 번역 성경"의 에제키엘 11,3 우리말 번역은 NAB에서의 해당 구절의 번역과 너무 다름을 알 수 있는데, NAB 에서의 번역과 일치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게시자 주 3: 그리고, 영어가 가능한 분들의 경우에, 여기를 클릭하면, 1859년판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에 주어진 에제키엘 제11장 전문 및 주석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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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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