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2000년 연중9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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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yk1004] 쪽지 캡슐

2000-03-05 ㅣ No.286

2000년 3월 5일 연중 9주일 강론

 

제1독서: 신명기 5, 12 - 15.

제2독서: 2 고린토 4, 6 - 11.

복음: 마르꼬 2, 23 - 3, 6.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꼬 2, 27 - 28)

   오늘 복음은 우리가 이미 들었다시피 안식일에 관한 논쟁의 내용입니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무조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야 된다고, 일 비슷한 것도 하지 말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한 반박의 근거를 오늘 제1독서인 신명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한 방법으로서 일을 하지 말고 쉬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아들 딸, 남종과 여종, 소와 말까지 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에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이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도대체 안식일에 쉬면 쉬는 것이지, 기억하기도 싫은 비참했던 노예 시절은 왜 말씀하는 것인가? '밤에 별보고 일어나서 밤 늦게야 몸을 누일 수 있는 노예들, 그러면서도 고혈을 짜내고 뼈가 빠지도록 일해야 하고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얻어 먹고 죽는 날까지 일만 하는 그 노예들이 그래도 안식일 하루쯤은 쉴 수 있어야 최소한의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 오늘날 같으면 주일이든 평일이든 가리지 않고 골프나 치러 나가면서 "비지니스한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너희가 쉬라는 것이 아니라 눈만 뜨면 일해야 하고 조금만 일을 더디 하면 게으름 피운다고 채찍으로 맞아야 하는 노예들이 아담의 자손이고 똑같은 인간인데 안식일 하루는 쉬어야 짐승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것이 오늘 신명기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근본 취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말씀하실 때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긴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아담의 자손들, 모든 인간 존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인권선언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아무렇게나 지내도 된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야는 하지만, 그 쉬어야 된다는 것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도 아무런 손도 쓰지 말고 굶주리는 사람은 계속 굶주리도록 방치하고 심지어는 안식일에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사람들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인이라는 올가미로 묶어서 영원히 풀려 나올 수 없도록 하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일을 해도 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라는 질문에서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라는 질문으로 초점을 옮김으로 해서 안식일에 관한 규정의 문제를 신명기에서 말했던 인간 보호의 측면으로 끌어갑니다. 다시 말해서 원래의 안식일 규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급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안식일에 관한 규정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법의 정신에도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것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법의 주인이며 모든 법은 사람에게 순종해야 한다." 한자로 법(法)이란 글자를 쓸 때에 '물 수(水)자, 갈 거(去) 자'라고 쓰는 뜻 그대로 '법'이란 물이 흘러 가는 것, 흘러야 할 물이 흐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을 족쇄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통치자들이 법을 백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해 왔던 우리의 불행했던 역사와 상당히 관련이 있습니다. 법에 의해서 규제를 받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탐욕, 이기심, 교만, 그리고 공동선을 깨뜨리고 타인을 상하게 하는 악행입니다. 법이 인간의 선한 의지를 훼방한다면 이미 법은 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법에 의해 처리한다.', '법대로 한다.'는 소리들을 많이 하는데 그 법이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고 자유를 제한하고 참정권을 제한하고 평등을 깨뜨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혈육의 정을 부정한다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신명기에서 안식일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는 것은 노예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한없이 착취하고자 하는 탐욕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 복음에서는 안식일법이 사람을 굶주리도록 놓아 두고 병고에 시달리도록 방치한다면 그 효력이 정지된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법이기 때문에 지킨다 하는 차원에서 더 뛰어넘어 법의 정신에 공감하기 때문에 지킨다 정도의 수준으로까지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공적인 법뿐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원칙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다른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러 이 세상에 오셨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자유를 주시러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사람이다. 따라서 모든 법은 사람에게 봉사해야 한다." 자신의 원칙이란 것이 타인에게 비수가 된다면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것도 신앙인의 용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피로 인해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원래 제2독서인 고린토 후서의 말씀대로 질그릇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그 질그릇 안에 하느님께서는 온갖 값진 은총을 담아 주시고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법의 주인으로서, 은총을 담은 그릇으로서 자유를 누리며 주위에 평화를 선사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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