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영혼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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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22 ㅣ No.5462

 

내가 한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공사장 추락사고로 뇌를 다친 스물 여섯 젊은이가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얼굴과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을 완전히 잃은 후였습니다.

서둘러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살 가망은 없어 보였습니다.

이미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가 된 채로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의 심전도를 체크하면서 내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심전도 곡선이 죽음을 의미하는 위이브 파동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험으로 보아 이런 경우 10분 이상 살아 있는 환자를 나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중환자실을 나와 그의 가족들에게 임종을 지키라고 일렀습니다.

"어이구, 어휴 흑 흑 흑...."

다음 날 아침 나는 갑자기 그 젊은이가 궁금해서 중환자실로 가 보았습니다.

"아니? 이런...."

이미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 있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그가 아직 누워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여전히 끊이지 앟는 심전도 곡선.

그의 영혼이 아직 그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과학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 세상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렇게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뛰어들어왔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한 얼굴의 여인은 이미 상황을 감지한 듯 눈믈을 흘리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그의 파리해진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나야, 종기씨, 늦어서 미안해."

바로 그 순간 그의 심전도 파동이 춤추기를 멈추고 한 줄기 직선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녀는 결혼한 지 석 달 때 접어드는 그의 아내로 뱃속에 아이를 임신중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겨운 사투를 계속하며 마지막 작별을 위해 아내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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