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이춘욱 스테파노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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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 [nemokan] 쪽지 캡슐

2001-05-24 ㅣ No.1675

오랫만에 들어왔더니...

아이구..이게 뉘기시여?

우리 스테파노형제님 아니신감?

암튼 이 좋은 5월에 우리 사랑방에 출입을 하셨음은

이게 모두 주님의 뜻일게요.

 

지가 "환영인사 전담 맨" 이외다.

누구든지 들어오시면 지가 쌍수를 들고 요로코롬 환영을 나갑니다.

이젠 가끔 자주(?) 뵙시다.

사랑방 활성화도 좀 시켜주시구요.

좋은 말씀 좀 많이 해 주시구

 

5학년에 해당하는 사람 일독하라는 시를 보고나니

나 또한 5학년인지라(이건 자랑할거는 안되는데...)

생각나는 시가 있어서 올려봅니다.

공감하시는 5학년 형제분들 많을끼라...

특히 미지막 부분...

 

 

 늙어 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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