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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6 대전 공설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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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13-03-13 ㅣ No.7663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대전에는  "공설운동장"이 있었다.


도청앞 신작로에서 우측으로 한참을 걸어가면 볼 수 있었다.


하여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한참을 가야 만 하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에게는 상당히 멀게


느껴지는 거리였다.


마침 그날은 대전 공설 운동장에서 공연이 있던 것 같았다. 희미한 기억으로 남사당놀이같


은 민속공연으로 생각된다. 볼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그 당시엔 그러한 공연도 장안에 상당


한 화제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방과 후에 백경렬의 집에 놀러갔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집은 도청 앞에  있던 일본식 이층


집에 병원이 있었다.  호리하신 몸매와 안경을 끼신  화려한 이미지의 모습이 아직  기억되


는 것을 보면 의사부인이셨던 그의 어머니는 상당한 인텔리셨나 보다.


그날은 마침 그의 어머니가 경렬이를 데리고 공설운동장으로 구경을 가는 날이었다.


그의 가족과 함께 택시를 타고 공설운동장까지 갔다. 아마도 경렬이가 “같이 가자고 말


하였으니까,동행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된다.


그의 어머니가 표를 구입하기 전에 매표소 앞에서 내게 물으셨다.


“너는 어떻게 할꺼니?”


초등학교 2학년짜리를 집에 연락도 안하고 늦게까지 데리고 있기에 부담을 느끼셨던


물음을 나는 공연을 데리고 들어가시기가 싫으셔서 그러시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저는 집에 가야 됩니다.” 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사실 그 당시에 나의 집에는 “경림이누나”라고 불리던 집안 도우미 쳐녀 밖에 없었으므로


아버지께서 회사에서 돌아오시는 시간까지는 거의 방목되다시피 지내고 있었다. 서울에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과 누이가 있었던 어머니께서는 한달 중에 이십여 일은 서울에 기거하


셨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과 헤어진 후 나는 운동장 뒤쪽으로 갔다.


그곳에선 지금처럼 높은 담장이 아닌 잔디 둔덕의 경계에 새끼줄이 쳐있었고 통제를 하는


사람이 서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눈을 피하여 운동장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가고 있


었다. 


나도 그 대열에 슬쩍 합류하여 공짜관람을 하게 되었다.


그때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공연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당시 가슴조리며 새끼줄을
 

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넘었던 새끼줄은 내 의식구조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날 이후…….


새끼줄은 넘지 말라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앞으로 다가올 사춘기에 넘지 말아야 될 새끼줄을 무던히도 넘나 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차츰 어린 왕자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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