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윗집 아랫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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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28 ㅣ No.5476

 

얼마 전 강남의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리저리 많이 옮겨 다녀서 이력이 났다고는 해도 이사란 늘 힘든 일입니다.

"휴, 힘들다."

식구는 단촐하지만 제 도래 아이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큰 먹보 아들과 온동네 소문이 자자한 왈가닥 딸.

"아야!"

"아휴... 저게!"

둘이 모이면 노는 게 거의 전쟁이라 이사만 하면 아랫집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걱정이었습니다.

"우와, 운동장 같다! 헤헤헤."

"에잇, 내 새총을 받아라, 이얍!"

"아유 좀! 조용히 좀 해라. 아랫집에서 올라오면 어쩌려고...."

이사한 아파트는 12층 꼭대기.

아이들은 짐을 옮기기도 전에 전쟁을 시작했고 무슨 불똥이 튈지 몰라 걱정하던 나는 그날로 떡쟁반을 들고 아래층을 찾아갔습니다.

"누구세요?"

"네. 위층에 새로 이사온 사람이에요.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아주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애들이 어려서 막무가내로 뛰어다녀요. 시끄러우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부탁을 하긴 했지만, 시부모까지 모시고 산다는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 불안함고 모른 채 아이들은 벌써 소파에서 식탁으로, 식탁에서 바닥으로 점프를 해대며 난장판을 만들었고 주의를 줘도 그 때 뿐이었습니다.

며칠 후 저녁 무렵 그날도 어김없이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무슨 소리를 들어도 그저 미안하다고 해야지 생각한 내가 문을 열자 아들 또래의 아래층 남자애가 서 있었습니다.

"엄마가요...윗집애하고 친구하라고 해서 왔어요."

"그, 그래? 엄마가? 어서 들어오너라."

나는 시끄럽다고 핀잔하는 대신 아들을 올려 보내 친구삼게 한 아랫집 사람들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전했고, 윗집 아랫집 두 아들은 일 주일도 안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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