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6주일(다해) 루카 10,38-42; ’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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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6-24 ㅣ No.5084

연중 제16주일(다해) 루카 10,38-42; ’22/07/17

 

요즘은 회의하다가 하루를 다 보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각종 부문에서 여러 주제로 회의가 이루어집니다. 회의란 무엇입니까? 회의는 여러 관계 대상자들이 모여, 주제에 대해 나누거나, 주제인 일과 업무에 대한 관련 정보를 토대로 분석 점검하고, 진행 상황을 기획하며, 이미 진행된 결정과 결과들을 평가하여 재결정하는 자리입니다.

 

성당에서도 신자들이 모여 회의를 합니다. 그 회의 때 무엇을 다룹니까? 진행할 업무를 다룹니다. 앞으로 진행할 일들, 이미 진행된 일을 평가하는 일, 그 평가를 토대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재결정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사회에서 하는 회의와 같습니다. 그런데 천주교 성당 신자들이 회의 중에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안건은 바로 하느님 사랑인간의 응답입니다.

 

우리는 일하러 성당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에 감사드리며, 그 은총을 어떻게 나눌까를 다루기 위해 성당에 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에게서 일이란 서로 사랑하는 일이며, 그 업무의 대상은 복음 사업의 계획과 복음 사업의 성과와 확장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업무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매 순간 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답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총에 대해 헤아리고 되새기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해 쉽게 잊어버리고 그냥 그렇게 없던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자칫 그런 은총을 받은 일이 있는가 싶을 정도마저 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렵고 힘겨울 때, 주님게서 베풀어주시고 함께해주시는 축복의 순간들을 잊어버리고 그로 인한 신뢰와 위기를 극복할 힘보다는 불평과 원망마저 퍼부으며 불안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우리가 회의를 할 때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마다,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베풀어주셨는지를, 우리 인생 안에서 헤아리고 되새기게 된다면, 우리의 생애는 기쁨에 넘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점철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남들에게 주어진 만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오늘 우리가 처리해야 할 일에 몰두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될수록 우리의 행복과 만족도는 높아질 것이고, 그에 따라 우리의 신앙도 주 하느님께 대한 친미와 감사로 깊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은총에 대한 되새김과 감사 없이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우리의 복음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부족한 것과 더 필요한 것을 찾아 헤매느라 기쁨과 만족보다는 아쉬움과 답답함,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더 커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대로이지만,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 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은총과 열매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의 삶은 주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를 봉헌하게 되고, 우리 자신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초대를 받아 그 집을 방문하십니다. 성경의 전통 안에서는 마르타와 마리아는 나병환자요 추후에 죽었다가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라자로의 남매들로 나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초대하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아주 바쁩니다.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며, 으레 그렇듯이 손님이 한 번 집을 방문할 때면 그야말로 집안은 전쟁터가 됩니다. 그런데 정작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오시자, 준비를 중단하고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맗씀을 듣”(루카 10,39)습니다.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는 마리아의 이런 모습을 발견하고는, 기가 차고 얄미운 생각마저 들어 예수님께 청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40) 오늘날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바쁘고 할 일이 태산 같은 데, 일부터 하지 않고 기도나 하고 앉아 있다니?!’ ‘지금 기도할 시간이 어디 있어, 한시라도 빨리 당장,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지!’ 우리는 말로는, 신앙으로는, ‘주님께서 주신 일이니, 주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 ‘주님께서 주신 일이니, 주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라고 되뇝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우리가 우리 뜻대로 하면서,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항변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잘 안 되면, 왜 우리가 주님의 복음 사업을 하는데, 주님께서 기적처럼 열매를 맺어주지 않으시는가? 우리가 주인이고, 우리가 행동 주체이며, 거꾸로 주님은 그저 협조자요 담보자로 격하시킨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41-42)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큰일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일하시는 분은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 일하시지만,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을 주님의 축복과 은총으로 열매 맺으십니다. 우리가 밤을 새워서 일한다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얼마나 열성적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어떤 이들은 쓸 데가 있으면 쓰다가, 쓸 데가 없어지면 버려지고 만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일하는 동안, 일할 수 있는 만큼만, 주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것 이외의 더 이상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복음 사업을 펼쳐 어느 정도의 실적을 이루셨는지 묻지 않으시고, 우리가 그 사업을 하면서 얼마나 주님과 형제자매들을 사랑했는지를 물으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대단한 성과와 큰 실적을 이루었다고 자평하여도, 그 일이 성취되기까지 섭섭함과 원망을 안고 헤어져 버린 사람들, 애를 쓰고 함께 일했지만 같이 기뻐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사람들, 잊혀져간 사람들, 그 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 자신의 헛된 기대와 과오가 원인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신앙을 잊어버리고 부정하게 된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그 모든 일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 복음 사업이 아니라 자칫 인간의 욕심으로 치러진 종교 사업이 될 수 있습니다.

 

늘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친 다음에 되새겨 봅시다.

오늘 주님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에 어떻게 함께하셨는가?

오늘 주님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에 어떤 은총을 베풀어주셨는가?

오늘 주님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에 어떤 열매를 맺어주셨는가?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에 대한 의식화 작업을 통해, 우리의 오늘이 주 하느님께 베풀어주신 은총에 대한 찬미와 감사로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에 대한 의식화로 인하여, 우리의 생이 기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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