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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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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숙 [mam] 쪽지 캡슐

1999-12-13 ㅣ No.2624

내 어릴 적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동화 작가가 되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는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 순수하고 고운 열망과 기쁨이 바쁜 생활 속에서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거, 그것은 어떤 글이든 써야 하고, 쓰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학교 생활에서 느끼는 것이 있는 날은 굿뉴스 게시판에 올려보기로 하였습니다.

 

 

 

좋은 선생이 되고 싶은 사람의 글 1.

 

 요즈음 서울 대학을 비롯하여 각 대학의 특차모집 원서를 쓰는 학생들이 있다.

논술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오니 작년에 졸업을 하고 재수를 한다던 제자 하나가 원서를 쓰고 있다. 반가웠고 어찌 지냈는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름을 부르니 고개를 드는데 낯빛이 밝다. 우선 안심이 되었다.

 " 지내기 어땠어?"

 " 잘 지냈습니다."

 " 점수는?( 표정이 안 좋았더라면 묻지 않았을 것이다.)"

 " ***점입니다."

 " 잘했구나."

 " 네 허리는 어떠냐?"

 " 1년 동안 축구는 포기했습니다."

 " 어떻게 참았니?"

 " ^ ^ ."

 

 반가웠다.

 자그마한 체구에 매우 다부져 보이고 운동을 좋아했으며 그 중에서도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아이였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한여름에도 5교시 시작 종이 치고나서야 온몸에 땀 투성이가 되어 들어오곤하였다. 긴장감을 없애기에는 좋은지 몰라도 정도가 심한 것 같았다. 가끔식 조금 삼가는 것이 어떠냐고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허리가 약한 놈이어서 여름 방학이 지나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수업을 듣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자세도 자세려니와 얼굴 표정에서 고통의 빛이 역력했다. 지켜보기가 안스러웠다. 그 녀석은 그래도 축구는 했다. 결국 그야말로 마지막 힘을 내야할 시기에 신체적인 고통이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내키지 않는 결과인 듯했고 재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다시 만난 그 녀석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자기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렇게 진심으로 충고를 해도 들은 척도 안하더니 제풀에 축구를 포기한 것이다. 물론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20살이 다된 장정들이지만) 거의 언제나 조바심과 노심초사로 마음이 좁아지고 선생인 나와 아이들이 다함께 속이 터질듯이 답답해지는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놈들아 내말을 들어라 왜 이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속을 썩이냐’면서 아이들 탓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 그런 조바심의 시간들은 이제 잘 되기를 기다리며 바라보아 주는 시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히려 내 딸이나 아들에게는 조금 느슨한 편인데 수업을 들어가면 많은 아이들이, 각 가정에서 부모들이 애지중지하는 많은 아이들이 내 말을 듣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조급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런 조급증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척 조심을 하는 편이기는 하다.

 이제 오늘 상휘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래, 잘 성장해 가기를 바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시간과 일만은 놓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가르치자.’라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멀리 북한산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그 녀석이 멋진 생각을,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시기를 놓치지 말고 꼭 차지하기를 바래본다.

 

                        199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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