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어려운 이웃, 신부, 이제는 장가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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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란 [alinden] 쪽지 캡슐

2000-11-08 ㅣ No.1936

이젠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나 봅니다.

어제는 날씨가 갑자이기 추워져 노랗게, 빨갛게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우수수 바람결에 떨어져 내렸습니다.

아파트 주변의 수의 아저씨들, 거리엔 미화원 아저씨들의 손길이 바빠지셨습니다.

한 번이라도 손을 덜 쓰기위해 그나마 남아있는 나뭇잎마저 나무를 흔들어 떨구어 냅니다.

여름내 커다란 잎들로 따까운 햇살을 가려주던 플라타너스 잎들이 이젠 바람에 떨어져 사람들에게 마구 짓밟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나뭇잎들을 밟으며 어제 저녁 미사에 갔습니다.

 

미사중에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고, 또 지금 사회에서는 퇴출기업 명단이 발표되어 많은 분들이 안타까움을 겪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저물어 가는 가을과 또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는 이 시점은 생각만으로도 서글픈데 이런 안타까운 일들을 겪게되신 분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힘이 들까?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또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겨울이 추운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껴안아서  온기를 느끼게 하려는 하느님의 메시지라고 말입니다.

 

봄이 되면 만물의 소생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은 희망을 갖게되고, 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자신의 삶을 비워내는 연습을 우리는 해마다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낙엽되어 떨어진 잎들은 자신을 잘 썩게해서 내년에 더 나은 삶에로 또 더 많은 잎들을 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처럼 오늘 힘들어 삶에 지친 많은 분들이 하루 빨리 희망찬 내일을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서로가 이웃이 되어 힘들때 도와주며, 그 무게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글은 지난 11월 5일자 평화신문에 기재된 어느 신부님의 글입니다.

노쇠하신 할머니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제 곁에서 하시는 말 처럼 생생하고 또 위령성월, 이 쓸쓸한 계절에 읽어서인지 더 애틋함을 느꼈습니다.

 

     <사목일기 >         김진룡 신부 (전주교구 복자본당주임)

 

                 "신부, 이제는 장가 가야지"

 

"할머지 저 왔어요."

방 한 켠에 할머니가 누워있었습니다. "할머니 저 왔다니까요" 재차 떠드는 소리(?)에 할머니는 귀찮은 듯 선잠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킵니다.

"뉘 시더라?" 할머니 저예요, 본당신부." 할머니는 요즘 치매증세가 엿보입니다. 젊은 시절 총명하기로 우명했다는 할머니는 가물가물해지는 기억력에 몹시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왔어요. 영성체 하셔야지요." 방문할 때마다 반복하는 설명이지만 그래도 할머니에게는 꼭 필요한 사전절차입니다. "암 그래야지. 주님을 모셔야지. 내가 성당을 못가서 미안혀." 참으로 다행스러운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내 성호를 긋습니다. "할머니, 예수님 모시기 전에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잠시 반성해 봅시다." "응, 근디 신부는 날 잘 알어? 난 통 봇 본 것 같은디." 잠시의 침묵도 할머니에게는 필오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그저 앞에 사람이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듯 질문 공세입니다.

"할머니, 저 요전에 왔었지오. 그리고 매달 할머니 집에 오는데요."   "그랬던가? 난 요즘 통 기억력이 없어서." 말상대가 그리운 이 분에게 복음 해설보다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신부 나이가 몇이지? 아이고 그렇게나 먹었어 참 젊어보이는데, 이제는 장가가야지." 속사포처럼 당신의 할말을 하십니다. 그것도 부족한지 말씀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이 나이 먹었으면 혼인을 해야 돼." 할머니의 철학강의를 막을 틈이 없습니다,. 조금 톤이 낮아지면 그 때가 바로 다음 순서를 진행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할머니 이제 그런 바람을 하느님께 기도해야지오." "맞어 우리 기도혀."  `주님의 기도’ 를 시작했습니다. 정성스럽게 손을 모으고 흥얼흥얼거리며 옛 `주기도문’을 외우시는 할머니의 얼굴은 어린이의 순박함만이 남아있습니다. 영성체를 하셨습니다. 정성스럽게 성호를 긋더니만 이내 말씀이 이어집니다.

"신부, 다음에 올 때는 꼭 짝쿵을 데리고 와, 내가 축복해 줄게."

에고, 할머니는 신부 장가보내려고 기도하셨나 봅니다.

 

11월은 위령성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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