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에미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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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1-04 ㅣ No.5502

 

초인종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문을 열었습니다.

"딩동 딩동."

"어.. 어머니!"

시골에서 홀로 사시는 시어머님이 아무 연락도 없이 올라오셨습니다.

허리가 휘도록 이고 지고 오신 보따리 속엔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 말린거며 젓갈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무거운데 뭘 이렇게 많이 싸 오셨어요...."

"가가 점심을 굶고 안 살았나.. 내사 마 퍼 줘도 갸 볼 낯이 엄따."

가난한 살림에 자식을 다섯이나 줄줄이 낳아 기르느라, 자식들 배를 곯린 게 두고두고 한이 된다는 어머니.

겉보리까지 닥닥 긁어 밥을 지어도, 어머니의 밥솥은 늘 자식들의 왕성한 식욕보다 작았습니다.

"도시락이 모질란다 싶으면 갸가 동생들 다 챙겨 주고 지는 그냥 가뿐지는 기라... 심지가 깊어서 그렇지 돌멩이도 삭일 나이에 을매나 배가 고팠겠노...."

어머님의 보따리를 풀어 놓으시며 한숨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

남편은 가난한 집 5형제 중의 맏이었습니다.

맏이라고 동생들한테 다 양보하고 허구헌날 굶으며 공부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20년이 지나도록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씻을 길이 없다고 하시며, 매번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에그, 내가 주책이다."

그날 저녁 나는 흰 쌀밥에 굴비구이에 코다리조림까지, 어머니가 가져오신 찬거리로 진수성찬을 차렸고, 어머니는 연신 생선살을 발라 아들 수저에 얹어 주셨습니다.

"아참, 어머니도 좀 드세요."

"내사 마 느그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디라."

다음 날 어머니는 며칠 더 계시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자식며느리한테 짐이 되기 싫다시며 집을 나섰습니다.

그 고집을 꺾을 수 없는 나는 어머니를 기차역까지 배웅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표를 받아 플랫폼으로 나가시려던 어머니가 가방 속에서 신문지로 돌돌 싼 꾸러미 하나를 불쑥 건네셨습니다.

"이게 뭐예요, 어머니?"

"암말 말고. 갸 맛난 것 좀 많이 사주그래이."

신문지에 여러 겹 돌돌 말린 그것은 놀랍게도 돈뭉치였습니다.

"니도 자식 키워 보면 알겠지만 에미 맴이란 다 그란기다. 내사 갸 배 곯린 거 생각하믄 안적도... 밥이 ... 목에... 걸려서리...."

자식들이 알량한 용돈을 한 달에 만 원도 모으고 이만 원도 모으고 해서 만들었다는 돈 백만 원.

나는 울컥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어머니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가슴속 눈물을 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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