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3동성당 게시판

사소한 것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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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엄지 [abcd1] 쪽지 캡슐

2000-03-28 ㅣ No.740

이상하다. 눈길이 가서 한번 집었던 책은 결국 사 버리고 마니 말이다. ’이번엔 가지 말아야지!’ 아무리 다짐을 해도 내 마음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였다. 내 시선을 압도한 것은 바로 이것, ’너를 향한 그리움엔 제한속도가 없다’는 카피문구 였다. ’뻔할 뻔자로 분명 사랑 타령이겠군’ 싶었지만, 책의 활자들이 내 시선에 와 닿은 순간 그런 몰상식한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 인스턴트가 아니라 직접 만든다면 어떤 재료를 넣어 만들고 싶으세요?

 

샌드위치 사이에 이 아침을 넣어 봅니다.

 

아직 완전히 밝지 않은 푸르스름한 하늘을 깨끗이 잘라 넣고,

 

그 위에 알맞은 크기의 구름을 한 두 개 얹어 놓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꼭 짜서 뿌려 줍니다.

 

마지막으로, 이 신선한 공기를 흩뿌린 다음,

 

식빵이 촉촉하도록 아침 이슬을 몇 방울 떨어뜨려 줍니다.

 

샌드위치를 들고 길을 나서고 싶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소리인가? 하늘을 잘라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싶다니.. 그러나 사실 이 활자들에 내가 깜짝 놀라버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 또한 하늘을 잘라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샌드위치까지는 아니었지만,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 그것들에 넋이 나간 어느 여름밤에 커다란 톱으로 얼음을 잘라내듯 그 하늘을 잘라 내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유유상종의 기쁨이랄까? 이 책은 나에게 그런 기쁨을 느끼게 해준 것이다.

 

 

 

 

 

 장독 뚜껑 위에 얇게 고인 빗물에 발톱을 담그며 놀던 참새, 미완성에 관한 짧은 생각, 어깨를 툭 치고 가는 바람... 이 모든 것들이 내 삶을 뒤돌아보게 해 주었다, 오래전 잊고 지내던 사소함들까지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여러분과 그 사소함이 주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 그리하여 훗날 우리가 마주했을 때, 서로의 기쁜 사소함을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하늘마음 2000년 2월 20일자.. 니가 느껴봐.. 코너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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