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2주일(다해) 루카 14,1.7-14; ’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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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8-13 ㅣ No.5126

연중 제22주일(다해) 루카 14,1.7-14; ’22/08/28

 

 

 

 

 

 

 

 

제가 신부 2년 차에, 교구로부터 보좌 신부 겸 서울교구 남부 노동 사목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겸임이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어려워졌습니다. 본당에서는 본당에서 대로 보좌신부님이 우리를 두고 자꾸 나간다고 섭섭해하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자기들을 봐주지 않고 너무 본당에서만 머무신다고 섭섭해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하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각 사목 현장에서 겪게 되는 신자들의 공백은 커져만 가고, 제가 느끼기에 죽도 밥도 아닌 경우가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결국, 헌신적인 사목이라기보다는 관리와 현상 유지의 차원에서 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그간 미뤄왔던 본당 주임사제로 소임을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본당 신부가 된 뒤에, 몇 본당을 거쳐 어느 본당에 부임했을 때, 멋쩍은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단체에 들어갔는데, 단체원들이 저를 보고는 누군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저 역시 그 단체원 중 몇 분은 처음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단체원들은 성당이 처음 설립될 때부터 10년 넘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끈끈한 정이 들었고, 지금까지 열심히 모임을 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났을 때는, 10여 년이 지난 그때에는, 처음 단체가 결성할 때보다는 단체 구성원의 평균연령이 10살 정도 높아졌고, 심지어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하러 온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그 단체원들끼리는 친교가 잘 이루어지고 그야말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정이 들었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첫째, 그분들이 미사는 자기가 사는 본당에서 드리고 모임 할 때만 오니까, 모임을 하러 오는 본당의 주임사제가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 지역에 살지 않기 때문에 본당의 현 상황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둘째, 단체원들이 그 지역에 살지 않다 보니, 본당 지역의 선교는 아예 꿈도 못 꾸고, 본당의 행사나 흐름과는 겉돌거나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과거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단체 설립의 취지인 선교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자신들만의 기도와 친교 모임으로 축소되어 버린 것입니다.

 

셋째, 그분들은 자신들끼리 친교를 누리는데 아쉬움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단체원이 들어오지도 않았고, 실제로 새로운 단체원들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내다 보니, 점점 단체원들의 수명은 고령화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어나 점점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단체활동과 임원 겸임 문제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장은 일 잘하는 신자를 부랴부랴 모아서 일을 해나가지만, 지금 당장 자리를 메꾸고 나니, 새로운 신자를 뽑거나 충원하려고 하지 않고, 또 있는 신자들끼리 하다 보니, 이사를 오거나 새로 세례받은 신자가 들어오지 않고, 기존의 단체원들도 새로운 신자를 간절히 찾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그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신자들의 나이는 높아지고, 새로운 신자들을 모아서 양성을 하지 않았기에, 점점 일을 할 신자도 없어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초대한 이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다가 망신당하지 말고, 겸손하게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는, 겸임하려고 하지 말고, 한자리에 앉아서, 한 가지 활동만 충실히 하라는 비유처럼 들립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의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도 곁들여 전해 주시는듯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장단점을 주시고, 서로 도와서 좋은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라고 하셨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일할 재목을 찾고, 일할 자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 나면서부터 재목과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각자의 인성 안에 감춰진 가능성과 능력을 발휘하도록 믿고 맡겨라. 그러면 각 직책을 맡은 이들에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은총을 내려주겠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12-13)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금 당장 눈에 드러나는 장점과 능력만 보지 말고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인격을 존중하고 믿고 맡기라고 하시는 듯합니다.

 

사무엘이 주 하느님의 명을 받아 사울 왕의 후임을 뽑으려고 할 때, 키가 크고 잘생긴 엘리압을 뽑으려고 할 때, 주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결국 사무엘은 아버지 이사이가 미처 왕의 후계자가 될 아들로 취급하지도 않은 어린 막내 다윗을 뽑게 됩니다.

 

전년도에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가정을 잘 지켜주십사 하는 부탁도 다시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성당에는 일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주 하느님께서 자신과 가정에 함께하시어 행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에서 받은 주님 사랑의 힘을 가정에 가서 나누기에 행복하게 삽니다. 사랑을 나누는 가정의 신자들이 성당에 오면, 성당이 건강해지고 그 사랑을 이웃 형제자매들과 나누면서 선교도 되고 복음화도 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주 하느님의 사랑을 품지 못하고, 주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지 못하여 불만족스럽고 취약한 가정의 신자들은 성당을 허약하고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주 하느님의 사랑을 잘 느끼지 못하고, 하느님 사랑 덕으로 산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신자들은 그야말로 자기 잘난 맛으로 살기는 하지만, 자신이 주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해서, 자부심과 행복함을 충분히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 남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려 하고,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고 느끼기에, 스스로 겸손하지도 못하고 이웃에게 더 많은 인정과 사랑을 요구하게 됩니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왜 나를 떠받들어주지 않는가?’ ‘왜 내 말을 듣지 않는가?’ ‘왜 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는가?’ 하면서 아쉬움과 섭섭함을 표현하며, 자신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아주기를 요구하며 불안해하고, 언성을 높이며, 불안정합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8-9)

 

우리 각자를 향해 넘치도록 쏟아 부어 주시는 주 하느님의 사랑을 인식하고 품어 안아 만족하는 신자가 됩시다. 그래서 우리 생애에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해집시다. 누군가에서 인정받지 않아도, 누군가에게서 대접받지 않아도, 주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떳떳하고 풍요로워집시다. 그리고 그렇게 차고 넘치도록 받은 은총과 사랑으로 가정과 교회와 이웃 사회에 사랑을 나누고 희생 봉사함으로써 선교와 복음화를 이루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충만한 사람으로 비칠 것입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10)  

 

요즈음 코로나19와 각박한 사회상황으로 말미암아 다소 어려운 시기이지만, 구역반장과 단체장 및 임원 겸임을 풀기로 약속한 부활절이 지나고 벌써 8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자기 자신의 지치거나 상처받지 않는 안정적인 신앙 생활과 가정의 평화와 화목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단란 및 균형잡힌 성장을 위하여, ‘한 신자 한 단체 활동하기를 권고해 드리며, 겸임은 절대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구역반장님은 반의 어머니로서 자기 반에 있는 신자들의 어머니이시므로, 자기 반 신자들을 어머니처럼 돌봐주시기 위하여, 반장 이외의 직책은 놓아주시고,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반장단으로 원대복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신앙생활을 하면서 본당에서 구역반이나 단체 활동을 전혀 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가급적 자신의 신심과 본당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구역반이나 단체에 가입해서 기도와 신심 및 희생과 봉사활동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단체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므로 주 하느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새 신자들을 발굴하고, 서로 짐을 나눠서 지면서, 신앙생활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달 말까지, 겸임을 완전히 풀어주십시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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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2&id=186817&Page=2&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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