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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의 T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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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빠샤 [moon8484] 쪽지 캡슐

1999-10-11 ㅣ No.663

우리는 가끔 너무나 상식적이고 지극히 뻔한 결론들 때문에 구태의연한 삶을 맛보곤 합니다. 예를 들면 성적이 고민될 땐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되고, 친구와 싸웠을 땐 이유를 불문하고 먼저 화해를 청해야 하며, 부모님께는 불만이 있거나 말거나 효도를 해야 도리이고, 선생이란 존경받아 마땅한 대상이며 생활이 숨막히도록 내 목을 조여와도 탈선은 절대 해서는 안되며, 이성문제로 고민이 찾아와도 묵묵히 할 일을 하며 성인이 될 때까지 잘 참고 기다려야 하지요. 하하!! 이 결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가출을 하고, 폭주족이 되었거나 유흥가에서 삐끼를 하는 10대 청소년들도 이런 걸 모르지는 않습니다. 어른들과 대화를 하면 그들의 카운슬링은 늘 이 범주를 뱅뱅 돕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수님은 더한 것 같습니다. 우리를 바라보며 목을 길게 빼시고는 당신 뜻에 아-멘 이라고 고백하기를 초조히 기다리십니다.

얼마 전 TV광고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한 소녀가 어둠침침한 방에서 어항 속을 들여야 보는 모습, 어항은 깨지고 물고기는 쏟아지는 물과 함께 뛰쳐나가죠. 멍 뚫리고 텅 빈 어항을 소녀는 계속 바라봅니다.

물고기는 어항 속을 빙빙 돌다가 미쳤거나, 뛰쳐나가 메말라 죽거나, 운 좋게 연못가로 흘러  들어갔다면 생태계의 먹이사슬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야만 하겠죠. 광고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붕어는 왜 어항을 뛰쳐나가고 싶어했을까?’ (붕어는 어항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짝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교는 학생과 아주 친밀한 관계라 생각 하지만 그 당연함이 우리를 종종 숨막히게도 하나 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너무나 뻔한 질서들에 대해 우리는 갑갑함을 느낍니다. 대체 이런 이유 없는 반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만약에 부모님을 속이고, 학교를 땡땡이 치고, 인기 가수 콘서트 장에 가서 소리를 질러대는 우리에게 "이제부터 매주 월, 수, 금 오후5시부터 9시까지는 무조건 연예인들의 콘서트 장에 가서 소리를 질러라" 하고 법으로 정해 버린다면 우린 분명 그 규칙이 얼마 못 가 지겨워 질 것입니다. 아무리 좋고 원하던 것이라도 늘 한결같아야 한다면 어째 그건 좀 숨막히는 울타리가 되고 말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청소년의 시기는 아무래도 피 교육자의 위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이라고 하면 일단은 수험생의 학습기능과 같은 주입식 세뇌교육을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절대 아닙니다. 교육은 Education이라고 하는데 educate란 끄집어내어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꾸역꾸역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내재되어 있는 것을 우러나오게 하여 발산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교육이란 이렇게 고등동물인 인간을 환경적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좋은 도구입니다.

여기 좋은 예가 있습니다. 곧 데뷔를 앞둔 신인 댄스그룹, 그들은 매일같이 남산공원에 올라가서 훈련을 합니다. 과다한 운동량이 그들을 땀으로 목욕시킵니다. 댄스가수 하겠다고 체력 키우고, 폐활량을 늘이려고 뱃심을 키우는 복부운동을 하면서 끝내 힘겨워 엉엉 우는 그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참 아름답습니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그 힘든 훈련을 달갑게 받습니다. 그들은 그 훈련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입니다. 참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이렇게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도와주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교육을 받고 있다는 말인가요?" 음...글세... , 그 문제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군요.

암튼 제가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행동해야 함은 알지만 행동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뭔가가 싫고 답답하다면 조급해 하지 말고 잠시 머무르세요.

예수님은 우리가 하고 싶어 할 때까지 함께 머물러 기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빨간 불은 서라는 신호가 아니라 가지 말자는 약속입니다. 질서는 그런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 될 때까지 우리는 빨간 불이 짜증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이해되지도 않은 체 빨간 명령어에 굴복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인간 쫀심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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