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 블레이드의 비극 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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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eieie] 쪽지 캡슐

1999-09-11 ㅣ No.581

몇 달 전부터 벼르던 롤러 블레이드를 샀다.

스케이트엔 경지에 이른 나인지라 롤러 블레이드도 금방 능숙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롤러를 신고 캠퍼스를 누비기 시작한 지 이틀째.

그날도 미끄러지듯이 롤러를 타고 매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행이 붙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쪽에서 나를 눈여겨보던 롤러 블레이드 동호회 회원들이

만만치 않은 실력으로 나를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머지않아 나에게 말을 거는 데 성공했고,

더 심오하고 깊은 롤러 블레이드의 세계에서 놀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는 척 하다가, 금새 그들과 함께 롤러를 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점프대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역시 그들은 대단했다.

바퀴가 다 닳아서 덜덜거리는 롤러를 신고도 아무렇지 않게 점프하여

창공을 날아오르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그들을 보고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고,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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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기억이 없다.

내가 깨어난 건 학교 병원 응급실이었고, 어머니와 동생이 와 있었다.

다행히 내가 정신이 들어 우리 집 전화번호를 말하고는 다시 기절했다고 한다.

티비에서 보던 커다란 기계 속에 내가 들어있다는 걸 간간히 느끼다가도

금방 정신을 잃곤 했다.

한참 후에 나타난 의사는 별 이상 없으니 좀 쉬면 괜찮아 질거라는 말을 하고는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내가 거의 죽을 뻔 했다는 걸 깨달았다.

또 목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게 이번이 세번째인 듯 싶다.

그런데, 그 때마다 내 곁엔 아무도 없다.

항상 내 곁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도, 공교롭게도 세 번 모두 내 곁에 없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외로움을 느낀다고, 그 외로움이 끝나면 죽는 거라고 했다.

간혹,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그게 헛된 꿈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젠 깨달을 일이 없을 것이다.

다시는 꿈꾸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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