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산사의 하루를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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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세택 [stwee] 쪽지 캡슐

2002-11-11 ㅣ No.2109

한동안 개신교 교회들에서 서로 다투어 커다란 교회를 짓는 것이 유행을 하였었다.

 

한국 최대니 동양 최대니 하면서 아름다움이나 신도들의 편안함은 개의치않고 크기로 압도하여 그  앞에 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왜소한 느낌을 들게하는 그런 건물들을 갖은 명목으로 신도들의 호주머니를 쥐어짜서 만들고는 하였다. 그 돈이면 불쌍한 이웃사람들이나 가난한 시골의 개척교회들을 많이 도울 수가 있을 것 같은데 누구를 위해서 짓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었다.

 

그러더니 그 유행이 천주교로 옮겨가서 지난 십여년 동안에 서울교구의 대부분의 성당이 크게 짓는다고 난리를 치더니 진정한 영혼의 아름다움이나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교를 느끼기 힘든 그런 거대한 성당들이 들어섰다. 원래 천주교의 오래된 법식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최신의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덩어리들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 유행이 조용한 산중에 있는 산사들에도 불어와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고건물들을 헐어내거나 구석으로 옮겨놓고 거대한 건물들을 짓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입장료 수입이 들어와서 돈이 남아돌아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몇년 사이에 내가 가본 절들 중에서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기와장 팔지 않는 절을 보지를 못했다.

 

지난 주말에 템플스테이라는 것을 다녀왔다.

산사체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세계화시대라서 절에도 영어가 들어와 굳이 템플스테이라고 얘기를 하는 그 과정을 다녀왔다.

 

절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절의 문화와 풍습을 알아보는 그런 과정이다.

말로만 듣던 발우공양도 해보고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새벽예불도 드려봤다.

겨우 하루 동안에 얼마나 알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책에서나 보던 것을 직접 경험해본 것은 의미가 있었다.

 

그런 의미를 느낀 반면에 실망한 부분도 많았다.

내가 간 절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오래되고 큰 절인데 너무 많이 훼손을 하여 안타까웠다.

가운데 몰려있던 작은 건물들을 없애거나 멀리 치워놓고 넒직한 마당에는 늘 있게 마련인 탑과 등도 없어서 뭔가 썰렁해 보이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어딘가 기대어 쉬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다가 밤에는 대웅전 안에 모셔있는 부처님에게 정면 위에서 수은등을 비춰서 피르스름한 조명 아래 부처님의 모습이 싸늘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게 하여 조용히 예불드리고 싶은 마음을 싹 가시게 만들었다.

예전에 흔들거리는 촛불이 밑에서 비추어 아늑하고 인자하게 보이던 부처님의 모습이 환한 수은등 불빛 아래서 전혀 다른 모습이 되고 만다.

 

그래놓고 다른 쪽에서 시멘콘크리트로 커다란 건물을 짓고 있다.

 

게다가 주차장이 절 바로 옆에 있어서 새벽에 어둠 속에서 물소리와 바람소리 속에 자신을 내맡기고 참선을 하는데 차의 부르렁거리는 소리가 정신을 흩어놓는다.

 

가는 도중에 들린 또 다른 절은 좁은 계곡을 따라서 작은 건물들이 절묘하게 배치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조그만 대웅전을 원래 있던 곳에서 멀리 치워놓고 그 자리에 엄청나게 큰 대웅전을 새로 세워놨다.

 

대웅전 자체는 아름답게 잘지어놓았는데 문제는 그 공간에는 너무 커서 주변환경과 어울리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커다란 건물이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 있으니 주위의 오래된 건물들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오는 도중에 들린 작은 암자는 부석사 무량수전과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아름다운 목조 건물을 영산전으로 쓰고 있는데 그 건물 하나 때문에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와 보는 암자이다. 그런데 건물 바로 앞에 지난 초파일에 연등을 걸어놓기 위해 설치한 비닐하우스의 뼈대같은 구조물을 등들이 걸린 채로 아직 그대로 놔둬서 정면에서 건물을 바라보는데 방해를 하고 있었다. 그 암자에 있는 스님들은 그 조그만 곳에 사람들이 왜 찾아오는지를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 우리나라의 목조건축물들은 쇠로 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짓는다. 나무 끝을 들쭉날쭉하게하여 아귀를 짜맞추었다. 나무에 쇠로된 못을 사용하면 나무가 상한다고 그랬었다.

그런데 내가 가본 절들은 한결 같이 조명을 설치하거나 스피커를 건다고 기둥과 서까래에 못을 박아놓았다. 그 건물을 지은 목수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절의 주인은 누구인가?

조계종단도 아니고 스님도 아니고 문화재관리국도 아니고 신도들이 주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님들은 잠시 상주하면서 관리하는 관리인이다.

그런데 관리인이 오랫동안 법식과 환경에 따라서 내려온 절들을 자기 마음대로 뜯어고쳐도 되는 것일까? 더군다나 고즈녁한 옛 모습을 파괴하고 소란스런 저자거리의 모습으로 분칠하고 단장하는 것은 범죄라고 까지 생각된다.

 

종교의 특성은 그 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종교 특유의 문화적 풍습에도 담겨있는 것이다. 아니 오래된 종교들은 교리보다도 그 문화적 전통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래된 종교의 전통양식은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그런 문화적 전통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은 교리를 갈아치우는 것보다 더 파괴적이다.

옛 법도에 대한 아무 이해없이 무조건 현대화하고 대형화 하는 것의 부작용을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스님들을 교육할 적에 교리와 예법만이 아니고 불교의 전통적인 문화양식에 대하여도 충분히 교육하여 더 이상의 아름다운 절들의 무분별한 파괴를 막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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