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계란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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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31 ㅣ No.5490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그리 부유한 편이 못됐습니다.

그래도 자존심 하나만은 세상 그 누구보다 높았던 내가 친구네 양계장으로 계란을 사러 갔던 날의 일입니다.

"어, 선희 왔네. 계란 사려고?"

"어? 으응."

친구는 하지 않아도 될 배려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아저씨. 얘 내 친군데요. 깨진 계란 몇 개 더 주세요."

"얼마나 살 건데?"

"아, 아냐... 덤은 필요 없어."

깨진 계란 몇 개 더 집어주라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럽고 자존심 상하던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선희 계란 사러 왔니?
밭일 나가던 친구 어머니가 그 어색한 분위기를 짐작이라도 한 듯 다가왔습니다.

"네."

"이리 따라 와라."

그리고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나를 계란이 쌓어 있는 헛간으로 데려갔습니다.

바구니마다 가득 쌓여 있는 계란 중에서 가장 굵고 실한 것만 골라 담은 뒤 세 개를 더 얹어 주었습니다.

"이건 덤이다."

"아 아뇨. 아줌마, 안 주셔도 돼요."

또 한번 자존심이 상한 내가 필요 이상 과장된 어투로 덤을 거부하자 친구 어머니는 바구니를 내 손에 쥐어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선희야, 니가 계란을 들고 가다 보면 틀림없이 밑에 있는 게 눌려서 두 세 개는 깨질거다. 이건 그냥 덤이 아니라 깨지게 될 걸 대신해서 주는거야. 됐지?"

어린 내 마음에 상처가 가지 않게 하려고 애써 짜냈을 그 특별한 계산법.

그때 그 친구 엄마가 얼마나 커 보이고 얼마나 고맙던지.

나는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지금도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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