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사랑하는 나의 아들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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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1-06 ㅣ No.5508

 

햇살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던히도 따분한 오후, 하숙생활을 하던 나는 기지개를 한참 켜고 있었습니다.

"아... 함..."

그때 하숙집 주인 할머니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불렀습니다.

"학상.. 학상, 이리 좀 건너와 볼텨?"

두달째 밀린 하숙비 독촉을 하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주저주저 안방으로 건너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 아니!"

방구석에 앉은뱅이 책상 위로 못 보던 컴퓨터가 하나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라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손짓하며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아, 서 있지 말고 들어와 이리."

"할머니, 웬 컴퓨터예요?"

안그래도 컴퓨터가 갖고 싶었던 나는 웬 횡재냐 싶어 그 앞에 앉아 만져보았습니다.

"웬 콤퓨타는... 내가 샀지."

’할머니 연세에 검퓨터를 배우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

"아, 이것만 있으문 미국까지 편지가 금방 왔다 갔다 한다믄서?"

할머니는 이메일로 미국에 있는 아들 손자와 편지를 주고받고 싶어 컴퓨터를 장만하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컴퓨터를 켜는 법에서부터 인터넷 접속법, 이메일 보내는 법 등을 가능한 쉽게쉽게 가르쳐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설명이 끝날 때마다 함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하며 힘들어 하셨지만, 절대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나는 쪽지에 적힌 아들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시켜 간단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해드렸습니다.

"할머니, 이제 한번 해 보세요."

할머니는 한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좌판을 누르며 또박또박 글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사. 랑. 하. 는... 나. 의. 아. 들.’

 

모니터 화면에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 보아라’ 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힘겹게 거기까지 입력하신 할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동안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 순간 좌판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뚝 떨어졌습니다.

"어 ....?"

갑작스런 할머니의 행동에 나는 남감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잠시 후 할머니는 고개를 들고 소맷자락으로 대충 눈물을 훔치시고는 민망하다는 듯 날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거 편지지나 콤퓨타나 눈물나는 건 똑같구먼...."

그날 밤 할머니의 그 눈물나는 편지가 완성되어 미국에 사는 아들의 전자우체통으로 배달될 때까지 할머니 곁을 지켜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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