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계란 세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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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집은 그리 부유한 편이 못됐습니다. 그래도 자존심 하나만은 세상 그 누구보다 높았던 내가 친구네 양계장으로 계란을 사러 갔던 날의 일입니다. "어, 선희 왔네. 계란 사려고?" "어? 으응." 친구는 하지 않아도 될 배려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아저씨. 얘 내 친군데요. 깨진 계란 몇 개 더 주세요." "얼마나 살 건데?" "아, 아냐... 덤은 필요 없어." 깨진 계란 몇 개 더 집어주라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럽고 자존심 상하던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선희 계란 사러 왔니? "네." "이리 따라 와라." 그리고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나를 계란이 쌓어 있는 헛간으로 데려갔습니다. 바구니마다 가득 쌓여 있는 계란 중에서 가장 굵고 실한 것만 골라 담은 뒤 세 개를 더 얹어 주었습니다. "이건 덤이다." "아 아뇨. 아줌마, 안 주셔도 돼요." 또 한번 자존심이 상한 내가 필요 이상 과장된 어투로 덤을 거부하자 친구 어머니는 바구니를 내 손에 쥐어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선희야, 니가 계란을 들고 가다 보면 틀림없이 밑에 있는 게 눌려서 두 세 개는 깨질거다. 이건 그냥 덤이 아니라 깨지게 될 걸 대신해서 주는거야. 됐지?" 어린 내 마음에 상처가 가지 않게 하려고 애써 짜냈을 그 특별한 계산법. 그때 그 친구 엄마가 얼마나 커 보이고 얼마나 고맙던지. 나는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지금도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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