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8주일(다해) 루카 12,13-21; ’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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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7-08 ㅣ No.5098

연중 제18주일(다해) 루카 12,13-21; ’22/07/31

 

 

여러분은 얼마나 버십니까? 각자가 다르시겠지요.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벌어야 합니까? 얼마나 받아야 정당하고 충분한 것입니까?

우리 노후를 위해 얼마나 준비해야 합니까?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직종마다 다르고, 또 시대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릅니다.

 

1891년 노동헌장 반포 이후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합니다. 인간적인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간직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단지 밥만 먹고 사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문화생활과 여가활동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세끼 밥 먹고, 일하고, 성당에 가고, 적어도 한 주 또는 형편에 따라 한 달에 한 번은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일가친척의 애경사에도 참여하고, 박물관이나 영화도 보고, 휴가도 가고, 자선도 하고, 목돈이 들어갈 때를 대비해서 보험도 들고 여유자금도 준비하고 등등입니다. 그리고 또 현세와 미래를 보장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벌고 얼마나 받아야 합니까? 그렇게 따지면, 지금 내가 벌고 받는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섭섭하지 않고 기죽지 않고 살려면 한이 없다고 느낄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인간적인 품위를 말합니까? 그것은 최소한의 검소한 인간적인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각 나라는 한 개인의 '최저 임금제'와 한 가정의 '최저 생활비'를 정하게 되었고, 그 최저 비용은 각 나라마다 자기 나라의 사회현실에 맞춰 정해 발표합니다.

 

그런데 돈을 벌고 쓰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적게 벌어 많이 쓰고, 또 어떤 사람은 많이 벌어서 적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적게 벌면서도 악착같이 절약해서 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많이 벌고도 여기 저기 흥청망청 많이 써서 돈을 모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관리하는 방법도 달라서, 어떤 사람은 미래와 비상시를 위해 돈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 가져가지도 못하는 돈을 왜 모으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있는 만큼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 없어서 고생해 본 사람은 여윳돈을 항상 비축해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각자마다 돈 쓰는 경우와 기준이 다르고, 보장된 사회 속에 사는 사람과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 사는 사람이 또 다르기에 딱히 '이것이 좋다.' 그리고 '이래야 한다.'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돈이 적으냐 많으냐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만 많으면 뭐든지 다 해주고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많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각 집안과 가정들을 보면 오히려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니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없으면 집안이 서로 도우는데 반해서, 있으면 다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그 있는 것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한 집안이나 한 사회가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늘 복음도 그렇습니다.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 12,13)

 

정의를 이야기하고, 남의 재산 소유 정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14)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똑같이 돈에 눈독이 들어서 싸우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상에 달려 있지 않다."(15)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가 그야말로 맘 편하게 돈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부자에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20)

 

그러시고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21)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콜로 3,1-2. 4)

 

그렇다면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돈을 벌고 또 얼마나 저금하고, 또 어떻게 돈을 쓰며 살아야 하는가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하느님께 관심을 둬라.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께 관심을 두고, 하느님께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나에게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또

'나에게 들려주신 그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까?‘

하며, 주님의 말씀에 굶주리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목말라하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께 인색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여러 가지 사정과 변수로 말미암아, 주님의 말씀을 100% 온전히 다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주님의 말씀을 실현해 가면서, 주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느님 나라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도록 합시다. 주님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하는 것처럼, 현실과 재물에 목마르고 굶주려 늘 모자르고 불안전하고 불평스러우며 불만족스러워서 불행 속에 살기보다는, 주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으로 채워지고 풍요로와져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합시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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