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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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8-13 ㅣ No.5129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22/08/31

 

언젠가 한 번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요,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는 좀 도둑, 딸은 예쁜 도둑.”이란 표현과 함께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의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다음에 커서 누구의 아들·딸이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러자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루카 4,42)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고,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43) 라고 하시며 여러 다른 회당으로 가셔서 계속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지금 나는 누구의 아들·딸입니까? 아무도 반기지 않는, 그야말로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요 고집쟁이는 아닌지요? 아니면 나만 보면 스슬 피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요? 나를 반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나를 왜 반깁니까? 나는 그에게 무엇을 줍니까? 이다음에 아주 많이 늙어서 허리 꼬부라지고 움직이지조차 못할 때, 과연 누가 나와 함께해 주리라고 기대합니까? 우리의 생애가 그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며 그리워지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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