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홍석천의 Coming Out, 동성애에 관하여...

인쇄

신무승 [stpeter] 쪽지 캡슐

2000-10-02 ㅣ No.5138

토요일에 성당에 들렀다가, 몇몇 청년들과 술한잔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홍석천의 "Coming Out"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하는 것)과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상외로 청년들이 보수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아니 동성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제 견해가 옳다고는 저도 확신할 수 없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싫어해도 좋을 권리는 누구도 가질 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래는 한겨레에서 퍼온 들인데요. 저보다 더 조리있게 제 생각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옮겨 봅니다.

 

[의학외의의학]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견해

 

한마디로 동성애는 변태인가?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동성애는 절대로 변태가 아니다. 동성애가 변태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변태의 정의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신과 교과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 성적 행위가 상호참여자에 해롭지 않거나 아무런 강압 없이 서로 동의하는 성인사이에 이루어지거나, 원치 않는 관찰자에게 그 모습을 보이거나 듣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면 그런 행위를 성적 변태, 변이, 또는 도착이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이정균 정신의학 335 쪽에서 인용.

 

쉽게 말해서 성인 사이의 성관계에서 아무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변태가 아니다. 사실 변태란 말도 적당하지 않는 말이다. 의학적으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을 성장애라고 표현한다. 성장애중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을 변태라고 하며, 진짜 동성애는 성장애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동성애는 성관계를 가지더라도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더구나 동성애를 보통 성적인 관계로만 상상하는 것도 문제이다. 나와 같은 이성애자들 중에서도 이성을 좋아하는 마음을 모두 성적으로면 결부시킨다면 이것이 오히려 성장애나 변태로 갈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동성애에 반감을 가지는 이유중의 하나가 동성애를 모두 동성간의 성관계로만 보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동성애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오해가 동성애를 마치 선택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즉 동성애자는 자기 스스로 동성애자가 되고 싶어된다는 오해이다. 전세계적으로 동성애자의 인구는 약 4-10 %라고 한다. 이것이 유전인지 환경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환경의 영향도 일부분 인정되고는 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스스로 원해서 동성애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은 정설이다.

 

그리고 동성애자가 스스로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님은 어느 사회나 즉, 동성애자에게 관용적이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비관용적이거나 한 사회에서 동성애자의 비율이 4-10%로 거의 변함이 없이 비슷한 비율임에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증거는 동성애와 관계되어 중요한 말이 성적주체성(gender identity)의 핵(core)이라는 말인데, 이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 간직해야할 내적 확신을 말하며 2-3세에 확실해 진다. 2-3세에 확실해 지는 성적 주체성에서 어떻게 동성애자가 스스로 선택해서 동성애자가 될 수 있겠는가?

 

동성애와 결부되어 왜 지금 동성애가 문제인가, 다시 말해 왜 동성애자가 밀실을 뛰쳐나오고 (coming out), 나올 수 있는가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이해 할 필요도 있다. 시대나 사회를 불문하고 동성애자의 비율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다만, 지난 시대에서는 동성애자는 엄청난 억압을 받아왔고, 아직도 종교적인 사회의 일부에서는 동성애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현대에 이르러 동성애자가 많아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아진 것이 아니라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 나타났을 뿐이다. 과거에 동성애자를 억압한 이유는 출산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근세이전의 사회는 생산력과의 관계에서 토지는 거의 무한대였으므로 인구가 곧 국력이었다. 인구가 곧 국력이었으므로 출산을 장려할 수밖에 없었고 동성애는 인구의 증가를 막는 행위이므로 금기로 억압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더 이상 인구가 국력이 아니다. 그럼으로 동성애자들을 억압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고 동성애에 대한 금기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성애자들은 밀실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며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동성애=비정상, 변태로 보는 시각은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단순히 사회의 필요에 의해 억압 받아온 것에 불과한 것이다. 동성애에 관용적이 되면 동성애자가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오해와 무지에 기인한 것이다.

 

또 하나 동성애가 자연스럽지 않는 것이라는 면에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의 정의도 문제이거니와 동성애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도 증명된 바가 없다. 장애자로 태어난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본다면, 물론 동성애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장애자든 동성애자든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넓은 생물계에서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성적 취향을 가지고 태어나든 태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동성애가 스스로 선택해서 되는 것이 아닌 이상, 동성애를 자연스럽지 않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움에 대한 오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왜 동성애의 문제가 인권의 문제인가는 명확해진다. 즉, 인간은 모두 평등해야 한다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성적 주체성의 문제로 차별을 받는 것은 인권에 대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 감사한다. 이유는 동성애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동성애를 싫어한다. 솔직히 동성애에 대한 내 감정은 혐오에 가깝다. 그리고 홍석천씨도 싫어한다. 그러나 싫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이성의 명령으로 나는 동성애와 동성애자들, 그리고 홍석천씨를 위해 말한다. 동성애자도 인간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성애자를 내버려두라.

 

이미 성적 정체성의 혼란으로 극한에 이르는 고통을 겪어왔고 겪어가는 동성애자들을 더이상 괴롭히지 말라. 이것이 내 감정에 반하는 이성의 외침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 나는 당신의 견해를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그런 견해를 말할 자유를 위해 나는 싸울 것이다." 동성애 혐오자들이여 싫은 것과 잘못된 것의 차이를 깨닫기를.



5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