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나를 찾는 사람들

인쇄

장성순 [elsie] 쪽지 캡슐

2000-04-11 ㅣ No.1051

신부님! 이 기사가 맞는지요?

 

 

 

나를 찾는 사람들

 

 

[나를 찾는 사람들] 깨달음에 대한 욕심조차 내던져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78-4 천주교 예수회 ’말씀의 집’은 긴 터널의 끝자락에 숨어

 

있었다. 수원-신갈 간 고속도로는 좁은 터널 하나만을 남겨둔 채 마치 속(俗)과 성(聖)을

 

나누듯 수원시내와 말씀의집을 그렇게 나눴다.

 

 

가냘픈 몸매에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의 이하영(34)씨도 속세를 벗어나듯 다른 21명의

 

수련 참가자를과 함께 이 터널을 건너왔다. 몇 달 뒤면, 다시 나올 수 없는 강원도의 한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수녀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 그는 평신도로서는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영신 수련에 쓰고 있었다.

 

 

그는 고아였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가정에 입양되었으나 세 번이나 양부모로부터 버림받는

 

아픔을 겪었다. 17살부터는 공장 등을 다니며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아왔다.

 

그에게 삶은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영신수련의 첫 과제는 그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었다. 수녀의 길을

 

택할 만큼 이젠 속세에 미련도, 상처도 남지 않았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이것이 자기 기만

 

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묵상도중 초등학교 6학년 때 주변의 사랑을

 

받고 싶어 몸부림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고, 통곡이 터져 나왔다. 문을 닫아걸고 밤새워

 

울었지만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양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자신을

 

내친 그들이 한없이 미웠다. 이토록 무서운 증오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1년반동안 받았던 심리 상담 과정에서도 이런 증오심은 나타난적이

 

없었다. 아픈 과거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조차 않은 마음이 증오심을 더 깊이 감추었던 것

 

이다.

 

 

하느님에게 화풀이를 했다. 왜 양부모를 만나게 했느냐고 따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묵상 가운데서 자신이 그토록 고통받고있을 때 언제나 함께 해온 하느님의 현존

 

자각했다. 증오심은 사라지고, 그는 또 울었다. 하지만 이 눈물의 의미는 달랐다. 한때나마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준 양부모들에 대한 이해와 감사 때문이었다.

 

 

둘째주가 지나면서 말씀의집에 익숙해진 수련자들은 독방에서, 기도실에서, 광교산의 산책

 

길에서 깊은 묵상에 잠겼다. 매일 오전 11시 10분 미사 때 유시찬 신부의 유머 섞인 강론

 

시간 외엔 온전히 내면에 잠겨 있었다.

 

 

피붙이가 없는 하영씨는 검정고시로 간신히 고졸 자격을 딸 정도로 워낙 가진게 없기에

 

욕심도 없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열등의식의 뿌리엔 ’뭔가를 가지려는’소유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못가졌기에 더욱 쟁취하려 하고, 가진 자를 이유없이 미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더 깊은 내면엔 자신보다 더 못가진 사람을 멸시하는 듯한 모습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못 배우고 가지지 못한 데 감사"했다. 더 많은 것을 가졌더라면 더욱 교만과

 

죄에 물들었을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김아무개(60.ㅎ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도 성공과 부에 대한 꿈이 헛된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집착을 버린 평범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미사 때도, 기도 때

 

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깨달음 속에서도 여전히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는 내면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다.

 

 

섬유회사를 경영하다 40살이 넘어 신학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서울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최성림(50)씨. 사업을 하며 문란했던 과거의 생활때문에 묵상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로 내 인생의 어두운 경험조차 삶의 소중한

 

자산으로 부활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텔레비젼도 신문도 대화도 없이

 

20여일을 오직 내면만을 응시하면 보냈지만 50평생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했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평생 수도원을 벗어날 수 없는 규율이 있는 봉쇄수도원의 수도자이면서도 특별한 허가를

 

받아 영신수련에 참여한 한 수녀(38)는 "과거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보지 못하고 내 틀로

 

본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고정관념, 이기심, 욕심에서 벗어나니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였고, 악도, 적도 대적하지 않고, 부드럽게 끌어안으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 밝아졌던 하영씨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다. 왜일까. 세속의

 

미움도 욕심도 버리고 수도자의 길로 들어선 이상 큰 깨달음을 얻어 영성의 대가가 되겠

 

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세속의 욕심이 깨달음에 대한 욕심으로 옷만 갈아

 

입은 격이었다.

 

 

"이 욕심마저 버리지 않는 이상 하느님이 내게 들어올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가 속을 떠나 성스러워지겠다거나, 깨닫겠다는 집착마저 버리고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을 송두리채 던져야 하는 결단 앞에

 

주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착의 끝에서 마지막 묵상기간인 부활주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  조연현 기자 -

 

 

 

 

 

 

 

 

 

 



11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