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22/08/20 토요일 기도와 영성 08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주인입니다 -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1581-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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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8-06 ㅣ No.5118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22/08/20

기도와 영성 08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주인입니다

-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1581-1660)

 

 

말씀 요한 17,20-26

20“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를 더 얻고 더 채워도 노후는커녕 오늘을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생각해서 더욱 악착같이 재물을 모읍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될 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자기가 모은 재산을 꼭꼭 숨겨 둡니다.

 

 

영성 말씀

하느님께서 사랑의 딸들을 부르시고 함께 모으신 주된 목적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며 모범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고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섬기는 데 있습니다.

 

 

생애와 영성

종교전쟁과 프롱드의 난, 페스트 창궐, 봉건제도로 인한 세금 탈취, 극심한 빈부격차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16세기 말, 프랑스 농촌에서 태어난 빈첸시오는 19세에 사제가 된 이후 여행을 하던 중 해적을 만나 노예로 팔려갔다가, 연금술사로부터 병을 고치는 법을 배우고 탈출하여 가난한 이를 위해 투신하게 됩니다. 성인은 가난한 이들 안에 숨어 계신 주님을 발견했고, 주님을 섬기듯이 가난한 이들을 섬겼습니다.

성인은 농촌지역의 빈곤을 접하면서 병들고 불쌍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 전교회(라자리스트회)를 세웠고, 가난한 이들을 조직적으로 돌보기 위한 여성들의 봉사 단체인 애덕 부인회, 성 벤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훗날 그의 정신을 따른 평신도 단체-‘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안락한 생활에 대한 미련도 있었지만, 가난한 이들과 같은 조건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온전한 신뢰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의 주님이고 스승이라고 가르치며, 서두르지 말고 때를 기다리면서 겸손과 소박과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영성 살기

사회적으로 가난은 마땅히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사회 지도자들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꼭 극복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의 고용을 극대화하며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게으름과 나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사회의 생산을 창출하고, 사회의 불균형하고 불평등한 소득과 분배의 구조를 조정하며, 빈곤층에 대한 적절한 사회 복지로 사회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여 가난한 이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는 것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져야 할 일입니다. 가난의 문제는 한 지역 사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 정책이나 국가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국제적이며 인간 전반에 걸친 문제입니다.

그런가 하면,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5-36.40)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곤궁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재물을 나누고 자선을 베푸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의 노고로 얻은 재물을 자기만 위해 쓰지 않고 가족과 나눕니다. 가족에는 내 식구뿐만 아니라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와 그들의 가족, 일가친척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가족의 한계는 어느 누구까지입니까? 내가 배고플 때, 다른 어느 누구도 배고플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까? 내가 추울 때, 다른 어느 누구도 추울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맛있는 음식과 좋은 것을 누구와 나누고 싶습니까? 이러한 생각과 관심을 갖게 하고 배려해야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맺은 가족은 피를 나눈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생각과 영을 나누는 영신가족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께서 우리에게 다스리고, 보호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라고 맡기신 가족입니다.

 

 

성찰

하느님께서 맡기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내 (영신)가족은 어디에 사는 누구입니까?

그들의 이름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압니까?

오늘 내가 내 가족 중의 어느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나누겠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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