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추석이면 떠오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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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학 [yhim] 쪽지 캡슐

2000-09-09 ㅣ No.5073

† 찬미 예수님

 

매년 추석이 되면 낡은 스크렙에서 꺼내 읽는 글이 있습니다.

명절 잘 보내시라는 말씀을 대신하여 옮겨 놓겠습니다.

 

산이 푸르렀다. 그러나 어머니를 찾는 내 마음은 가을단풍처럼 붉은 빛이라 생각하면서 줄지어선 묘지들을 비키며 산을 올라갔다.

얼마만인가, 어머니의 집을 찾은 것이. 부드러운 바람임에도 목덜미에 덮쳐 오는 바람이 누구의 꾸짖음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마음이야 그렇지 않았다. 내게 즐거운 일이 일어나도, 뜰에 튤립꽃 한 송이가 가슴을 열며 피어나는 작은 기쁨을 맛볼 때도 어머니를 생각했었다.

서러울 때는 더욱 그랬다. 이 세상에 두 다리 뻗으며 마음 놓고 부를 이름이 어머니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때로는 실로 견디기 힘들 때 어머니가 그리우면 나는 순간 수면제라도 먹고 어머니를 잊고 푹 자고 싶었다.

그때마다 달려가고 싶은 곳이 어머니가 누우신 경기도 광주의 공원묘지다.

 

"엄마!"

나는 야속한 듯 어머니를 불렀다. 나는 그 순간 어른도 아니다. 그냥 어머니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어린 아이의 가슴으로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다.

떠나가시고 14년, 눈물이야 나오겠느냐 싶었는데, 정작 엄마를 부르고 나서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몇가지 과일을 차려 놓고 절을 했을 때 어머니의 집 한 쪽은 진하게 눈물에 젖었다. 쉽게 그쳐지지 않았다.

그동안에 나는 참 외로웠을까.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서러움들이 어머니 앞에서 있는대로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것일까.

이 세상에 그런 일은 없을까. 죽은 사람을 정말로 보고 싶을 때는 내 생명을 한 1년 혹은 10년쯤 감소시키더라도 5분쯤 아니 30분쯤 만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나는 너무나 어머니가 보고싶어 그런 황당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엄마! 나 박사 됐어요, 엄마, 엉터리로 살아온 부분이 많은데, 박사라는 이름 참 부끄럽기도 해요, 그러나 엄마에게 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강렬했다구요. 저 이놈의 박사, 포기하고 싶을 때 많았어요. 진저리를 치며 그만 두고 싶을 때 많았다구요, 근데 엄마, 바로 이렇게 엄마 찾아와서 ’나 박사됐어요’ 이 한마디 하고 싶어서 죽을 고비 넘기며 해 내었던 거라구요.

고맙습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엄마. 오늘 여기 박사모를 엄마에게 바치며, 절하며 제 인생에 아름다운 한 때를 보냅니다.

 

       수년 전 여성동아에 실렸던 신달자 님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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