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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성녀 아녜스 영명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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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292-304)
글 : 윤양호 클레멘트 신부님
동정녀이고 순교자이며 ‘어린양’이란 의미의 이름을 가진 그녀는
부유하고 귀족인 한 로마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아름다운 아녜스에게 많은 구혼자들이 나타나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거절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는 천상의 정배(定配)이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는 우상의 신들 앞에 불려나와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그녀가 우상 신들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거부하자,
집정관이 베스타 신전(神殿)에서 봉사하는 신전 정녀(貞女)가 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집정관은 그녀의 옷을 벗기어 그녀를 창녀촌으로 보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의 긴 머리가 빨리 자라나
그녀의 벗은 몸을 가려주고 그녀를 보호했다고 한다.
한번은 집정관의 아들이 그녀를 폭행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집정관은 아들은 눈 먼 장님이 되고 만다.
그때 그녀는 기도를 하여서 그 아들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마침내 그녀에게 화형(火刑)의 선고가 내려진다.
어느 자료에서는 그녀는 목 베임을 순교를 했다고 전하여진다.
이윽고 그녀는 도미티안 스타디움으로 불려나오고,
순결한 그녀의 몸과 영혼을 정배이신 그리스도께로 바친다.
그 도미티안 스타디움(Stadium of Domitian)이
지금의 노바나 광장(Piazza Novana)인데,
오늘날 그곳에는 성녀 아녜스 성당이 있다.
그녀에 대하여 전해지는 자료나 이야기들은 전설이 아니다.
많은 입증할만한 자료들이 있다.
순교 후 머지않아 그녀는 칭송받기 시작했다.
4세기 말에 교황 다마소 1세가 그녀의 묘비에 비문을 썼는데,
그것이 1792년의 발굴 때에 드러나기도 하였다.
교황 다마소 1세의 비서를 3년간이나 역임했던
성 예로니모(340-420)는 그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성녀 아녜스는 문학, 사람들의 연설, 특별히 교회에서 칭송을 받는데,
그녀는 나이와 폭군을 둘 다 이기어 냈으며,
아울러 자신을 순결한 순교자로 하느님께 봉헌했기 때문이다.”
한편 성 암브로시오(340-397)는 그녀의 덕행과 순교에 대하여
강론을 하기도 했고, 그녀에 대한 칭송의 시를 쓰기도 하였다.
그녀는 특히 중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이 칭송되었는데,
교회의 많은 성녀들 즉 성녀 발바라, 도로테아, 안티오키아의
마르가리따 등과 같이 한 신화처럼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덕행과 동정의 순결성으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바친 교회의 동정녀들이다.
그녀의 몸과 머리로 추정되는 유해가 1901년과 그 이듬해에 각각 발견되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머물러 계속되는 상징과 칭송의 강력한 초점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순교할 당시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칼로 나의 몸을 피로 물들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께 바친 나를 결코 더럽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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