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이천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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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준 [john618] 쪽지 캡슐

2000-04-28 ㅣ No.758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져 삼수를 할 때였다.

엄마는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내가 아침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그때마다 내 손에 꼭 이천원을

쥐어 주셨다.

그리고 엄마는 아침도 거른 채 그 길로 가게에 나가셨다.

그 해 겨울 나는 또 대학에 떨어졌다. 좌절감에 거리를 방황하던

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가 대문 앞에 쪼그

리고 앉아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추위에 떨며 나를 기다렸는지

엄마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재경아,이것아...." 엄마는 얼른 내

손을 꽉 잡더니 그만 스러지고 말았다. 엄마의 병은 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로가 겹친 뇌졸중이었다.

처음에 엄마는 심한 언어 장애에 기억력까지 상실하여 우리 가족들

의 이름은커녕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고, 의사 선생님은 ’흰돼지’로

불러 병실을 온통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퇴원 후에도 엄마는 가끔 집 앞 구멍가게에서 집을 못 찾아 하루 종

일 동네를 헤매고 다녀, 나와 언니는 교대로 엄마를 곁에서 지키고

있어야 했다.

내 스물한 살의 생일날이었다.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엄마

때문에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엄마

가 들어오셨다.

"내가 죽으면 우리 막내딸은 어쩔까? 누가 우리 딸 걱정해 줄까?"

엄마는 뜬금 없이 이렇게 말하고는 눈물이 그렁 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며 내 손에 뭔가를 꼭 쥐어 주셨다. 손을 펴 보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원, 십원짜리 동전들이었다.

세어보니 꼭 이천 원이었다. 정신을 잃는 그 순간에도 막내딸에게

이천 원을 쥐어 주는 것을 잊지 않으신 엄마, 나는 그만 엄마를 붙

잡고 큰소리로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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