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된장찌개와 좋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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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1-06-19 ㅣ No.4712

 

 어렸을 때부터 난 유난히도 된장찌개를 좋아했었다.  동네 언저리에서 해가 어슬어슬 저물어 갈 무렵까지 다방구니, 줄넘기니, 귀신놀이등을 하며 놀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 밥먹구 놀아라. ’ 하시면 두부와 우렁이를 많이 넣어 끓인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가지고 나와서 아이들과 함께 먹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곤 한다. 특히나 유전자 조작 콩 때문에 된장찌개와 그 흔한 두부마저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된 이즈음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서까지 친정엄마가 해마다 담가주시는 된장 맛은 아마도 그 어떤 음식보다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향내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양식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차츰 자라면서 나도 우리 어머니처럼 내 아이에게 된장을 담아 줄 수 있어야 할텐데 하는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었는데 마침, 우리농에서 된장 축제가 있다길래 만사를 제쳐두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놈까지 대동하여 아산으로 향했다.

 

 

 눈 어림으로 200개가 넘어 보일정도의 항아리들이 즐비하게 놓여진 야트막한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그 곳에는,  ’ 좋은 먹거리를 만드는 일은 바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 ’임을 자부하면서 힘겹고 고통스러운 외길을 고집하는 맑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를 기다리는 메마른 논길을 따라 들려오는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가락은 우리농에 공급되는 된장에 풍미를 더해주겠지. 오리농과  된장생산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하여 문화운동까지 하고 있는 맑지만 젊은 부부 (이름 모름..)와 당진에서 올라오신 정마리아님, 그리고 금산 가톨릭 농민회분들..이분들이 있기에 좋은 먹거리와 함께 세상은 분명, 밝아질 것이다.

 

 

 학교에서 우등생이었던 난, 세상으로 나오면서부터 참 많이도 힘들어했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던 수많은 세상의 이치들.....그러면서도 그럭 저럭 안주하며 살아 왔었는데....우리농 일을 함께 하면서 내가 얼마나 바보처럼 살았는지 고개를 쳐박고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이랄까?  내가 그처럼 좋아하던 음식인 된장의 오묘하고 깊은 맛속에는, 하느님께서 그토록 소중히 아끼시는 우리 사람의 힘겨운 땀과  정성이 깃들여져 있었다는 걸...이제서야 깨닫게 되다니........

 

 

 이즈음 난, 일차먹거리를 생산해내시는 분들의 수고로움에 실로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가 없다.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면 모내기가 한참인 들녘을 볼 수 있었던 어린시절과 달리 가는 곳마다 빼곡이 아파트와  공장과 골프장이 늘어가는 이기적인 성장위주의  경제구조안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들을 흘리셨을 귀농민들에게 깊은 찬사를 드리면서 자주 밥상에 올라오는 된장찌개를 먹을 때마다 정마리아자매님께서 해주신 소중한 말씀을 잊지 않으리라.

 

 

 귀농은 단지 농민들이 잘 살기 위한 생존만이 아니라, 후손에게 남겨줄 좋은 환경을 가꾸어가는 생명운동이다.  좋은 먹거리를 만드는 생산자나, 좋은 먹거리로 밥상을 꾸미는 주부들 모두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작지만  위대한 힘이란 걸 밥을 먹을 때마다 되새기리라. 오늘도 일차생산에서 가공과 소비까지 완전한 생태마을을 꿈꾸신다는 자매님의 맑은 얼굴을 떠올리면서 어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비가 우리 농민들 가슴에 사물놀이의 흥겨운 장단처럼 굳건한 힘이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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