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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수동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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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 [bechu5] 쪽지 캡슐

2001-08-18 ㅣ No.7930

 

제게는 제 나이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온 고물 수동 카메라가 한대.. 있습니다..

 

이 녀석은 20년을.. 조금 넘게 살아온...

 

제 모든 모습을 지켜봐 온 녀석이랍니다..

 

어머니 뱃속을 박차고 나왔을때부터 시작해서..

 

백일 돌때..

 

유치원 재롱잔치도 지켜봤고..

 

초등학교 입학식과..

 

매년 하는 소풍.. 그리고 운동회..

 

난생 첨이자 마지막으로 우등상 받은

 

4학년때도..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들과의

 

추억도...

 

고등학교 들어와서..

 

난생 처음 사랑이란 걸 해보고..

 

그애랑 함께 했던시간들..

 

 

고3

 

집안 사정 뻔히 알면서..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철없이 굴던 모습도..

 

결국 되진 못했지만...

 

 

 

이 고물 카메라은..

 

그저..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그 모습을 담아왔습니다..

 

마치... 항상 말없으신 아버지처럼여..

 

 

이 놈은 요즘 카메라들처럼..

 

자동 노출기능도.. 오토 포커스기능도.. 없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넘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 놈이 담아왔던 사진들을

 

보면.. 따뜻한 부모님의 눈길이 생생히 느껴집니다..

 

자식이 커가는 모습을

 

묵묵히 사랑으로 지켜보시는 눈길이요..

 

 

 

 

5년만에

 

이 놈을 쓸일이 생겨..

 

먼지가 잔뜩 쌓인.. 카메라 가방을 열었습니다..

 

아직 녹은 안슬었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과..

 

미쳐 현상 못한 필름들..

 

오래동안 연락 못한 친구를 보는 듯 했습니다...

 

어찌나 아련하고 미안하던지...

 

 

훗날..

 

장가를 가게 되고.. 제 자식이 생기면...

 

저도 이 고물 카메라로 제 자식의 모습을...

 

앨범에.. 아니 가슴에 담아 두렵니다...

 

 

말이 쓸때없이 많아진것 같네요..

 

 

행복하세요^^

 

 

-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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