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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4918 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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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mallbap] 쪽지 캡슐

2000-04-15 ㅣ No.4926

 

자본주의에서 ’중산층’은 모호한 계급이다. 많이 가진 상류층처럼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아니고 가진게 없고 잃을게 없는 빈곤층처럼 힘겹게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가지고 있고 그래서 조금만 더 하면 상류층이 될 것만 같은 기대를 품고 사는 막연한 존재들이다. 조금이나마 쥐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이 만큼이나마 가지게 만들어준 체제에 감사하고 불만없이 그 안에 그만 안주하게 되는 어정쩡한 계층이다. ’룰’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에 빠져있는 이 ’중산층’이라는 계급은 사실상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계층이다. 이들의 고단함은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동력이다.

 

사회에서 ’중년’은 애매한 연배다. 나이를 많이 먹어 인생을 회고하며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어려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나이를 먹은채 남아있는 인생들의 앞길을 가늠할 여력도 없이 허덕거리며 뭔가를 계속 하여야만 하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황혼기의 노인들을 공경하여야 하는 동시에 철없고 더러는 싸가지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치이며 살아가는 안타까운 계층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생산을 도맡아 하면서도 사회적으로 대접을 못받은채 주변부로 밀려 소외받는 이 ’중년’이라는 연배는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고단함은 사회를 움직이는 구동점이다.

 

그러니, ’중년의 중산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머리가 하루가 머다하고 커지는 자식은 자신에게 온갖 불만 투성이이고 사회적으로 대접을 못받는 동시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없이 할 수도 없다. 부부는 모두 생업전선에서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느라 관계가 소원해진지 오래고, 삶에 대한 희망 또한 사라진지 오래다. 도대체 왜 사는지도 모르는채 이들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니 ’무기력’해지는 수밖에. ’위기의 중년’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정체성이 모호한 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위기’다. <아메리칸 뷰티>는 바로 이런 ?중년 중산층의 얘기다. 거기에 ’아메리칸’이라는 제목 속의 단어로 국적을 매길 필요는 없어 보인다.

 

주인공 레스터 버냄은 전형적인 ’중산층’이고 전형적인 ’중년’이다. 그는 아내를 두고도 자위를 해야하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무기력의 반복에 허우적거리던 이 힘없는 가장이 다시금 기력을 찾는 것은 자신의 잊고 지냈던 ’젊음’을 상기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딸 아이의 친구 안젤라로부터 성적 활력을 되찾고, 딸 아이의 남자친구 리키로부터 반항하는 젊음의 비주류적 생기를 깨닫게 된다. 그럼으로써 버냄은 ’중산층 중년’이라는 애매모호하고도 위태로운 자신의 계급을 뛰어넘어 잃어버린 자기?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직장을 과감히(!) 때려치우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자동차를 사고 좋아하는 운동을 한다. 버냄은 더이상 불행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멀리 온 것일까? "잃을게 없"다던 버냄에게는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많으니 말이다. 아내가 있고 딸이 있고 지켜야 할 가정이 있다. 그리고 또한 사회적인 시선도 잔존한다.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일 줄 알았건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진실 아닌 진실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죽는 바로 그 순간, 버냄은 "죽기 직전 자신의 인생이 눈앞에 스친다"는 말처럼 자신의 인생을 한눈에 바라본다. 거기엔 자기 자신이 멀쭘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딸이 있다. 바로 조금전까지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행복을 취하고자 일상으로부터 일탈했던 그가, 사실은 틀렸다는 얘기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한 아름다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아메리칸 뷰티’라는 말이 일컫는 뜻 중 하나다. 위태롭고 어정쩡하고 무기력한 것으로 보이는 중년 중산층의 삶이, 기실 수없이 많은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진리가 영화의 뒤끝에 수줍은듯 조용히 드러난다.

 

<아메리칸 뷰티>에는 ’중년 중산층’의 모습 말고도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코드가 다양히 보인다. 동성애 가족 문제라던지 보수적 성향의 경직된 가정의 문제라던지, 혹은 주류를 강요하는 아버지와 비주류를 추구하는 아들 사이의 갈등이라던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는 위선이라던지 하는 것들. 미국 사회를 한눈에 꿰뚫는 뛰어난 관찰력을 보임과 동시에 다양한 코드를 한가지 맥락안에 담아냄으로써 <아메리칸 뷰티>는 영화를 읽을 수 있는 여러가지 길을 열어놓는다.

 

약관 35세의 젊은 신예 샘 멘데스를 주목하여야겠다. 확실히 헐리웃의 블록버스터도 이제 그 생명을 다한 것 같다. 헐리웃 영화도 이제 저예산의 신선한 발상을 가지고 있는 생기발랄한 영화들로 ’세대교체’ 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아메리칸 뷰티>는 근간에 만난 헐리웃 영화 중 단연 수작이었다.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이긴 하지만 <아메리칸 뷰티>는 사실 ’보편성’을 지닌 영화다. 어느 나라에서건 어느 사회에서건 볼 수 있는 영화속 상황들은 이 영화에게 국적 불문의 보편적인 힘을 부여한다. <아메리칸 뷰티>가 ’미국적인’ 영화이면서도 예쁘게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런 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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