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사랑하기에 입은 상처(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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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innasio] 쪽지 캡슐

2002-06-18 ㅣ No.2291

◆ 사랑하기에 입은 상처 (성서와 함께 6월)

 

 

 상처란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지속되는 것으로서 어떤 식이로든 현재

 의 삶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상처는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심리적, 정서

 적, 영성적인 불편함을 일으켜 준다. 인간은 ’ 살아있기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처

 를 주고받게 된다. 이처럼 상처라는 현실은 고통의 문제처럼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체인 인간 안에 공존하는 우리 삶의 본질에 속한다.

 우리는 삶 안에서 지나친 기대와 근거 없는 추측, 일방적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자기존중감의 결여, 자기주체성의 상실과 연약함, 왜곡된 신념, 그릇된 죄

 책감,감정의 억제와 잘못된 언어의 사용,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의 부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를 받는다.

 

 

 

 ** 어떻게 상처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상처를 입었을 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아니라 죽기까지 상처받으신 예수

 님과 더불어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첫째, 상처를 받아들이려면 먼저 상처를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어쩌지도 못하는 지나간 것을 끊임없이 회상하거나 상처는 제쳐두고 상대방을

 용서하는 꿈을 꾸는 등 상처를 회피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상처를 무조건 " 하

 느님의 뜻’이라고 말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하거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

 고 한다.그것은 상처입으신 하느님을 따돌리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

 난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일이든,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있는 그대로 직면하기를

 원하신다. 거룩함이란 회피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둘째, 상처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즉 나의 어떤 부분에서 쉽게 상처를 받으며 불편한지 이해해야 한다. 또한 상처를 쓸

 모 없는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아

 가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서도 안된다. 이러한 태도

 는 인간이 하느님이 되려는 처사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상처

 를 받았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어떤 상황에서 어떤 유형의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잘받는지

 

 미리 알고 이해한다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고 치유도 쉬워진다. 예컨데, 자긍심이 낮

 은 사람,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 경직된 믿음을 지닌 사람, 상처를 많이 받은 사

 람, 기대가 너무 큰 사람, 부정적인 사고의 틀을 지닌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쉽게 상

 처를 입힌다.

 

 

 

 넷째, 상대방의 ’행동이 아니라 그 원인’을 이해하도록 힘써야 한다.

 

 상대방에게만 문제의 원인이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의 잘못이나 부족함 또

 는 문제 발생의 계기를 제공한 면 등이 무엇인지를 살피도록 하여야 한다. 실제로 많

 은 상처는 자기식의 사고와 해석의 틀에 의해 만들어 진다. 마찬가지로 상처를 자기

 의 탓으로 돌리며 계속 자신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다.

 또한 자신의 비현실적인 기대를 구체화하고 지나친 기대를 버리며 욕구를 조절할 필요

 가 있다.

 

 

 

 다섯째, 상처를 덜 받고 상처에서 빨리 치유되려면

  참으로 소중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상처에 대한 생각과 느낌은 조정할 수 없다 해도 그에 대한 반응을 조절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다. 또한 부정적인 느낌을 내 안에 끌어들이면 들일수록 상처를 받

 아들이기는 어려워진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짐으로

 써 나 자신을 다른 이의 영향력에 맡기지 않도록 할 일이다.

 

 

 

 여섯째, 왜곡된 신념을 바로잡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어떤 특정한 사실을 보고 전체가 그런 것처럼 믿고 판단하는 일반화의 오류나 옳고 그

 름에 집착하는 것은 상처를 더 깊게 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는 반드시 깨끗해

 야만 하며 이상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나, 성숙한 사람으로서 쉽게 상처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신념을 바로잡을 때 치유가 가능해진다.

 

 

 

 일곱째, 감정을 눌러 쌓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적절한 방법으로 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무의식 속에 하나의 상처로 남게 되며, 삶에 여러 가지 형태로 영

 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감정표현이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상

 대방이나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 또는 하느님께라도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도록 해야 한

 다.

 끝으로, 우리의 상처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의 상

 처를 통해서 치유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고독, 소외, 이별, 미움등 어떤 형태의 상처

 든 그분의 상처와 무관한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스스로 상처를 받으신 예수님의 마

 음을 되새겨 보도록 하자.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주님께서는 "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셨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

 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셨다 "(이사 53,5)

 

 그분은 " 상처입은 마음을 고치시고 터진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시편 147,3)이시다.

 

 또한 예수께서 " 매맞고 상처를 입으신 덕택으로 우리의 상처는 나았다"(1베드2,24)

 

 예수께서는 인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상처받을 각오를 하고 오셨다. 거

 룩한 다섯 상처만이 아니라 죽음에까지 이른 그분의 전생애가 상처 자체였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죽음을 받아들이셨을까?

 그분은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어’ 고통과 죄악을 맞서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예수께서는 게쎄마니 동산에서 근심과 번민에

 싸여 그들에게 "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

 이 깨어 있어라’ 하고는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마태 26,38).

 예수께서는 또한 재판을 받으시면서도 조롱을 받으시고 매맞으시고 욕설을 듣는 등 심

 한 상처를 받으셨다.(마태 26,67-68 참조).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조차 모욕을 당하셨다(마태 27,39-44참조)

 그리고는 끝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27,46)

 하고 외치시며 죽으셨다.

 

 예수께서는 온전히 자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랑’으로 내놓으시고 비천한 우리 인

 간의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품으셨다. 예수께서는 충실하게 자신을 하느님께 바

 쳤으며 사랑으로 끝까지 인간을 섬기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결핍과 소외와 곤궁

 을 함께 느끼고, 함께 괴로워할 줄 알았다(마르6,34).

 이러한 그분의 헌신과 사랑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다.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써 우리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을 측은히 여기고 마음 아파하는

 하느님을 체험하도록 해주셨다. 나아가 친히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유

 해 주셨다. 이렇듯 예수님의 상처는 철저히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원천이시

 다.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수록 상처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사랑하기에 인간이 상처

 받는다면, 반드시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서 고통받으신다.

 하느님은 예수의 죽음 안에서 상처받으셨으며, 그 고통 속에서 당신 사랑이 얼마나 강

 한가를 보여주셨다. 상처받기를 기꺼이 택하신 예수님의 성심은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분의 상처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를 무화(無化)시키려고 위협하는 고통들

 을 이겨나갈 힘을 찾아내게 만들고 죽음을 정복하게 만든다.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

 에 상처받고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불가피하게 하느님을 닮아가게 된다.

 

 우리의 상처가 결국 하느님께로부터 버림받음으로써 죽으신 예수님의 구원의 상처에

 귀결됨을 깨달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는 그 십자가 사건에까지 들

 어가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을 지니신 주님은 우리

 의 아픔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깊이 관여하고자 하신다. 그분은 상처입은 우리의 이해

 심 많은 고통의 동반자이시다. 한편 우리가 상처를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성심

 의 상처에 동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상처는 그분의 상처 안에서 더 이상 상처

 가 아니라 선물이요, 나를 키우는 양식인 것이다. 사랑이 메말라가는 이 세상에서 하

 느님의 상처의 힘으로 온힘을 다해 서로의 상처를 품어줄 때 구원의 문이 열릴 것이

 다.

 

 

 

  기경호 프란치스코(수사 신부님. 작은 형제회 수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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