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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기 7장 5절 - 개가 핥듯이 물을 핥는 자 [성경공부] 281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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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오전 2:23:2 [175.115.222.*]

2011-06-30 ㅣ No.1074

 
 
 
 
 
질문글:
 
판관기 7장 5절 "개가 핥듯이 물을 핥는 자"
 
기드온이 군사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자,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분부하셨다.
 
 "개가 햝듯이 물을 핥는 자를 모두 따로 세워라.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도 모두 따로 세워라."
 
 그렇게 하였더니 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대고 혀로 핥는 자들의 수가 삼백이었고,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물을 핥아 먹은 사람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고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
 
 겠다.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여라."
 
 
질문입니다.
 
 판관 기드온의 군사가 너무 많아서 주님께서 기드온을 도와 그들을 시험하겠다고 하신  4절- 8절까지.
 
 손으로 물을 떠서 입을 대고 혀로 핥는 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자 어떤 의미인가요?
 
--------------------
 
 
답글:
 
 
2011-06-29 오전 2:23:22
 
 
+ 찬미 예수님!
 
1. 다음은 판관기 7,5에 대한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NAB(New American Bible)에 주어진 주석입니다:
 
 
[5] The Lord desired not numerous but reliable soldiers. Those who drank from their hands were alert, standing ready to resist attack, whereas the others were careless and undependable. The cowardly soldiers had already been dismissed (Judges 7:3); cf Deut 20:8.  
 
(졸번역)
[5] 주님께서는, 많은 숫자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병사들을 원하셨다. 공격에 대항할 준비가 된 서 있는 자세로, 자신들의 손들로 물을 마셨던 자들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이에 반하여 다른 병사들은 부주의하였으며 그리하여 신뢰할 수 없었다. 비겁한 병사들은 떠나는 것이 이미 허락되어져 있었다(판관 7,3); 신명기 20,8을 참조하라.
 
참고: 이 NAB 주석의 설명은, 매우 분명하게, 주신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 다음은, 아래의 부록에 첨부한, ooo 님께서 올려주신 답글을 읽고 드리는 부탁의 말씀입니다. 부디, 아무런 사심없이 읽어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2-1. 아래의 부록에 있는 글의 첫 부분은,
 
 
개신교측의 글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개신교측의 글에서 앞부분을 발췌하였는데, 누군가가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바꾸고, "사사기"를 "판관기"로 바꾸었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출처를 밝히지 않았기에, 독자들이 가톨릭측에서 마련한 글로 오해할 소지가 없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교리적인 면을 고려할 때에, 출처가 불분명한 개신교측의 자료들을 참고하여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대신에, 예를 들어, 
 
 
정태현 신부님께서 마련해 주신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곳 굿뉴스 서버 제공의 성경 자료실에 올려진 글들의 본문 중에 "기드온"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글들에 대한 검색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없는, 이 글들을 차분히 읽어보면, 판관기의 전반적 내용 등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개신교측의 출처 불명의 글들을,
 
그리하여 때로는 교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글들을
 
혹은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의 가르침을 폄훼하는 내용을 포함할 수 있는 글들을
 
굳이 이곳 굿뉴스 서버의 성경 묻고 답하기 게시판에 올려진 질문글에 대한 답글로 꼭 제시하여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2-2. 아래의 부록에 있는 글의 두 번째 부분은,
 
개신교측도 아니고
 
가톨릭측도 아닌
 
그리고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그러나,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그 신앙적 정체가 불분명한 홈페이지(길을 찾는 사람들 ...)에서 가져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르셨더라면 몰라도, 
 
"뉴에이지 운동"(종교다원주의 포함)을 지지하는 사이트가 분명한 듯한 이런 곳에서 제공하는 글이,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공간인 이곳 굿뉴스 서버 제공의 성경 묻고 답하기 게시판에 올려진 질문글에 대한 답글의 일부로 제공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래의 부록에 있는 두 개의 펀 글들에서,
 
실제로 제가 크게 곤란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두 번째 부분의 글의 출처(**)입니다.
 
이 곤란함은, 개인적 차원의 내가 옳다, 네가 옳다 로 변명할 수 없는 정도로, 그 곳의 글들은 참고하는 것 자체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되 각 구절들의 해석은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의 해석과 교도권의 해석의 범위내에서 주어지는 주석들을 참고하실 것을 권고드리며, 
 
누구든지 이곳에 올라온 질문에 대하여 답변글을 드릴 때에, 이 점을 꼭 유념하실 것을 말씀드립니다.
 
즉 성경을 읽으시되, 궁금한 구절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도권의 해설/해석과 자신 고유의 해설/해석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검토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항상 가톨릭 교회 교도권의 해설/해석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지금 드리는 권고는 제 개인의 생각이 아니며, 어느 특정인에게만 드리는 무슨 특별한 말씀이 또한 아닙니다.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성경 한 줄을 읽으시면, 또한 마찬가지로, 성찬 전례를 중심으로 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한 줄 읽도록 하십시오.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3항의 가르침입니다.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13 2. 그리고“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 에 따라 성경을 읽을 것. 교부들의 격언에 따르면, 성경은 물질적인 수단들(문서나 기록) 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마음 안에 적혀 있다. 실제로 교회는 성전 안에 하느님 말씀의 생생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교회에 성경의 영적 해석을 내려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교회에 주시는 영적 의미에 따라`……”).
 
113 2. Read the Scripture within "the living Tradition of the whole Church". According to a saying of the Fathers, Sacred Scripture is written principally in the Church's heart rather than in documents and records, for the Church carries in her Tradition the living memorial of God's Word, and it is the Holy Spirit who gives her the spiritual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 (". . . according to the spiritual meaning which the Spirit grants to the Church").
 
 
성경 학습에 있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매우 가까이에 두고 또한 함께 학습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관련된 항들을 차분히 읽고 묵상하도록 하십시오:
 
 
인터넷 공간에 있는 늘려있는 출처불명의 신뢰할 수 없는 자료들을 함부로 답글로 제시하여서는 안됩니다.
 
CCC 113 2. Read the Scripture within "the living Tradition of the whole Church". ...
 
(졸번역)
가톨릭 교회 교리서 113 2.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 안쪽에서(within) 성경을 읽도록 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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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 록 >>
 
 
기드온의 승리의 나팔 기적
 
 
  본문 삿 7:16-23
  
    서 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해방을 받아 하나님의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사사들의 통치하에 살게 되었을 때에 되어진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사사기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과 은총을 받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살게 되었으니 그들은 먹으나 입으나 자나깨나 하나님만 영화롭게 해야 했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일을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이웃 이방의 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습격하는 전란을 일으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곤궁한 지경에 빠뜨려 하나님을 찾는 신앙을 갖도록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습격하여 온 미디안 숫자는 무려 (135,000)명에 달하는데 여기 성경은 황충떼와 같이 많다고 했고 약대수효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위기일발에 놓여 있고 민족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신앙의 사람 기드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시키는 역사를 하시는데 군인을 모집케 되었다.
   그래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 본문의 기사입니다.  오늘 이같은 사건을 중심해서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특별히 선발된 군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미디안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모여든 이스라엘 군사가 32,000명 이었습니다.  그중에 겁을 먹고 두려워 떠는 자 22,000명은 돌려보냈습니다.  10,000명 중에서 진실한 정병을 또 추리기 위해서 강으로 나가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중 물먹기를 평안한 자세로 무릎을 끓고 마신 자 즉 미디안 군사가 쳐들어 오든 말든 목이 갈하니 우선 물이나 마시고 보자 하는 군사로서의 책임감을 잊어버리고 해이한 마음가진 자 9,700명을 또 돌려보내어 기드온은 정병 300명으로 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300명을 특별히 선택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정병들은 자기의 책임이 막중함을 느껴서 무장을 한채 적을 살피며 임전태세로 서서 손으로 물을 움켜 핥아 먹는 자는 책임감이 충실한 정병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수효가 적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정예로운 군대였습니다.
 
    첫째, 이는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아니했다는 뜻입니다.
   물로 혀를 핥는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중요한 일 큰 일은 대단한 일에서 시작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실은 평범한 일을 중요시 여기는데 뜻이 있습니다.
 
    둘째, 언제나 방심하지 아니했다는 뜻입니다.
   급한 전시에 무릎을 끓고 태평무사하게 물을 마실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급한 전시에는 급히 일을 서둘러야 합니다.  매사에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큰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됨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마 25:21) 큰일이 따로 있고 작은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꼭같은 것입니다.  작은 일은 큰일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작은 일도 큰일 같이 생각하는 자들로써 300명이 선발이 된 것입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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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싸움에 필요한 精兵(정병), 믿음의 사람을 뽑으시는데 그 방법을 알려주신다.
[삿 7:4-7]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말것이니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싸움은 인간이 하는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왕벌 곧 천군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군대 천군과 함께 할 자들은 믿음의 사람이다. (가나안 정북은 누가 하는가?)
신약이나 구약이나 하나님앞에 택함 받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그 구분은 이러하다.
무릎을 꿇고 혀로 물을 핥아 먹는 자와 손으로 물을 움켜 떠서 입에 먹는자들을 각각 따로 세우니 손으로 물을 떠서 먹는자가 삼백명이었더라. 이 성구는 교인이라면은 많이 들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아는 말씀이리라.

위 말씀은 전장에 임하는 자의 정신이라고도 하고 의식이라고도 하는 것에 대한 상태를 말한다.
사람의 행동은 의식이나 정신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정신과 생각이 한가지 일에 집중되어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행동과 잡다한 정신상태에서 나오는 행동은 다르다. 

 

이 일은 애급에서 출애급하는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양을 먹을때와 같다.

이 일은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사람의 의식상태가 항상 깨어 있어야함을 말한다.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하여야 늘깨어 있는 생활을 할수있는 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터임을 알아야한다.  
 나사못처럼 풀린 정신과 의식의 상태를 가지고는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가 없다. 

늘 긴장되어 있는 상태, 곧 성령의 의식으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듣고, 보고, 말하고, 행하려 하는지 아는 상태여야 한다.

이 글을 읽는 것조차 이렇게 읽고 이렇게 느끼며 생각하는구나를 성령의 의식으로 보고 있어야 한다.
마귀와 싸워야 하는 전장임을 알지 못하는 현대의 교인들. 마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상대적인 마음, 상대적인 차별의식을 통해서 역사해옴을 알아야한다. 

사사기에 기록된 기드온 300명의 용사들의 싸움은기록으로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된 게릴라 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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