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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성형수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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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2.110.203.*]

2014-05-24 ㅣ No.1061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중요한 것은 데레사 자매님의 어떠한 불의에도 굴하지 않는 항구한 기도 응원인 듯 합니다.

마더 데레사님의 "가난은 놀라운 은총입니다."의 메시지가 생각나는군요.

필자의 경우 재작년 하반기 고통으로 신음하던 친구를 작년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으나 영원한 친구로 응원할 것 이라던 메시지 떠올리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 때론 분노, 미움 등이 자연 발생할 것입니다. 불구하고 너그러운 마음 잃지 않으려는 자매님 마음을 높이 삽니다. 친구의 본 뜻은 나를 가장 오래된 벗으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은총아래 우리안의 영원한 동반일 것입니다. 오늘날 하느님 칼라 외사랑의 파란색, 친구 녹색, 사제와 수도자 검정색 보편 겸양 칼라가 온, 오프라인 친구 색갈로 펼쳐짐도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데레사 자매님의 친구에 대한 실망이 이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느껴짐은 왜일까요? 아마도 필자도 3개월만에 와이프 될 사람 꼬셔서 혼인성사 골인한 91년 식목일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인위적으로 그것을 조절하려 하지만 심지어 하느님께서 주신 크고 작은 생명 여탈권 갖으려는 생명경시, 물질주의 사회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 친구위한 크로스체크를 통한 십자가 묵상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마리아 부활하신 예수님 성전에서 되찾기 때문이지요.

 

아시다 시피 성형수술이라던가 약물 과용은 이나라의 세계 1위 낙태, 재왕절개율 조장하는 의사들의 배금주의 발상과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우리 자녀들과 친지들 바라보는 신앙인 입장에서는 2차적인 세계 2위 교통사고, 이혼율과도 연계된 현실 앞에서 그러한 단순 베드로과 친구 바라보며 바오로의 마음으로 신중해야 할 것은 비난 아닌 지금의 데레사 자매님의 올바른 비판 정신으로 그것을 타개해 나감이겠지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실망은 당분간 우리를 더 아프게도 할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보라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지요. 하지만 악인도 자녀을 사랑하는데 열쇠가 있기도 합니다.

 

필자는 무조건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일종의 방어책으로 우리가 나이 들수록 겸손과 섬김 자세를 회복하는 원리와 같은 것이라 봅니다. 악의 노예화 근성이라 할 수 있는 성형수술과 약물 과용으로 의존하는 수면 등을 아직도 철저히 배재하고픈 사람이지요. 그러나 사정상 수술과 약물 접하는 사람들과도 삶과 죽음 하나라는 법정스님 말씀대로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이며 실제 그렇게들 할 것입니다.

 

친구에겐 내색치 마시고 우리가 기도를 통해 150국가중 146위로 전락한 한국의 저 출산율을 보며 차제의 생명 탄생 또한 인위조절 하지 않도록 선도함이 어떨런지요? 방법은 부부 함께하는 미사 참례를 칭찬하고 응원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겉모습의 부부 동반 미사 참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의 남중 내편과 안의 해는 우리가 제 아무리 영육 성형수술을 한다 해도 때때로 첩첩 산중으로도 이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필자는 받아들이길 선호하다 보니 이듬해 성금요일 아들 탄생, 이태 후 예수 성명축일 외사랑 마지막 동행한 날 딸 태어난 영적 선물을 버팀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이날 1월 3일 아들 입대하여 아빠의 사라진 101여단 사령부내 101 대대 배치를 받기도 하였지요. 윤수일의 '아파트'라는 곡 나오던 해 그녀의 불꺼진 창 아파트는 3단지는 묵주기도를 통하여 지금의 어머니와의 27단지 아파트를 바라보게 됩니다.

 

거기에 외로운 벤치, 가로등 하나 있었는데 불가에서는 이를 윤회라고 하거나 업이라고도 하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권리는 부활로 이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만을 믿는다면 그대로 그렇게 사랑한다는 것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 없는 신앙인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주의는 다만 날개화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고 그것이 하느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돌아가는 귀로이기 때문이지요. 한편 적 그리스도의 교란으로 우리가 요새화 될 때도 있겠지요. 그럴땐 침묵으로 또한 겸손으로 재무장 함으로써 스스로를 풀어주어 가게하는 신호가 될 것입니다.

 

노래=인생 음치는 자기무시로 작가무시에 이르고 청중무시까지 답습하게 됩니다. 하지만 준비를 즐기는 사람은 노래 또한 못부르기가 더 어려워지지요. 친구의 경우 생각하기에 따라서 조력자인 것입니다.

 

친구와 더불어 팽목항 아직도 수장된 무명 순례 영혼과 박달나무 정원 단원고 교사와 아이들 영혼 부활 위해 우리가 함께 기도하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개신교인들 일부가 천주교인들의 성상 예배를 비난할 때 침묵과 겸손의 평화를 나누는 이들이 그것을 발전적 비판으로 받아들이듯, 여인이 화장을 하듯 다수 여인 왜 성형수술을 선호 하는지 함께하는 여정 은총화 이루어지길 빕니다.

 

아무튼 친구는 너그러운 데레사 자매님과 함께 온유와 적극적인 품성을 겸비한 듯 합니다. 어둠을 경계하며 칭찬과 영적 위로 전략을 병행해 보세요.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말이지요.

 

海棠 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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