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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14 부활 제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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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05-14 ㅣ No.383

2010 5 14일 금요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
요한 15,9-17)

 

 This is my commandment:

love one another as I love you.

No one has greater love than this,
to lay down one’s life
for one’s friends.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you.

 

☆☆☆

 

                                            

말씀의 초대


베드로는 공석이 된 열두 제자의 빈자리 하나를 채우자고 한다. 모든 일은 성경에서 예언된 것이었다. 두 사람이 추천되었다. 공동체는 기도 후 제비뽑기로 마티아를 선택했다. 그는 사도단의 일원이 되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의 사랑은 자비와 용서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말씀은 그분처럼 베풀고 용서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실 만큼 사랑하셨다. 신앙인의 사랑도 그래야 한다. 그렇게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러면 은총이 함께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말을 바꾼다면, ‘내가 너희에게 관심을 가지듯이 너희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관심은 돌보는 행위입니다. 꽃나무를 가꾸듯 서로에게 ‘생명력’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창조주의 관심이 있기에 세상 만물은 생기를 띠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장미의 향기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안다.’고 답하자, 말로 표현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표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그분의 따듯한 마음입니다. 그분을 닮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 ‘물들어 가는’ 것이지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감동시켰듯이 너희도 서로 감동을 주며 살아라. 내가 너희를 용서하였듯이 너희도 용서하며 살아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동입니다. 사랑은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랑’을 제자들에게 남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명하고 계십니다.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감동과 용서를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겠습니다.

 

☆☆☆

나를 아시는 주님, 주님을 아는 나

-김찬선신부-

 

오늘은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잘 알다시피 마티아 사도는 배반자 유다의 뒤를 이은 사도인데

사도들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한 다음 제비 뽑아 사도가 된 분입니다
.

이 기도에서 사도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주님이라고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이 고백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이라고 할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니 고맙고 기쁩니까
,
아니면 두렵고 떨립니까
?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우리 마음 상태에 달려 있겠지요
.
우리 마음이 슬프고 괴로우면

그것을 알아주심은 사랑이 되어 기쁘고 고맙지만

우리 마음이 악과 음모를 품고 있으면
내 마음을 아심은 폭로와 심판이 되어 두렵고 떨릴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내 마음을 아신다고 할 때

우리는 그 아심에 대해
기쁘거나 슬픈 감정으로만 응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
전 존재적으로 응답하게도 됩니다
.
내 마음을 다 아시니 숨거나 숨기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숫제 존재 전체를 하느님께 맡길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도망치려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앎과 믿음에 달린 것입니다
.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
,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믿느냐
,
이것에 따라 전적으로 맡길 수도 도망칠 수도 있는 것이지요
.
하느님을 좋은 분, 사랑이신 분으로 믿는다면 맡길 것이요
,
하느님을 나쁜 분, 미움이신 분으로 믿으면 도망칠 것이며
,
나쁜 분, 미움이시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좋은 분, 사랑이신 분으로 믿지 못한다면 완전히 의탁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다 아시는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하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 아시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다 아는 것이 아니고 잘 아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하느님을 다 알 수도 없고

그래서 하느님을 다 알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하느님을 잘 알기는 해야 합니다.
좋으신 분, 사랑이신 분으로 말입니다
.

그러므로 마티아 사도의 뽑힘은

좋으신 하느님에 대한 사도들의 善知識의 결과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뽑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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