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모든 국가나 민족 안에서 공통적으로 성대하게 지내는 중요한 행사가 있다면 그것은 곧 결혼식과 장례식일 것이다. 그런데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 부족에게는 결혼식이 그리 큰 행사가 아니다. 물론 결혼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겨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결혼‘식’ 없이 어물쩍 그냥 같이 살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열 번 결혼식 주례를 하면 처녀 총각의 결혼식을 주례하기란 한 번, 잘해야 두 번 정도다. 대부분은 이미 두세 명의 아이들이 있는 부부들이다. 게다가 손자·손녀까지 있는 이들도 열에 두세 쌍은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각 마을을 돌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미사의 영성체 시간이 되면 좀 난감하다. 이미 세례는 받았지만 혼인성사 없이 자녀를 둔 부부의 경우는 차라리 양호한 편이다. 이러다 보니 교회법으로 따지자면 ‘간음한’ 이들이 공소에 수두룩하다. 이들 대부분은 영성체하기를 원한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어떡하란 말인가?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성체를 준다. 언젠가는 눈뜨고 할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도 하느님이 창조한 ‘인간’이고,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 역시 하느님이 주재하는 인류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교회법에 짜증이 난다. 사랑의 실천보다는 조직 보호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한 교회법의 한계가 안타까운 것이다. 교회가 ‘순진한’ 이들에게만 강요하고 큰소리치는 모습이 싫은 것이다. 세례를 통해 일단 우리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서 보자고 하는 편협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 온 세상에 열려 있는 교회가 될 수는 없을까? 이방인들이 희망을 거는 교회, 이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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