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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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8-14 ㅣ No.5130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22/09/01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5년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면서 해마다 9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이날 교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의미를 묵상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한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며, 생태계를 보호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특별히 올 해는 자연 피조물을 더욱 존중하고, 현재와 미래의 모든 민족이 온전한 인간 발전, 곧 책임감, 신중함, 예방, 연대,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한 발전을 더욱 존중하는 방향으로 소비 모형과 생산 모형과 생활 양식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의 기반에는 인간과 환경 사이의 계약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 신자들에게 우리를 나게 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분인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을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라고 하시며, 생태 영성을 향한 회개를 기반으로 광업, 석유 산업, 산림업, 부동산 중개업, 농기업과 같은 거대한 채굴 산업계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숲과 습지와 산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기를,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을 멈추기를, 먹거리와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는 일을 멈추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주교회의 홈페이지를 확인해 주십시오.

 

오늘 이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내 삶의 행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가만히 성경을 살펴보면, 만만치 않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 하느님과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생애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시민적인 행복과는 사뭇 다른 생애를 살아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분들의 지상 생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존경과 감사와 사랑을 받을지언정, 결코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유복하고 안락한 생활과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서 첫 번째 제자 네 명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온종일 심지어는 밤을 새워 고생하면서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그냥 허탈하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시몬이 나서서 반발하면서도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5) 예기치 않게 그들은 그물이 찌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심지어는 다른 배의 동료들이 와서 도와주어 간신히 건질 정도로 두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습니다. 그랬더니 시몬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8)

 

왜 베드로가 그 순간 그렇게 말했을까? ‘예수님, 이번에 예수님 말씀대로 해서 많이 잡았으니, 다음에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그물을 칠까요?’ ‘예수님 말씀대로 하면 기적이 일어나니, 이젠 뭍으로 가서 더 큰 일을 합시다. 제가 예수님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라고 응할 수도 있었을 만도 했는데 의아스럽습니다. 미처 어떤 생각이나 계산을 하기조차 전에 그들은 고기가 그렇게 많이 잡히는 기적 앞에 놀라고 두려움부터 느꼈나 봅니다. 복음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9-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10) 예수님은 아마도 이해타산적이고 계산 빠른 이들보다 순박하고 겸손한 인간을 반기셨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11) 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이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그저 놀랍고 두렵고 혼이 빠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큐피드 화살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나가서 가족과 집을 버리고, 그날부터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맨정신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항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하 세월에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한 번은 예수님께서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4-25)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26)라고 불만을 터트리자 예수님께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27) 라고 하시며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십니다.

 

우리의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성공과 안락보다 주 에수님의 길을 따르다 보면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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