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사순절을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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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martia04] 쪽지 캡슐

2000-03-22 ㅣ No.1411

Untitled

                                         사 순 절

    완연한 봄이다.  햇살이 어깨를 타고 온몸을 순환하며 봄의 노래를 부른다.

 

개구리와 함께 옷장의 봄옷들이 길고 긴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는, 나른하면서도 상쾌하고, 쌀쌀하면서도 포근한 기온 안에 주님의 평화 있으시길!

              지금은 반성과 자선의 사순절 주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되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우리의 헛된 아집과 독선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를 절실히 깨달을 때이다. 문득 마터 데레사 수녀님의 기도 한 구절을 묵상해 본다.

   "주여, 빈곤과 배고픔 속에서 살고 죽어 가는 온 세상에 산재해 있는 동료를 섬기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깨닫고자 노력하는 사랑으로써 그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가져오게 해주십시오."

   요즘 라면세대는 기성세대의 궁핍했던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칭찬도 여러번 하면 욕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재미도 없는 말, 그간 많이 들었을 터이니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상식을 초월한 사치와 낭비에서 문득 창조주께 두려움을 느낀다.

 50년대 전후시기를 청소년기로 보낸 이들은 대체로 찌든 가난의 악몽을 이마의 주름과 함께 고난의 흔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나는 겨울이면 해가 짧다하여 점심을 굶기가 일쑤였고 사시사철 허기져 있었다.  그런 우리 세대들은 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으며 열심히 일해왔다.  지금의 우리가 이만큼 설 수 있게 된 것은 60, 70년대의 공업화 추진에 힘입은 것이지만, 사실 그 혁혁한 공은 가난에 찌든 국면이 그 수렁에서 벗어나려 험한 일을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일해온 결과라 생각해도 과언은 아니다

 

   언제인가 오렌지족이 어떻고 야타, 너타 의 은어들로 지어진 족속들의 내용을 담은 신문 기사를 접했었다.  그들의 매달 용돈이 일반 국민들의 몇달치의 생활비에 버금간다는 말과 멀쩡한 부엌을 큰 돈을 들여 재설치하는 호기성 사치가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돌려, 미국 호프데이빗 미어스의 저서 ’행복의 추구’에서 인간은 돈을 벌면 벌수록 그들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양은 더욱 줄어든다 했다.

 또한 선진 산업국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빈민층 지역 사람들은 72%가 전체적으로 삶이 만족스럽다고 하는데 비해 부유층 지역 사람들의 경우 14%정도만이 이 같은 대답이었다고 한다.

   미어스는 ’많은 돈은 사람에게 주위 환경을 통제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은 주지만 행복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질의 부가 아니고 인간관계나 정신적 상태, 감정 같은 것들이며 이것들에 더욱 충실할 것’ 을 조언하고 있다.

 이 같은 말은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의 빈민층 이웃들에도 일두반분(一豆半分)의 삶이 깔려 있음을 볼 때 그의 말에 많은 부분을 동감한다.

   나는 얼마전까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러다 보니 간혹 손바닥을 내밀며 도움을 청해 오는분들이 있다.  그럴때마다 약소함을 알리고 정중히 대하도록 노력했다.

 나의 아내에게도 오늘 특히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발걸음이 많다하여 소홀함이 없도록 당부한 것은 내가 선해서가 절대 아니었다.

지난날 그런 분들을 홀대함으로써 생긴 감정의 메마름으로 사랑과 평화를 담을 그릇이 내 안에 자리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매사가 부정적이었으나 이제 마음을 달리하여 보잘 것 없는 선을 행함으로써 재물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평화와 감사함을 내 안에 머물게 하니, 나는 실상 그런 분들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다.

언뜻 일본의 옛이야기가 생각난다.  먼 옛날에 전국 최고의 무술과 지략을 겸비한 칼잡이 사무라이가 있었다. 그는 현실에도 지옥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한번 찾아가고 싶었으나 도대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옥을 아는 도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원천리 죽을 고생을 다하여 도사를 찾아갔다.

그는 도사에게 정중히 그간의 사연을 말하고 지옥을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 도사는 대뜸 눈알을 부라리며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욕설을 마구잡이로 퍼부어댔다.

 그는 도사의 안하무인의 행동에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단순에 도사의 목을 차려는 순간 도사가 말했다.

 

        "지옥은 바로 당신의 이 순간이요.

   나는 어릴 적 천당은 저 높은 하늘에, 지옥은 우리가 밟고 있는 깊은 땅속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겐 수십수천억광년의 우주를 품고 있으며, 그 무한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나의 천당과 지옥을 안고 우리의 ’거룩한’ 자유의지로 선과 악의 수없는 오르내림을 행하며 인생의 종점을 내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그 오르내림의 기록은 하느님의 몫이라 생각해 본다.

 이제 고난의 사순절이 종반으로 향해가고 있다. 신앙의 신비 빠스카를 묵상하며 인색한 극기를 행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부활이여, 어서 오소서. 평화와 사랑이여, 어서 오소서.

                                                                                                                                   

                                                                                                                                                                             - 사순시기에 안재홍 마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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