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판관 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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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annasee] 쪽지 캡슐

2001-07-22 ㅣ No.2635

판관 드보라.  판관에 대해 좀 안다면 드보라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그녀의 모든 걸 얘기해주고있다해도 무방할것이다. 드보라- 덤벼라 하며 전쟁에도 담력있게 츨동했던 판관. 그것도 여판관!(연두색은 신부님 강론에서 취록한 글임을 밝힙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사무엘의 왕정시대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판관시대를 맞게된다. 판관이란 왕은 아니지만 민족을 지도하는 통치자로서 사법과 행정을 관할했다. 판관이란 ‘구원자’라는 뜻으로 재판관의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다. 판관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위급한 국가위기 때 군대 총사령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판관시대는 그야말로 군웅할거의 과도기였다.

 

 BC 1200 - 1020 시기가 판관시대였는데 신부님 의견으로는 판관 시대가 가장 좋았던 때였으리라고 하셨다. 말씀이신즉, 왕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백성이 원하든 원치않던 왕의 명령을 복종해야하는 왕권신성적인 존재였지만 판관은 그의 인격과 신망을 보고 백성이 따르기를 결정하기에 민주적이었으며 판관의 말은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판관은 생계를 유지하는 다른 직업과 병행해서 판관일을 보았다고한다.

 

지파별로 소판관이 있었고, 이스라엘민족 전체의 일을 결정하는  대판관이 있었다.  따라서 판관시대는 (지파별/거국적) 의사결정이 판관의 인격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행해지는 좋은 점은 있었지만  강력한 응집력은 없었기에 이스라엘인들이 왕을 원했다한다.

 

강력하게 민족을 통치할 왕이 아직 없었으니 사람들마다 자유와 평등을 주장 하고 야훼신앙을 버리고 가나안의 우상신인 바알을 섬기며 우상숭배에 빠지는 사람이 늘어 났다. 그때마다 하느님은 판관을 보내시어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게 역사하셨다.

 

어찌보면 인간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그것이 의미하는 스스로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한다.  그 모호한 혼동상태, 가변성의 중력장을 못견디나보다. 책임과 모호함이란 얼마나 두려운 말인가. 그리고 어떤식으로든 결딴내고 싶어한다.  대부분 과거의 습관으로 복귀하는 방식으로. 그것이 좋은 습관이든 아니든. 이스라엘인들도 하느님을 배반했던 조상들처럼 자꾸 이방신을 섬기며 하느님을 배반하는 행위를 습관처럼 일삼고.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느님께서는 이민족을 그대로 두시고(판관\2,25-26)여러민족과 어울려 살게하셨다(판관 3,5-6). 그 이유는 그들의 순수 신앙을 시험하시려고. 시험이란 어찌보면 단련시키는 것이리라. 약속의 땅에 입성하여 정착하게되는 그들이 치뤄야 하는 통과의례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이스라엘인들은 통과의례로 엄청난 시련을 당한다. 가나안의 왕 야빈과 그의 장군 시스라가 이스라엘을 막강한 힘으로 20년이나 못살게 구는 것.  

 

그 때 이스라엘의 판관이 라삐돗의 아내 여예언자 드보라였다(판관 4,4). 나무밑에서 판결을 해주고 아마도 집에 가서는 저녁을 해야하는 평범한 주부이기도했다.이스라엘의 판관 중 드보라는 유일한 여성이다. 여성이 절대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당하던 당시에 여자 판관은 가히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만큼 그녀의 인물됨이 출중했을 것이다. 어느날 드보라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셨으니, 납달리 지파와 즈불룬 지파에서 1만명을 뽑아 다볼산으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 야빈 군대의 지휘관 시스라를 키손강으로 유인해 우리손에 섬멸케 하시겠다 고 약속하셨다고(판관 4,6-7). 그 대 바락이  당신이 함께 가신다면 가겠다(판관 4,8)라고 고백하는 것을 봐도 모든 지파가 그녀를 따를만큼 그녀의 신망이 두텁다는 것을  알 수 다 . 지금의 전쟁 소집령은 강제성을 가지지만 그 시대는 판관을 보고 백성 스스로가 선택했다 한다.

 

여기 또 한 여자가 등장한다. 야빈의 장군 시스라가 드보라와 바락의 군대에 쫒겨 야빈과 동맹관계에있는 헤벨에게로 도망친는데 바로 그의 아내 야엘이 그에게 극진한 대접을 한후 안심하고 잠든 틈을 타 그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이고만다. 드보라가 기획한 것을 야웰이 마친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두 여인에 의해 20년 동안이나 시달리던 이스라엘인들은 그후 40년 동안 평화를 누리게 된다고.

 

드보라가 야엘을 칭찬하는 노래중에 "방구석에 묻혀 사는 어느 여인보다 복을 받아라(판관 5,24)"라는 말씀이 나오는 데 이러한 여인의 모습은 남성중심의 우리 사회가 여자에게 원하는 원형이 아닌가. 그것을 아름다운 여인의 표상으로 만들고 있고 또 그런 고정관념에 여자 스스로가 만족하는 것이 문제라셨다.  또 시스라의 어머니처럼(판관 5,30)남편이나 아들이 밖에서 무슨 짓을 했던 상관않고 그저 무언가를 가져다만 주기를 바라것이 우리 여자들의 길이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자기 핏줄만을 생각할 때 그러기 쉽다고.

 

여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는데 시작과 끝(알파요 오메가)이었듯이 우리의 가정에서도 그렇다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성서의 여인을 들어가면 갈수록 여인의 역활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정신이 번짝 들지 않으십니까? 그 깨어 나는 정신을 위하여!

 

**사족)갑자기 그녀의 남편이 궁금해진다. 멋진 남자나 여자를 보면 저사람의 부인은,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아마도 그녀의 남편은 나무밑에서 재판을 하느라 늦게 집에 온 그녀에게 하루 종일 일하느라 자신도 힘들었겠지만 한 끼정도는 가볍게 양젖 한잔씩과  종려나무 열매 말린 것을 차려 놓고 드보라가 들려주는 그날 있었던 재판 이야기를  진수성찬삼아 저녁을 먹으며 또 자신의 하루얘기를 안주삼아 포도주 한잔을 그녀와 함께 기울이지 않았을까? 산적한 일들로 서로 심신이 피곤하지만 한 끼의 식사시간만큼은  어깨의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아내의 짊까지도 가벼운 농담으로 잠시라도 가볍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워 질줄도 아는  남자.   그들에게 허락하신 또 하루를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

 

다음주는 나오미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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