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너희는그의말을잘들어라(마르9,7)

인쇄

오하영 [oteresa] 쪽지 캡슐

2000-03-17 ㅣ No.1163

(나해) 사순 제 2 주일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마르 9,7)  

 

마음으로 깊이 이해하며 친구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적습니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아픔, 기쁨 등을 느끼기보다는 말해지는 것들에 자꾸 판단하려 하고 무언가 덧붙이려 합니다. 마음 가득 연민의 정으로 우리의 내적 상태를 느끼고 계실 그분을 생각하며, 이제는 나 혼자 말하고 판단해 버리는 일방통행이 아닌, 그분이 어떤 말씀과 모습으로 다가오시는지 귀기울일 때입니다.  

 

 

복 음 (마르 9,2-10)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다. 그 때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고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더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서 예수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셨으면 합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겁에 질려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엉겁결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바로 그 때에 구름이 일며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제자들은 곧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예수와 자기들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 오시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로 말하지 말아라" 하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서로 물어 보았다.

 

 

제 1 독서 (창세 22,1-2. 9ㄱ. 10-13. 15-18)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 올라 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야훼의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수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브라함은 곧 가서 그 수양을 잡아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다. 야훼의 천사가 또다시 큰 소리로 아브라함 에게 말하였다. "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 네 후손은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성을 점령할 것이다. 네가 이렇게 내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세상 만민이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

 

 

제 2 독서 (로마 8,31ㄴ-34)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길라잡이

 

하느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과 축복의 계약을 맺으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으며 자연적으로는 아이를 갖지 못할 나이에 축복의 징표로서 이사악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가족과 가축의 수가 부족의 실제적인 힘이었고 축복이었던 고대사회에서 아브라함 부부에게는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이사악이 모든 ’희망’이었고 ’웃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보시고자 외아들 이사악을 봉헌하도록 분부하십니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당신이 기적적으로 주신 선물을 다시 내어놓으라는 하느님의 요구가 부당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거부하고 도망치겠으나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산에 올라 서슴지 않고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즉 자신의 희망은 이사악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만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드린 것입니다.

지난 사순 1 주일 복음 말씀에서 예수께서 광야에 나가 사탄의 유혹을 받으시는 동안 천사들이 시중을 들었다는 말씀이나 오늘 독서에서 아브라함의 시험 중 이미 하느님께서 번제물 - 수양 - 을 미리 마련해 놓으신 것은 시련 중에도 하느님께서 늘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느끼게 해줍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첫번째 수난 예고와 두번째 수난 예고 사이에 있는 말씀입니다. 또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 -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 에 이어 수난 예고와 영광의 변모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메시아의 권능과 품위가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의 영광 모두를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십자가 너머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께서는 영광의 높은 산에서 험한 골짜기를 지나 사람들에게로 내려오십니다. 그곳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독설, 멸시와 모욕, 채찍질과 살과 뼈를 뚫을 창과 대못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머리 둘 곳조차 마련돼 있지 않고 위험이 가득 찬 곳입니다. 그러나 낮은 곳에는 낮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위험과 고통을 눈앞에 보며 하산하는 그 목적은 낮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온 세상의 형제가 되기 위함입니다. 마음으로부터 회개하는 사람, 의지할 데 없이 고통받는 사람, 오직 주님만을 경외하며 따르는 사람, 평화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찾아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또한 바로 나를 찾아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정상에서

 

1) 높은 산 정상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 성서 말씀에 대한 타성을 벗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새로움과 권위가 우리 가운데 울려 퍼지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만 퇴색하지 않는 진정한 희망이 있음을 알았던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의 용기를 되새겨봅시다.

 

2) 여러 선택의 순간에 당신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까? 당신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까?

 

 



1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