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동성당 게시판

나를 지켜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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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bluewave] 쪽지 캡슐

2000-04-12 ㅣ No.797

그녀는 운전사에게 요금을 내고,

운전사가 일러준 빈자리를 찾아

손으로 더듬더듬 통로를 지나 뒷자석으로 걸어갔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자리에 앉아

서류 가방을 무릎에 올려 놓고,

지팡이를 다리 사이에 기대 놓았다.

 

34살의 수잔 앤더슨이 장님이 된지도 1년이 흘렀다.

의사의 오진때문에 그녀는 시력을 잃게 되었고,

갑자기 암흑세계로 던져졌다.

분노와 좌절과 자기연민이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는 매우 독립적인 여성이었던 수잔 앤더슨은

이 끔찍한 운명의 변화에 자신이 벌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주위 모든사람들에게 짐이 되었다.

그녀는 마음이 분노로 가득차 신에게 항의하곤 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단 말인가요..."

하지만 아무리 울고 소리지르고 기도한다해도,

그녀는 고통스러운 진실 한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다시는 시력을 되찾을수 없다는 것이었다.

 

절망의 구름이 한때 긍정적이기만했던

수잔의 마음 속에무겁게 드리워졌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녀에게는 절망과 기진맥진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매달릴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남편 마크 앤더슨뿐이었다. 매크 앤더슨은 공군장교였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아내 수잔을 사랑했다.

 

아내가 시력을 잃었을때,

그는 그녀가 절망속으로 빠져드는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아내가 다시 힘과 자신감을 되찾아

독립적인 여성이 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마음먹었다.

군대 훈련을 오랫동안 받았기때문에

그는 민감한 상황을 잘 다룰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맞닥뜨린

가장 어려운 전투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수잔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출퇴근을 한단 말인가?

장님이 되기전에 그녀는 버스를 타고 회사에 다녔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너무도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남편 마크는 날마다

그녀를 회사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그런데 두사람의 직장은 정반대 방향에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두 사람에게 어느 정도 만족감을 주었다. 수잔은 안심이 되었고,

마크는 아주 작은 일에도 겁을 집어먹는

장님이 된 아내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마크는

이것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느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아내를 회사앞에 내려주고

자기는 먼길을 돌아와 근무지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다시 버스를 타고 다녀야만 한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차마 아내에게 그런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너무 연약했고,

마음속에는 분노가 가득차 있었다.

때문에 그런 말을 하면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마크가 예상한 대로

수잔은 다시 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생각에

공포로 몸을 떨었다.

"나는 앞을 못보는 장님이에요."

그녀는 금방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내가 어떻게 알수 있겠어요?

당신은 나를 귀찮은 존재로 느끼고 있는것이 분명해요."

그녀의 말에 마크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일이 수잔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수잔에게 혼자서 다닐수 있을때까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자기가 버스를 타고 동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렇게 했다.

2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군복차림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수잔의 회사까지 버스를 타고 동행했다.

그는 그녀에게 감각을 이용하는 법,

특히 소리를 통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가를 가르쳤다.

 

그는 그녀가 버스 운전사들과 친해질수 있게 도왔다.

그래서 운전사들이 그녀를 돌봐주고,

그녀를 위해 빈자리를 마련해 주도록 조치했다.

그녀가 발을 헛디뎌 버스 발판에서 넘어지거나,

서류가방을 떨어뜨려 버스 통로에 종이가 쏟아지는

별로 좋지 않은 날에도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웃게 만들었다.

 

수잔을 무사히 직장에 도착하게 한 뒤

마크는 택시를 타고 자신의 근무지로 가곤했다.

비록 이렇게 하는것이 전의 방법보다 더 비용이 들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마크는 이 일이 일시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만간 수잔이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닐수 있을 것을

마크는 믿었기때문이었다.

 

시력을 잃기전에 수잔은

어떤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었고,

무엇이든지 도중에 중단 하는 법이 없었다.

마침내 수잔은 자기 혼자서 다닐 준비가 되었다고

결정내렸다.

 

월요일 아침,

혼자서 버스를 타고 떠나기 전에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버스 동행자였던

남편이자 가장 좋은 친구인 마크를 껴안았다.

그녀의 눈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인내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가 작별인사를 하고,

두사람은 처음으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출근을 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날마다 그녀는 혼자서 아무 문제없이 출퇴근을 했다.

드디어 자신이 해낸 것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시력을 잃기 전 자신감 가득했던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는 생각에

그녀는 시력을 되찾은것 이상으로 몹시 기뻤고

그 기쁨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금요일 아침,

수잔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회사에 출근하기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목적지에 도착해 그녀가 버스를 내리려고 하는 순간

운전사가 말했다. "난 당신이 부럽소."

수잔은 운전사가 누구에게 말을 한 것인지

정확히 알수가 없었다.

지난 1년동안 살아남을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쓴 한 눈먼 여성을 누가 부러워 할것인가?

 

호기심이 나서 그녀는 운전사에게 물었다.

 

"혹시 나에게 한 말이라면, 왜 내가 부럽다는 거죠?"

운전사가 대답했다.

 

"눈이 멀어도 당신처럼 사랑받는다면,

보살핌을 받는다면 너무도 행복할 테니까요.."

 

수잔은 운전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무슨 뜻으로 그런말을 하는거죠?"

운전사가 대답했다.

"지난 일주일동안

매일 아침 당신이 버스를 내릴때마다

군복을 입은 잘생긴 남자가 길 건너편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소.

그는 당신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

회사 건물로 들어갈때까지 당신을 지켜보았소.

그런 다음 당신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소.

당신은 비록 눈이 멀었지만 정말 행복한 여성이오..."

 

그말은 들은 수잔의 빰에는

행복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더이상 두 눈으로 마크를 볼 수는 없지만

언제나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느낄수 있었다.

그녀는 시력을 잃은 후

한때 고통과 좌절의 나날을 보냈었지만

지금은 분명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인것을 알고있었다.

왜냐하면 마크는 그녀에게 그녀가 시력을 잃지 전에는

결코 느낄수 없었던

참사랑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랑은 그녀가 꼭 눈으로 봐야만 믿을수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닌 오직 마음과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그런 사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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