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동성당 게시판

당신을 위해 비워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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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자 [tnbox.cho] 쪽지 캡슐

2000-09-18 ㅣ No.1693

당신을 위해 비워둔 집

 

 

-- 김승동

 

 

지붕이 있어도

빗물이 흘러내리는

벽이 있어도

바람이드는 집이 있습니다

 

불을 지펴도

허리춤에 성애가 피는

달빛이 넘어 들어와도

어둠만 가득한 집입니다

 

마당가 흰 철쭉 연산홍이

흐드러지게 눈부셔도

안개만 자욱한

사립문 열려 있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내 마음의 빈집입니다

 

 

***

지붕이 있어도 빗물이 흘러내리고 벽이 있어도 바람이 드는 집...

심각한 부실공사입니다.(?)

한 여름의 태풍과 폭우, 그리고 한 겨울의 폭설을

꿋꿋이 견뎌낼 만큼 튼튼해야 할 집이 이렇게 부실하니

아무리 진짜 집이 아니라 마음의 집이라 해도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진짜 집이 아니라 마음의 집이기에 더욱 큰일일 수도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태풍과 폭설에도 꿈쩍하지 않을 만큼

정말로 튼튼한 집을 가진 이는 그리 많지 않을 테지요.

작은 바람에도 쉽게 문이 흔들리고 잠시 동안의 공허함에도 어두운 그늘이 지고요.

그렇게 약하거나 외로움을 타는 것... 사람이기에 당연한 거겠죠.

하지만 그 모든 이유를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감내하기엔

왠지 서글픈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게 가슴 저린 공간을

시인은 누군가를 위해 비워 둔 집이라고 말합니다.

지붕이 있고 벽이 있고 마당이 있음에도 결국엔 무의미해진 집처럼

마음 하나 가득 삶의 이야기가 자리해도 그 누군가로 채워지지 않은 마음은

시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겠지요.

 

아마 시인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바쁜 일상을 살며 따뜻한 사람냄새를 잊어 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샌가 회색 빛으로 가득 차 버린 우리의 마음...

그 공간에 따뜻한 사람 하나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론 맘속의 그 사람으로 인해서 아프거나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 사람이 내 맘의 한 쪽에 자리하고 있음으로

내 마음이 아니 내 존재 자체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겠지요.

 

오늘은 맘속에 사람 하나 담아 보는 하루였음 합니다.

그래서 자칫 부실공사가 될 수도 있을 내 맘의 집이

따뜻함이란 이름으로 튼튼하게 자리할 수 있도록 요.

이미 사람 하나 가슴에 담고 계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의 집에 찾아가 보는 하루가 되세요.

서로의 마음의 집을 오가며 따뜻함을 나누는 오늘은

정말로 아름다울 거라 믿습니다.

 

아침하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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