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성서] 1고린토 15,1~34 / 필독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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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austin] 쪽지 캡슐

2000-11-06 ㅣ No.4291

 

그리스도의 부활

1   형제 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 준 복음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되새겨 주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 들였고 또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 준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 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8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동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요 하느님의 교회까지 박해한 사람이니 실상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10  그러나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의 덕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사도보다도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된 것입니다.

 

11  내가 전하든지 다른 사도들이 전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우리의 부활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13  만일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 리가 없고

 

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5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는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짓 증인이 되는 셈입니다.

 

16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17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사람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22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 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24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25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하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 발 아래 굴복시켰다" 고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굴복시키셨다고 할 때 굴복시키시는 그분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28  이리하여 모든 것이 그분에게 굴복당할 때에는 아드님 자신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하느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것입니다.

 

29  그런데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만일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습니까?

 

30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면서 살고 있습니까?

 

31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나의 자랑으로 생각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32  내가 설혹 에페소에서 맹수와 싸우는 위험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당한 일이라면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 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33  속지 마십시오. "나쁜 친구를 사귀면 품행이 나빠 집니다."

 

34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부끄러운 줄을 알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믿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신앙인들 가운데 부활을 상징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으며, 어떤 궤변가는 KBS'공자특강'인가 뭔가하는 프로에 나와 부활을 웃기는 얘기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경험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모두 우스개로 치부하는 그의 독선이 무섭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체험을 그리고 그 체험의 증언을 단지 내가 경험한 적이 없고 이해할 수 없다고 무시버리는 그 독선이 한 편으로 가엾기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먼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증언하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우리가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아무 희망이 없는 헛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분의 십자가의 피흘리심마저도 그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구원마저도 빈껍데기에 불과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을 때 예수님의 죽음은 그저 인류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죽음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부활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두려워 다락방 속에 숨어있던 제자들이 순교의 죽음을 무릅쓰고 그분의 부활과 구원의 기쁜소식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러 다마스커스로 길떠나던 사울의 회개와 전도여행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억울한 죽음으로 끝나버렸다면 사도들을 갑작스런 변화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도들은 자신들의 변화를 바로 부활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데,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분들의 증언을 배척한다면 그것은 증언하고 있는 분들에 대한 모독이며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거역입니다.

비록 내가 경험해보지 못하였고 그리서 믿기 힘들다면 오히려 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여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저희가 부활을 믿고 선포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

 

* 29절에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 데, 몇몇 사이비 신자들과 어떤 신부님이 이 귀절을 이용하여 조상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신자들을 현혹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귀절은 당시에 고린토에서 유행하던 잘못된 신앙형태를 부활에 대한 믿음과 연관시켜 설득하기 위한 인용이지 초대교회의 보편적인 모습이 아니며, 사도 바오로는 그러한 행태자체의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성사는 마술처럼 그저 베푼다고 다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사는 바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에 보이는 표징을 통해 만나는 사건으로서 우리의 자유로운 동의를 필요로 합니다. 어느 누구도 강제로 성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남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사도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로 동참을 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미 죽은 이들의 자유로운 동의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화티즌들은 행여 비슷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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