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우리 외식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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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25 ㅣ No.5469

 

달동네 사글세집에 가난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휴. 이 일을 어쩌지?"

남편의 실직... 바닥을 드러낸 쌀독...

"아휴... 언제 이렇게..."

게다가 아내의 배는 만삭으로 불러왔습니다.

당장 저녁끼니도 문제였지만 새벽마다 인력시장으로 나가는 남편에게 차려줄 아침거리조차 없는 게 서러워서 아내는 그만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 버렸습니다.

아내가 우는 이유를 모를 지 없는 남편은 아내에게 다가가 그 서러운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울지 마. 참.. 당신 갈비 먹고 싶다고 했지? 우리 외식하러 갈까?"

외식할 돈이 있을 리 없었지만 아내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남편의 밝은 목소리가 좋아서, 그냥 피식 웃고 남편을 따라 나섰습니다.

남편이 갈비를 먹자며 아내를 데려간 곳은 백화점 식품 매장이었습니다.

식품매장 시식코너에서 인심 후하기로 소문난 아주머니가 부부를 발견했습니다.

빈 카트, 만삭의 배, 파리한 입술...

아주머니는 한눈에 부부의 처지를 알아차렸습니다.

"새댁,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 봐요. 임신하면 입맛이 까다로워진다니까."

안 그래도 허기에 지쳐가던 부부한텐 그 손짓이 얼마나 고마운지....

"자, 여보 먹어봐, 어때?"

"잘.. 모르겠어."

다른 시식코너의 직원들도 임신한 아내의 입맛을 돋궈줄 무언가를 찾으러 나온 부부처럼 보였던지 자꾸만 맛볼 것을 권했습니다.

"자... 아 해봐."

"맛있네...!"

부부는 그렇게 넓은 매장을 돌며 시식용 음식들을 이것저것 맛봤습니다.

"오늘 외식 어땠어?"

"으응... 좋았어!"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의 장바구니엔 달랑 다섯 개들이 라면 한 묶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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