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휴대폰과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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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27 ㅣ No.5473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던 날이었습니다.

친구는 주문을 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자랑이라도 하듯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첫눈에 보기에도 흠집 하나 없는 최신형.

나는 탁자 밑에서 슬그머니 내 휴대폰을 꺼내 보았습니다.

2년이나 사용해 낡을대로 낡고 멋없는 구형 휴대전화, 나는 얼른 전원을 꺼버린 후, 안주머니에 깊이 쑤셔 넣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힘들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한테 다짜고짜 투정을 부렸습니다.

"엄마, 나 휴대폰 하나 사 줘. 이젠 들리지도 않아!"

"그래 낡긴 낡았구나! 다음 달 보너스 타면 한번 보자."

봉제공장에서 죽어라 일해, 못난 아들 대학공부까지 시키는 엄마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깟 휴대폰 하나 사는 데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니....

짜증이 났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동네 슈퍼마켓에 갔는데 계산대 앞에서 한 꼬마가 작은 손에 양갱 하나를 들고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이거 얼마예요?"

"응? 천 원인데."

꼬마는 손에 든 양갱과 다른 손에 꼭 쥔 동전을 번갈아 보더니 양갱을 제 자리에 두고는 힘없이 돌아섰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으면 저럴까? 안쓰러운 생각이 든 나는 양갱 값을 치른 후 아이를 따라갔습니다.

"꼬마야, 잠깐만... 자, 이거 받어."

"어... 양갱이다! 그렇지만 저는 5백 원밖에 없는데...."

아이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동전을 내밀었습니다.

"어, 이건 아저씨가 그냔 사 주는 거야. 양갱이 그렇게 먹고 싶었니?"

"그게 아니고요,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건데, 엄마가 아파서 이거 먹고 빨리 나으라고...."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토막 난 크레용을 꺼내 양갱 포장지 위에 뭔가 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기껏해야 일곱 살이나 됐을까? 아직 철부진데...

나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휴대폰을 꺼내 초기화면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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