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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 신명 34,10 외 [번역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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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8 ㅣ No.1502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모세는 정말정말 존경할만한 분 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 를논할때에 신약 시대 최고의저자가누구일까?하는의문에 사도행전,루카복음의 루카냐? 서간집시리즈의 바울선생이냐 하는것처럼 옛날시대최고의저자가누굴까 하는데서 이사야서  를 지으신 이사야와 함께 거론되는분이  모세입니다 그러한 모세에대해 하나님이 지상 에 내려오시자 하느님 께서는 니는 내얼굴보면 안된다카이! 지상에선 내얼굴보면 안되는기다!하시면서 정면을 보여주지않으셨지요 그러나 신명기 끝부분을 보면 모세는 유일하게 주님과 정면으로 얼굴을 맡덴 사람이다 하는 글이있다 이말입니다고럼 이건 뭐죠?^^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그러나 신명기 끝부분을 보면 모세는 유일하게 주님과 정면으로 얼굴을 맡덴 사람이다 하는 글이 있다 이말입니다. 고럼 이건 뭐죠?^^]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요??? 신명기 끝 부분 어디에도,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모세는 유일하게 주님과 정면으로 얼굴을 맡덴 사람이다" 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대신에, 다음과 같은 문장은 "새 번역 성경" 신명기 34,10ㄴ에 있습니다:

 

(발췌 시작)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4) 사람이다.

-----
4. 직역: "아시던"

-----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 영어로 "knew" 로 번역되는 표현을 "새 번역 성경" 신명기 34,10에서 무슨 이유로, 글자 그대로 "아시던" 르로 번역하는 대신에, "사귀시던"으로 의역 번역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 지 못하겠습니다[번역 미숙]. 바로 위의 "주석 성경"의 주석에서 밝히고 있듯이, "새 번역 성경" 신명기 34,10에서 "사귀시던" 을 "아시던" 으로 교체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질문 2: 그런데, 이글의 독자들이 생각할 때에,

(i) "유일하게 주님과 정면으로 얼굴을 맡덴" 라는 표현과

(ii) "새 번역 성경" 본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라는 표현이,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는 논리적 등가(logical equivalence)의 표현들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전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질문자 스스로, 상대방이 답변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대단히 심각하게 고의적으로 성경 본문을 왜곡하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위의 질문에서처럼, 어떤 이가 (ii) 를 읽고서 자신 고유의 판단에 따라 이해한 바를 상대방에게 의도적으로 주장하기 위하여, (ii) 에 근거하여 (i) 과 같은 증폭성 왜곡의 문장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음에 있을 것입니다.

 

1-2. 다른 한편으로, "새 번역 성경" 신명기 34,10에서, 영어로 "face to face" 로 번역되는 표현에 대응하는 표현으로서, 그냥 "마주 보고"도 아니고"얼굴을 마주 보고" 로 번역된 표현은, "얼굴"이라는 단어의 사용 때문에국내의 일부 독자들에 의한 2차의 자의적 혹은 임의적인 수사학적 기교에 의하여, 예를 들어, 위의 질문과 유사한 지나친 증폭성 왜곡의 근거로 제시될 수 있을 정도로, 우라말로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번역 오류/미숙]. 이 글에서는 지금 드린 이 지적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

2-1. 우선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신명기 34,10홀수해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제1독서(신명 34,1-12)에 포함되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2-2. 다음은 NAB 신명기 34,10 전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deuteronomy/deuteronomy34.htm
(발췌 시작)
Since then no prophet has arisen in Israel like Moses, whom the LORD knew face to face.
(이상, 발췌 시작)

 

게시자 주 2-2: 위의  NAB 신명기 34,10에 대하여 NAB 성경을 마련한 번역자들이 특히 아무런 주석도 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예를 들어, 이 영어 문장을 미국의 중학교 3학년(9th grade) 정도의 교육을 받은 독자들이 읽었을 때에 내용 이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다음의 제2-3항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2-3.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신명기 34,10의 여러 영어본 번역문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biblehub.com/deuteronomy/34-10.htm <----- 클릭하십시오.

 

바로 위의 주소를 클릭하면, 총 19개의 여러 영어본 신명기 34,10 본문들 중에서, 단 한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가 "face to face" 로 번역하였고, 그리고 단 한개의 예외는 "with such great intimacy(매우 커다란 친밀과 함께)" 로 번역한 경우뿐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를 들어, 다음의 Merriam-Webster Dictionay 주어진 "face to face"의 설명이 잘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 안의 우리말 번역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한 것입니다. 영어 설명 중에 face(얼굴)라는 단어가 설명 중에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음에 꼭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www.merriam-webster.com/wdictionary/face-to-face

(발췌 시작)

Main Entry: face–to–face
Function: adverb or adjective 
Date: 14th century
1 : within each other's sight or presence [서로의 시야 혹은 인접 범위 내에서] face–to–face> face–to–face consultation> 
2 : in or into direct contact or confrontation [직접적인 접촉 혹은 직면 으로 혹은 까지] face–to–face with the problem>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따라서, "새 번역 성경"신명기 34,10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이라는 번역 표현은, 특히 "얼굴"이라는 대단히 구체적인 단어의 사용이, 위의 질문의 경우처럼, 2차의 자의적 혹은 임의적인 수사학적 기교에 의한 지나친 층폭성 왜곡을 가능하게 하기에번역 오류/미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4.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새 번역 성경"의 구약 본문 중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절들을 모두를 읽을 수 있는데, 구약 성경의 본문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주체(subjects)들이 하느님과 피조물인 사람일 경우에는, 위의 제2-3항에서 알게 되었듯이, 이러한 우리말 번역 표현의 실제 의미를, "서로가 얼굴들을 마주 보다"가 아니라"서로의 시야 혹은 인접 범위 내에서" 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http://info.catholic.or.kr/bible/view.asp?ctindex=old2&prindex=0&Keyword=얼굴을 마주

 

 

 

 

왜냐 하면,

(i) 구약의 시기에, "하느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20) 고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ii) 세례자 요한이 추가로,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복음서 1,18) 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iii)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요한 복음서 6,46)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

3-1. 다음은,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에 주어진 Douay-Rheims Bible 신명기 34,10 및 이 절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이 주석에서도 "face to face" 라는 표현에 대한 주석이 전혀 주어져 있지 않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haydock1859.tripod.com/id527.html

 

(발췌 시작)

10 And there arose no more a prophet in Israel, like unto Moses, whom the Lord knew face to face,


 Ver. 10. Moses. No prophet ever appeared with greater dignity, in the old law, than Moses. He behaved in all respects as the envoy of God, who has been pleased to give his character and eulogium, Numbers xii. 6., and Ecclesiasticus xlv. 1. His miracles were most astonishing, performed in the presence both of friends and of enemies, not for a short time, but for a continuance of many years. (Calmet)
--- But when we compare Moses with the Messias, his person and law must be regarded indeed as illustrious figures, but infinitely beneath the reality. Moses was liable to failings, which caused him to be debarred from entering the land of promise; and he wore a veil, to shew that his law was only the shadow of a better, and that it could bring nothing to perfection. He works miracles in the name of the Lord, and with a rod: Jesus performs all by the word of his own power, (Hebrews i. 3,) as the sovereign of the world. But though Moses must sink in a comparison with Christ, yet no other personage sustained a more exalted character, or shone with greater splendour, as lawgiver, priest, prophet, ruler of a great and ungovernable people, and a sacred writer of the highest antiquity. Hence the Jews almost adore him. The Mahometans place him next to Jesus and their false prophet. (Haydock)
--- The pagans have very probably ascribed many parts of his history to their idols, Bacchus, Mercury, and Typhon; and their greatest philosophers, Pythagoras, Plato, &c., have borrowed many things from his writings. "What, said Numenius, is Plato, but Moses in the Attic language?" See Exodus xxxiv. 29.; Clement of Alexandria, Strom. 1. and 5.; Josephus, contra Apion i.; Bochart, &c. (Calmet)
--- In a word, St. Gregory of Nyssa, St. Ambrose, (de Cain 2,) and Philo, represent Moses as the most perfect example of a great and pious leader and legislator. (Salien, the year of the world 2583.) (Haydock)

(이상, 발췌 끝).

 

3-2. 끝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는 글로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홀수해 연중 제19주가 수요일 제1독서(신명 34,1-12)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19_wed.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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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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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하는 기술적 test 를 위한 것입니다.

 

face–to–face
Function: adverb or adjective 
Date: 14th century
1 : within each other's sight or presence [서로의 시야 혹은 인접 범위 내에서] face–to–face> face–to–face consultation> 
2 : in or into direct contact or confrontation [직접적인 접촉 혹은 직면 으로 혹은 까지] face–to–face with the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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