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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Sanctification)의 현실적인 예 [교리용어_성사] [교리용어_준성사] 540_ 58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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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4 ㅣ No.635

게시자 주: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에서 성화의 현실적인 예 모음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를 펼쳐 놓고 아래의 번호 위 아래의 내용도 함께 학습하시면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구원(Salvation)관인 성화(Sanctification)에 대하여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클릭하세요)

 

 

1. 성화 (라)Sanctificatio (영)Sanctification

 

성덕(Holiness)으로 초대 2813;

 

2813 세례성사의 물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성령으로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여졌으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1고린 6,11).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생에 걸쳐 “거룩하게 살라고”(1데살 4,7) 우리를 부르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그리스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1고린 1,30).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가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게 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여기에 우리의 첫 번째 청원의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거룩하신데, 누가 그분을 거룩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는 말씀에 따라, 세례성사로써 거룩하게 된 우리는 우리가 꾸준히 거룩한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잘못을 저지르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성화를 통해 우리의 죄를 정화해야 하므로, 우리는 이를 날마다 청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함이 우리 안에 지속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화를 위한 교회 824,827;

 

824 그리스도와 결합된 교회는 그분을 통하여 성화되며, 교회도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성화시키는 도구가 된다. “교회의 다른 모든 활동이 그 목적으로 추구하는 인간 성화와 하느님 찬양이 가장 커다란 효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 안에 풍부한 “구원의 수단”들이 위탁되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덕을 얻게 된다.”

 

827 “‘거룩하시고 순결하시고 흠이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를 모르셨지만 오로지 백성들의 죄를 없애러 오셨으므로,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 성직자들을 포함한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 끝날까지 모든 사람 안에 죄의 가라지와 복음의 좋은 씨가 함께 자라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손길에 붙들렸지만 아직은 성화의 길을 가야 하는 죄인들을 불러모은다.

교회는 은총의 생명 이외에 스스로 다른 어떤 생명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 품안에 죄인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거룩합니다. 그 지체들은 교회의 생명으로 살아감으로써 성화됩니다. 그러나 그 지체들이 이 생명에서 벗어나게 되면 죄와 무질서에 빠지고, 이로써 교회의 거룩함이 빛을 발하는 데에 장애가 됩니다. 교회는 이러한 죄에 대해 괴로워하며 속죄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은혜로 자녀들을 죄에서 해방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밖에서 발견되는 성화의 요소들 819;

 

819 또한 “성화와 진리의 많은 요소들”이 가톨릭 교회의 가시적 울타리 밖에도 존재한다. 그것들은 “기록된 하느님 말씀, 은총의 생활, 믿음, 바람, 사랑, 성령의 다른 내적 선물과 가시적 요소들이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는 이 교회들과 공동체들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는데, 그 힘은 그리스도께서 가톨릭 교회에 맡기신 충만한 은총과 진리 자체에서 나온다. 이 모든 선물은 그리스도에게서 오고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으로, “보편적(가톨릭) 일치를 재촉하고 있다.”

 

주교의 성화 임무 893;

 

893 또한 주교는 특별히 자신이 직접 봉헌하거나 자신의 협력자들인 사제들이 봉헌하는 성찬례로써 “최고 사제직의 은총의 관리자가 된다.” 이는 성찬례가 개별교회의 삶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주교와 사제들은 그들의 기도와 성무, 말씀 선포와 성사 집전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한다. 주교와 사제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양 떼를 지배하려 들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모범이 됨으로써”(1베드 5,3) 교회를 거룩하게 한다. 이로써 그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양 떼와 함께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

 

은총은 인간 성화의 원천 1999,2001;

 

1999 그리스도의 은총은 무상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당신 생명이다. 이 은총은 세례로써 받는 성화 은총(聖化恩寵, gratia santificans) 또는 신화 은총(神化恩寵, gratia deificans)이다. 이 은총은 우리 안에서 성화 활동의 샘이 된다.55)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하느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습니다(2고린 5,17-18).

2001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은 은총이 이미 작용한 결과이다. 은총은 우리가 신앙을 통한 의화와 사랑을 통한 성화에 계속 협력하도록 하는 데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신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원의(願意)를 일으키심으로써 일을 시작하시며, 우리의 의지에 협력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

우리도 일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일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일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에 앞서 있고, 일단 치유가 된 뒤에는 활기를 주기 위해 우리의 뒤를 따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부름을 받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원히 하느님을 모시고 살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화는 성화 1989,1995;

 

1989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결실은 회개이다. 복음서의 첫 대목에 나오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 하신 예수님의 선포에 따라, 회개는 우리를 의롭게 해 준다. 은총의 작용으로 인간은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멀어져 위로부터 오는 용서와 의화를 받아들인다. “의화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

 

1995 성령은 내적 생활의 스승이시다. “내적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의화는 인간 존재 전체의 성화에까지 미친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로마 6,19.22).

노동은 인간 성화의 도구 2427;

 

2427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어 서로 함께, 그리고 서로를 위하여 땅을 지배함으로써 창조 사업을 계속하라는 요청을 받은 사람들이 직접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은 하나의 의무이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2데살 3,10). 노동은 선물을 주시고 재능을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노동은 구원을 받게 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나자렛의 목수이시며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과 일치하여 노동의 수고를 견뎌 냄으로써, 인간은 하느님 아들의 구속 사업에서 어떤 의미로 그분의 협력자가 된다. 인간은 맡겨진 일을 완수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낸다. 노동은 성화의 한 수단일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정신을 세상사들 안에 불어넣는 방법일 수도 있다.

 

인간의 성화를 위한 전례 1070;

 

1070 신약성서에서 ‘전례’(Leitourgia)라는 단어는 하느님께 대한 예배의 거행뿐 아니라 복음 선포와 사랑의 실천도 가리킨다. 이 모든 경우가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함을 뜻한다. 전례를 거행할 때 교회는 유일한 “제관”(Leitourgos)이신8) 주님의 모습을 따라 시종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제직(예배), 예언자직(복음 선포), 왕직(사랑의 봉사)에 참여한다.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경배를 드린다. 따라서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 그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

부모와, 성화 임무에 참여 902;

 

902 부모들은 “부부 생활을 그리스도교적 정신으로 하고 자녀들의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주선함으로써”442) 특별한 모양으로 이 성화 임무에 참여한다.

 

인간의 성화를 위한 성사 1123,1152,1668,1677;

 

1123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 몸의 건설,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를 지향하며, 표징들로서 교육에도 기여한다. 성사는 신앙을 전제할 뿐 아니라 말씀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한다.”

 

1152 성사의 표징. 성령 강림날부터 성령께서는 교회의 성사적 표징을 통하여 성화 활동을 하신다. 교회의 성사들은 물질 세계와 사회 생활의 풍부한 모든 표징과 상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화하고 수용한다. 그뿐 아니라, 구약의 예표와 형상들을 완성하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상징하고 실제로 현존하게 하며, 하늘의 영광을 예시하고 미리 누리게 한다.

 

1668 교회는 특정 직무와 신분, 신자 생활의 매우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에게 유익한 물건 등을 성화하고자 준성사를 제정했다. 준성사는 주교들의 사목적 결정에 따라 한 지방이나 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고유한 필요와 문화, 역사에도 부응할 수 있다. 준성사에는 언제나 기도가 포함되며, 흔히 안수, 십자 성호, (세례를 상기시키는) 성수 뿌림 같은 일정한 표징이 따른다.

 

1677 준성사는 성사들의 효과를 받도록 사람을 준비시키고, 삶의 여러 상황을 성화하고자 교회가 제정한 거룩한 표징이다.

 

재속회 회원들의 세상 성화를 위한 헌신 928;

 

928 “재속회(在俗會)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세속에 살면서 애덕의 완성을 향하여 노력하고 세상의 성화를 위하여 특히 그 안에서부터 기여하기를 힘쓰는 봉헌생활회이다.”

 

인간의 결정적 성화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1540;

 

1540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제사와 기도로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를 회복하도록 세워진 이 사제직은 끊임없이 제사를 되풀이해야 했으며, 결정적인 성화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구원을 이룰 수는 없었다. 결정적 성화는 그리스도의 제사만이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전례(성무일도)에서 낮과 밤의 성화 1174;

 

1174 우리가 성찬례에서 특히 주일 집회에서 거행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인 강생과 파스카의 신비는, 시간전례 곧 “성무일도”의 거행을 통하여 매일의 시간에 스며들어 그 시간을 변화시킨다. “늘 기도하라.”고 하는 사도의 권고에 따라 충실하게 거행하는 이 성무일도(聖務日禱)는 “낮과 밤의 모든 흐름이 하느님 찬미를 통하여 성화되도록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교회의 공적 기도”인데, 이로써 신자들(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은 세례받은 사람들의 왕다운 사제직을 수행한다. 교회가 ‘공인한 형식으로’ 거행하는 시간전례는 “참으로 자기 신랑에게 이야기하는 신부의 목소리이며, 또한 당신 몸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기도이다.”

 

성령의 사명인 교회의 성화 767;

 

767 “성부께서 성자께 지상에서 이루시도록 맡기신 일이 성취된 다음, 오순절에 성령께서 교회를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시도록 파견되셨다.” 그 날 “교회는 많은 사람 앞에 공공연히 나타나, 설교를 통하여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불러모으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본성상 선교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에게 교회를 파견하시어 그들을 당신 제자로 삼도록 하셨다.

 

축일의 성화 2187;

 

2187 주일과 축일들을 거룩히 지내기 위해서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각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일을 쓸데없이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관습(운동, 외식 등)과 사회적 필요성(공무 등)으로 어떤 이들에게 주일의 노동이 요구될 경우, 각자가 충분한 여가 시간을 갖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자들은, 절제와 사랑으로써, 집단적 여가 활동으로 생겨나는 폭음, 폭식과 폭력을 피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경제 사정이 어렵더라도, 공권력은 시민에게 휴식과 예배를 위한 시간을 보장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고용주들도 고용인들에 대해 공권력과 유사한 의무를 지고 있다.

 

혼인성사를 통한 성화 1637;

 

1637 비신자와 혼인을 하는 가톨릭 신자 배우자에게는 특별한 의무가 있다. “믿지 않는 남편은 믿는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으며 또 믿지 않는 아내도 믿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1고린 7,14). 이 ‘거룩하게 하는 힘’이 배우자를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자유롭게 개종하게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자인 배우자와 교회에 큰 기쁨이 된다.155) 부부의 진실한 사랑, 가정적 덕행의 겸손하고 참을성 있는 실천,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는 신자 아닌 배우자가 회개의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한다.

 

물건들의 올바른 사용을 통한 성화 1670;

 

1670 준성사는 성사처럼 성령의 은총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교회의 기도를 통하여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은총에 협력하도록 결심하게 한다. “성사와 준성사의 전례는 잘 준비된 신자들에게 생활의 거의 모든 사건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에서 흘러 나오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되게 한다. 이 신비에서 모든 성사와 준성사가 그 효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사물을 목적에 맞게 올바로 사용하면 인간 성화를 이루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어 있다.”

 

성령의 고유 작용인 성화 703;

 

703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숨결’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생명의 기원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한 본체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만물을 다스리고 거룩하게 하시고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성령께서 하느님으로서 성부 안에서 성자를 통해 만물을 유지하시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권한은 당연히 그분께 속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2807-2815,2858;

 

2807 여기서 “거룩히 빛나시며”라는 말은, 우선 원인을 나타내는 의미(하느님 홀로 거룩하게 하신다)가 아니라, 오히려 존중의 의미에서, 거룩한 이름을 거룩하게 알아 모시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흠숭에서는 그 같은 간청이 이따금 일종의 찬미와 감사 드리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소원의 형태로, 곧 하느님과 인간이 관련된 청원과 열망과 기대감인 이 청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 첫 번째 청원을 드리는 순간부터 그분 신성의 신비로운 내면을 만나게 되고, 또한 우리 인류 구원의 드라마와도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에페 1,4),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에페 1,9)에 우리를 포함시킨다.

 

2808 구원 경륜의 결정적인 순간들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밝히시는데, 당신의 일을 수행하심으로써 그 이름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날 때, 하느님의 일도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809 하느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영원한 신비의 다가갈 수 없는 중심이다. 이 신비 가운데 창조계와 역사 안에서 드러난 것을 성서는 ‘영광’, 엄위하신 하느님의 광채라고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은 모습대로”(창세 1,26)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그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그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골로 3,10) 새로워지도록,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알려 주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

 

2810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그 약속에 따른 맹세에서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지만, 당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구해 내심으로써 온 백성에게 당신 이름을 드러내신다. “나는 주님을 찬양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출애 15,1). 시나이 산 계약 이후, 이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하느님의 이름이 그들 안에 머무르고 계시므로, 그들은 ‘거룩한 백성’(또는 ‘축성된 백성’ - 히브리어로는 같은 말이다)이 되어야 했다.

 

2811 그런데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법’을 주시고, 거듭 주셨음에도, 또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생각해서” 인내를 보이심에도, 백성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 등을 돌리고, “뭇 민족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 그 때문에 구약의 의인들과,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가난한 이들 그리고 예언자들은, 하느님 이름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 올랐던 것이다.

 

2812 드디어, 예수님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졌고, 사람이 되심으로 ‘구세주’로서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곧, 예수님의 신원(Ipse Est)과 말씀과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의 핵심이다. “거룩하신 아버지,……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 당신께서 성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부의 이름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파스카를 끝마치셨을 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예수님께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주님’이시다.

 

2813 세례성사의 물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성령으로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여졌으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1고린 6,11).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생에 걸쳐 “거룩하게 살라고”(1데살 4,7) 우리를 부르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그리스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1고린 1,30).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가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게 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여기에 우리의 첫 번째 청원의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거룩하신데, 누가 그분을 거룩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는 말씀에 따라, 세례성사로써 거룩하게 된 우리는 우리가 꾸준히 거룩한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잘못을 저지르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성화를 통해 우리의 죄를 정화해야 하므로, 우리는 이를 날마다 청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함이 우리 안에 지속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814 하느님의 이름이 뭇 민족 가운데서 거룩히 빛나시는 것은 불가분으로 우리의 삶과 기도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으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하느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이 타락한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이름도 바로 이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사실, 우리가 착하게 살면, 하느님의 이름이 찬미를 받으나, 우리가 악하게 살면, 하느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당신들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로마 2,24)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신 그만큼, 우리의 삶도 거룩해지도록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말할 때,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서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아직도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하느님의 이름이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이니, 모든 사람을 위해서, 원수들을 위해서까지도 기도하라고 하신 계명을 우리가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소서.”라고 가려서 말하지 않고, 그 이름이 모든 사람 안에서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2815 모든 청원을 포함하는 이 청원은, 뒤이어 오는 다른 여섯 청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기도를 통해서 받아들여진다.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치면,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에서 이렇게 청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요한 17,11).

 

2858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함으로써, ─ 먼저 모세에게, 다음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알려 주신 ─ 당신 이름의 거룩함이 우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뭇 민족과 각 사람에게서 나타나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에 협력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려고 파견되셨다 2818;

 

2818 주님의 기도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희망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명을 다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강림 이후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성자의 구원 사업을 세상에서 이루시며,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의 성령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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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룩함, 성덕 (라)Sanctitas (영)Holiness

 

사랑은 성덕의 핵심 826;

 

826 사랑은 우리 모두가 부름 받은 거룩함의 핵심이다. “사랑은 모든 성화 수단을 이끌고 가르쳐 그 목표에 이르게 한다.”

저는, 교회가 여러 다른 지체들로 이루어진 몸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가장 필요하고 가장 고귀한 지체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 교회가 심장을 가지고 있고, 그 심장은 사랑으로 불타 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지체들을 움직이게 하며, 만일 이 사랑의 불이 꺼지게 되면 사도들은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지 못할 것이고, 순교자들은 자신의 피를 흘리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사랑은 모든 부르심을 포함하며, 사랑은 모든 것이고, 사랑은 모든 시대 모든 장소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한마디로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십자가는 성덕에 이르는 길 2015;

 

2015 완덕의 길은 십자가를 거쳐 가는 길이다.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다. 영적 진보는 참행복의 평화와 기쁨 안에서 살도록 점차적으로 인도하는 고행과 극기를 내포한다.

올라가는 이는 아무리 ‘산 너머 산’이라 해도 끝없이 새로운 고개를 하나씩 넘어갑니다. 올라가는 이는 이미 아는 것을 차지하려는 갈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성덕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신앙 1709;

 

1709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이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를 능력을 얻어 변화되며, 올바로 행동하고 선을 행할 능력을 지니게 된다. 제자는 자신의 구세주와 일치함으로써 완전한 사랑과 성덕에 이른다. 은총으로 성숙해진 도덕적 삶은 하늘의 영광 속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피어난다.


고행 없이는 거룩함도 없다 2015;

 

2015 완덕의 길은 십자가를 거쳐 가는 길이다.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다. 영적 진보는 참행복의 평화와 기쁨 안에서 살도록 점차적으로 인도하는 고행과 극기를 내포한다.

올라가는 이는 아무리 ‘산 너머 산’이라 해도 끝없이 새로운 고개를 하나씩 넘어갑니다. 올라가는 이는 이미 아는 것을 차지하려는 갈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거룩함을 얻기 위해 연옥에서 정화됨 1030;

 

1030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그리스도의 거룩함 459,564,2030;

 

459 ‘말씀’은 우리에게 거룩함의 모범이 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그리고 성부께서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산에서 이렇게 명하신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81) 참으로 그분께서는 참행복의 모범이시며, 새 율법의 기준이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이 사랑에는 그분의 모범을 따라 실제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564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시고, 나자렛에서 보내신 여러 해 동안 비천한 일을 하심으로써, 가정과 노동의 일상 생활 안에서 거룩함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2030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과 친교를 이루어 자신의 소명을 수행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의 법”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하느님 말씀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로부터 “나그넷길”에서 그를 지탱해 주는 성사의 은총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성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참된 증거에서 성덕을 감지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앞서 살다 간 성인들과 교회가 전례력(典禮曆)에 맞추어 기념하는 성인들의 영성 전통과 오랜 역사에서 성덕을 확인한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 2045;

 

2045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확고한 신념과 품행으로써 교회 건설에 이바지한다. 교회는 신자들의 거룩함으로 성장하고 확장되고 발전하여, 마침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에페 4,13).


하느님의 거룩함 2809, <하느님> 참조;

 

2809 하느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영원한 신비의 다가갈 수 없는 중심이다. 이 신비 가운데 창조계와 역사 안에서 드러난 것을 성서는 ‘영광’, 엄위하신 하느님의 광채라고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은 모습대로”(창세 1,26)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그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60) 그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골로 3,10) 새로워지도록,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알려 주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


교회의 거룩함 670,824-825,867, 1986;

 

670 

 

824 그리스도와 결합된 교회는 그분을 통하여 성화되며, 교회도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성화시키는 도구가 된다. “교회의 다른 모든 활동이 그 목적으로 추구하는 인간 성화와 하느님 찬양이 가장 커다란 효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 안에 풍부한 “구원의 수단”들이 위탁되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덕을 얻게 된다.”

 

825 “교회가 이미 지상에서 참된 성덕으로 불완전하게나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구성원들이 완전한 성덕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크고 많은 구원의 수단을 갖춘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생활 신분이나 처지에서든,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성덕에 이르도록 저마다 자기 길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는다.”

 

867 교회는 거룩하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교회의 창시자이시며, 교회의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 자신을 바치셨으며, 거룩하신 성령께서 교회에 생명을 주신다. 죄인들을 품고 있을지라도, ‘죄인들로 이루어진 죄 없는 교회’이다. 교회는 성인들을 통하여 그 거룩함이 빛나는데,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이미 온전히 거룩하다.

 

1986 새 법은 그 계명들 외에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한다. “교회의 성덕은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께서 복음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준수하도록 제시하신 여러 가지 권고로써 증진된다.”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거룩함 1475;

 

1475 성인들의 통공 안에는 “신자들 ─ 이미 천상 고향에 이른 사람들, 연옥에서 속죄하고 있는 사람들, 아직 지상에서 순례하고 있는 사람들 ─ 사이에 변함 없는 사랑의 유대와 모든 선의 풍부한 나눔이 있다.” 이러한 놀라운 교류로, 어느 한 사람의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었던 손해보다는, 한 사람의 거룩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선익이 훨씬 더 크게 된다. 따라서 성인들의 통공에 의지하면 통회하는 죄인이 죄의 벌에서 더 일찍, 더 효과적으로 정화될 수 있다.


마리아의 거룩함 492;

 

492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나자렛의 동정녀를 꾸며 준 더없이 뛰어난 성덕의 빛은” 온전히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다. 마리아는 “아드님의 공로로 보아 뛰어난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셨다.” 성부께서는 다른 모든 창조된 인간들보다 마리아에게 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베풀어 주셨다”(에페 1,3).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다”(에페 1,4).


교회에서 헤아리는 거룩함, 시성(諡聖) 828;

 

828 교회는 어떤 신자들을 시성(諡聖)함으로써, 곧 그 신자들이 영웅적으로 덕행의 길을 닦고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한 삶을 살았음을 장엄하게 선언함으로써, 교회 안에 힘있게 활동하시는 성령의 힘을 인정하고, 그들을 다른 신자들에게 모범과 전구자로 세워 줌으로써 희망을 북돋아 준다. “많은 남녀 성인들은 교회 역사의 가장 어려웠던 상황에서 언제나 쇄신의 원천과 기원이 되어 왔다.” 과연 “교회의 거룩함은 사도적 활동과 선교 열정의 감추어진 원천이며 그르침 없는 척도다.”


원초적 거룩함의 상태와 죄 375,405;

 

375 교회는 신약성서와 성전의 빛에 비추어, 성서의 상징적 표현을 권위 있게 해석함으로써,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는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가르친다. 이 원초적인 거룩함의 은총이란 바로 ‘하느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405 원죄는 비록 각자에게 고유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아담의 후손에게도 개인의 잘못이라는 성격을 가지지는 않는다.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은 잃었지만, 인간 본성이 온전히 타락한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이 그 본연의 힘에 손상을 입고 무지와 고통과 죽음의 세력에 휘둘리며 죄에 기우는 것이다(악으로 기우는 이 경향을 ‘탐욕’이라고 부른다). 세례는 그리스도 은총의 생명을 줌으로써 원죄를 없애고 인간을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지만, 약해지고 악으로 기우는 인간 본성에 미친 결과는 인간 안에 집요하게 남아서 영적인 싸움을 치르게 한다.


성덕의 소명 2013-2014,2028;

 

2013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을 받는다. 인간은 모두가 성덕의 소명을 받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

완덕에 이르고자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받은 힘을 다하여……모든 일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봉사에 온 마음으로 헌신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의 성덕은 교회의 역사에서 수많은 성인들의 생활을 통하여 빛나는 증거를 보여 주었듯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갈 것이다.

2014 영적 진보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더욱더 밀접하게 결합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이 결합을 ‘신비적’이라고 하는 것은 ‘거룩한 신비들’, 곧 성사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과 더욱 깊이 결합하도록 부르신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이 은혜를 드러나게 하시려고,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은 특은이나 이 신비 생활의 특별한 표징들을 주시기도 한다.

 

2028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의 완덕에는 한계가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완덕에 전혀 한계점이 없다는 바로 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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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화 (라)Iustificatio (영)Justification


회개가 의화에 우선한다 1989;

 

1989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결실은 회개이다. 복음서의 첫 대목에 나오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 하신 예수님의 선포에 따라, 회개는 우리를 의롭게 해 준다. 은총의 작용으로 인간은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멀어져 위로부터 오는 용서와 의화를 받아들인다. “의화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


의화의 정의와 의미 1987,1989,1991-1992;

 

1987 성령의 은총에는 우리를 의화(義化)하는 힘이 있다. 곧, 성령의 은총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누리게 해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 6,8-11).

1989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결실은 회개이다. 복음서의 첫 대목에 나오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 하신 예수님의 선포에 따라, 회개는 우리를 의롭게 해 준다. 은총의 작용으로 인간은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멀어져 위로부터 오는 용서와 의화를 받아들인다. “의화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

 

1991 이와 동시에, 의화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해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란 하느님 사랑의 공정함을 가리킨다. 의화와 힘께 믿음과 희망과 사랑도 우리의 마음 안에 스며들고, 우리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게 된다.

 

1992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뜻에 맞는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으며, 그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속죄의 도구가 되었다. 의화는 신앙의 성사인 세례로 주어진다. 의화는 당신 자비의 능력으로 우리를 내적으로 의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우리를 부합하게 한다. 의화의 목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 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로마 3,21-26).

의화의 결과 1266,1990;

 

1266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께서는 세례 받은 사람에게 성화하는 은총, 곧 의화하는 은총을 주신다. 이 성화 은총은,

 

- 향주덕(向主德)을 통하여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바라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며,
-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고 행동할 수 있게 하며,
- 윤리덕을 통하여 선이 성장하도록 해 준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초자연적인 삶 전체가 세례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0 의화는 하느님 사랑을 거스르는 죄에서 인간을 풀어 주고, 인간의 마음을 죄에서 정화시켜 준다. 의화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베풀어 주신 용서에 뒤이어 이루어진다. 의화는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죄의 예속에서 해방시키고, 치유해 준다.


의화는 하느님 사랑의 가장 뛰어난 업적 1994;

 

1994 의화는 하느님 사랑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 하느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며 성령을 통해 주어진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에 따르면 “불경한 사람의 의화는 하늘과 땅의 창조보다도 더 위대한 일”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지겠지만, 선택된 사람들의 구원과 의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죄인들의 의화는 천사들을 의롭게 창조한 일을 능가하며, 그것은 죄인의 의화가 더 큰 자비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인간 의화의 근거 402,617,654,1987,1992;

 

402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에 연관된다.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로마 5,19)고 말한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로마 5,12). 죄와 죽음의 보편성에 대비시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보편성을 내세운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로마 5,19).

 

617 트리엔트 공의회는 “십자가 나무 위에서 거룩하신 당신 수난으로 우리에게 의로움을 얻어 주셨다.”고 가르침으로써 “영원한 구원의 근원”으로서 그리스도 희생 제사의 특별한 성격을 강조한다. 그리고 교회는 다음과 같은 노래로 십자가를 경배한다. “오! 십자가, 유일한 희망이여, 하례하나이다.”

 

654 파스카의 신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시고,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다시 얻게 해 주는 의화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로마 6,4). 의화는 죄로 생겨난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은총에 대한 새로운 참여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가서 내 형제들에게 전하여라.”(마태 28,10) 하고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셨듯이, 부활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게 하는 하느님의 양자 입양을 실현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은총의 선물이다. 이 양자 입양은 그분의 부활에서 완전히 드러나는 외아들의 생명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1987 성령의 은총에는 우리를 의화(義化)하는 힘이 있다. 곧, 성령의 은총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40)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41) 누리게 해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 6,8-11).

1992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뜻에 맞는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으며, 그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속죄의 도구가 되었다. 의화는 신앙의 성사인 세례로 주어진다. 의화는 당신 자비의 능력으로 우리를 내적으로 의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우리를 부합하게 한다. 의화의 목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주는 것이다.46)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 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로마 3,21-26).

의화의 한 측면, 하늘의 용서와 의로움을 받음 2018;

 

2018 회개와 마찬가지로 의화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은총의 자극을 받아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럼으로써 하늘의 용서와 의로움을 받는 것이다.


의화되는 길 1446,1996,2001;

 

1446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의 모든 지체, 누구보다도 우선 세례 후 대죄에 떨어져 세례로 받은 은총을 잃고 교회의 친교에 손상을 입힌 사람들을 위하여 고해성사를 세우셨다. 고해성사는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의화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교부들은 이 성사를 “은총을 잃어버린 난파 후 두 번째 구명대”라고 소개한다.

 

1996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된다.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 곧 양자가 되고 신성(神性)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다.

 

2001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은 은총이 이미 작용한 결과이다. 은총은 우리가 신앙을 통한 의화와 사랑을 통한 성화에 계속 협력하도록 하는 데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신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원의(願意)를 일으키심으로써 일을 시작하시며, 우리의 의지에 협력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

우리도 일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일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일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에 앞서 있고, 일단 치유가 된 뒤에는 활기를 주기 위해 우리의 뒤를 따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부름을 받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원히 하느님을 모시고 살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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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승천 이후 하느님의 계획은 그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는 이미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1요한 2,18).611) “그러므로 이미 세기들의 종말이 우리에게 다가왔으며 세상의 쇄신도 되돌이킬 수 없이 결정되어 이 현세에서 어느 모로 미리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가 이미 지상에서 참된 성덕으로 불완전하게나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교회의 복음 선포에 수반하는613) 기적적인 표징들로써 이미 그 현존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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