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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라는 말씀에 대하여 [신앙생활글] [인터넷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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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31-08.03 [69.162.49.*]

2006-08-04 ㅣ No.619

[원 게시처: 굿뉴스 성경 묻고 답하기, 제 1735 게시글]

 

Q.

 

질문일자: 2006-07-30 오후 12:39:24

 

마태오 복음 15장 26절에 가나안 부인이 예수님께 딸의 몸에서 마귀를 쫓아 내어달라고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은 이방인은 치료해 주기를 거부하시는 겁니까?

다른 부분에서는 많은 이들을 치료해 주시는 걸로 보였는데

갑자기 이 장을 읽으며 혼란스럽습니다.

믿음 깊으신 분의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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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6/07/31)

다음은, 마태오 복음 15장 26절에 대한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공인성경(NAB) 주해입니다.


[15:26] The children: the people of Israel. Dogs: see the note on Matthew 7:6. 즉, 이 구절에서 "자녀"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마태오 7장 6절 영문 주해입니다.


[7:6] Dogs and swine were Jewish terms of contempt for Gentiles. This saying may originally have derived from a Jewish Christian community opposed to preaching the gospel (what is holy, pearls) to Gentiles. In the light of Matthew 28:19 that can hardly be Matthew's meaning. He may have taken the saying as applying to a Christian dealing with an obstinately impenitent fellow Christian (Matthew 18:17).

 

최근에 번역된 우리말 가톨릭 성경에 주해가 담긴 것이 언제쯤 발간될 지 저도 모르고 있는데, NAB 영어 성경의 주해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하여 댓글 달아 보았습니다.


영어성경공부 까페로 바로가기.. (클릭하세요)

 

또 위에서와 같이 NAB 주해에 의하면, 이 구절의 "강아지"는 "(주님께 인색하여) 고집피우면서 회개하지 않는 동료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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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희(agros) (2006/08/01) : ^^예수님께서는 무작정 치유해 주시지 않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치유자의 믿음 상태를 헤아려 보시고 치유해 주셨지요. 여기서도 가나안 부인의 믿음을 드러내 주기를 바라면서 내심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흐뭇해 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나 할까. 아주 짖꿎어 보이시기까지 한.. 그러나 너무나 너그러우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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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동(kw0218) (2006/08/02) : 여러 선배님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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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계속)

 

(2006/08/03)

다른 분들께서 주신 답글의 결론은 맞으나, 질문 주신 구절의 앞, 뒤 구절의 내용도 함께 생각하며 말씀 주신 답글의 중간 전개 과정의 서술 부분에 상당한 내용 보강을 할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즉, 가나안 지역(Canaan) 과 가나안 사람(Canaanite)에 대하여..

 

그러기 위하여, (요즈음 제가 조금 바빠서 드리는 부탁입니다만) 우선 지중해 동부 해변가에 위치한 티로(Tyre) 와 시돈(Sidon) 이라고 불리는 두 도시의 역사에 대하여 잘 아시는 분께서 말씀을 좀 자세하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 또한 가나안 지역에 속하므로, "가나안을 이방인으로 불렀다"고 인용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할 것입니다.

 

가질 수 있는 다른 의문점 한가지 입니다만,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당시에 열혈당(Zealots) 이라고 불렸던 과격한 정치 단체에 속한 제자가 있기에 (마태오 10장 4절, 열혈당원 시몬, Simon the Canaanite), 질문자가 언급한 "가나안 여인"이 혹시 이 두 도시 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으로서 열혈당의 구성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여성의 가정 밖의 사회 참여 등과 관련하여) 그 당시 사회의 관습 관계로 전혀 아닌 듯 합니다.

 

     따라서 이 가능성을 배제하면, 티로 및 시돈 두 도시가 포함된 지역의 역사 그리고 구약 이전 시절, 구약 시절, 및 신약 시절 각 각 이 지역에 살았던 가나안 사람들이 유대인들과 어떤 관계를 가졌고 또 어떤 면에서 문화적으로 달랐던지 등 등에 대하여 이해를 하면, "티로와 시돈 지역에서 온 가나안 여인"의 정체성, 즉 "이방인이냐 아니냐, 그리고 만약에 이방인이라면 종교적으로 유대인과 어떤 다른 풍습을 가진 이방인이냐?" 등 등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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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 글의 맨 아래에 있는, 마태오 복음서 15,21-28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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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지중해 동부 지역과 그 지역에 산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질문자께서 주신 구절의 앞, 뒤 구절들, 그리고 사도행전의 말씀들, 더 나아가, 초대 교회 시절의 박해의 역사 등 등을 다 함께 고찰하면, 질문자께서 주신 그 구절이 포함된, "가나안 여인의 믿음" 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부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긴 소리를 하는 이유는, 이방인에 대한 복음 선포가, 사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즉 예수님을 메시아로) 신앙 고백하며 자진 참여한 한 이방인 여인에 의하여 시작된 점이 바로 이 대목에, 즉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관한 기록은 신약 마르코 복음서 7:24-30 및 마태오 복음서 15:21-28 두 곳에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나라와는 달리 선교사파견 없이 자생한 우리나라의 천주교의 혹독한 박해로 이어지는 비통한 역사 때문에라도, 잘 묵상하여야 할 구절 같습니다.

 

마르코 및 마태오 이들 두 복음서의 "가나안 여인의 믿음" 에 관한 기록 및 그리고 사도행전의 10 - 15장에 걸쳐 기록된 내용이, 초대교회 초창기에 유대인 전교 다음으로 이방인(Gentile) 전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에서 백인대장 (= 로마군대 백명의 병사의 대장) 코르렐리우스 및 사도 베드로가 (하느님의 거룩한 의지가 드러난) 환시를 각 각 경험한 다음에,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 사도를 초청하였고 또 베드로 사도는 이를 수락, 방문하여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유대인의 메시아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천주의 지고한 인류 구원의 의지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점진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사실, 가해 (즉, 년도를 3으로 나누었을 때에 숫자 1 이 남는 해) 연중 제20주일 (예를 들어, 2005넌 8월 14일)의 복음 말씀이 바로 마태오 복음서 15장 21-28절이고 또 이 복음 말씀을 지지하는 그 날의 말씀의 전례가 제 1독서: (구약) 이사야서 제 56장 1절, 6-7절, 제2독서: (신약) 로마서 제 11장 13-14절 및 29-32절이므로, 이들 말씀들을 추가로 읽어 보시면, 하느님의 인류 구원에 관한 거룩한 의지가 신.구약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더 폭넓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듯 싶습니다.

 

참고로 영어 듣기가 수월하신 분들을 위하여 알려드립니다만, 여기를 클릭하시면, 미국의 EWTN-TV에서 제공하는 가해 연중 제20주일인 2005년 8월 14일자 말씀의 전례, 화답송, 복음환호송, 복음말씀(마태오 15장 21-28절), 그리고 강론말씀을 들으실 수 있겠습니다.

 

이때,
여기를 클릭하고 들어가, Readings for Mass 다음에 위치한 네 개의 링크를 각각 클릭하면, 영문으로 된 제1독서, 화답송, 제2독서, 및 복음말씀 본문(Text)들을 모두 접할 수 있겠습니다. (클릭하세요)

이와 같이, 평소 성경 공부시에 NAB성경을 참고하면, 여러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실 질문자께서 질문을 주신 마태오 복음서의 그 구절은, 주로 유대인들을 개종시기키 위하여 저술된 복음서가 마태오 복음서이기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는 첫 예로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언급하는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거부하는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로마서 제 11장 13-14절 및 29-32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주님께 인색하여) 고집피우면서 회개하지 않는 동료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의 "강아지"라는 비유를 예수님께서 함으로써, "하물며 이렇게 이방인마저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데.." 하는 방식으로, 즉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이례적인 혹은 역설적인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유대인의 개종을 압박하는 구절이기도 하므로, 마태오 복음서의 주된 목적을 충분히 감안한 NAB 성경의 그 구절에서의 "강아지"에 대한 주석이, 위와 같이 주어져 있는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들이 대부분 비유인데, 특히 "가나안 여인의 믿음" 구절에 와서 당신 말씀의 심오한 깊이를 느낄 수 있기도 한 부분입니다.

 

사실, 우리가 미사 중에 듣게 되는 말씀의 전례 및 강론말씀들 자체가, 미사 중에 앞 뒤 내용을 잘 귀담아 새겨 듣기만 하면, 우리들로 하여금 성경공부를 저절로 할 수 있도록 가톨릭 교회가 깊이 배려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하여서도 드리는 저의 호소이기도 하오니, 이 점 또한 꼭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즉 쉽게 짧게 말하여, 미사 중에 절대로 딴 생각 하거나 졸지 말고 열심히 경청하고 묵상하자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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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agros) (2006/08/03) : 훌륭하십니다. 그렇지만 답글은 답글대로 놔두시고 형제님의 이야기를 또 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뭐, 아마추어들이 정답을 이야기했겠어요? 그저 느낌과 신앙생활하면서의 예수님을 이야기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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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계속)

 

끝으로, 성경 말씀에 대한 해석권이 없는 평신자가 (즉 가톨릭 교회의 사제가 아닌 자가) 평소에 성경 말씀을 여기 저기에서 임의적으로 떼어내어 인용하면서 다른 분들에게 "이건 이렇고 또 저건 저렇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자칫 주님 보시기에 부적절하고 또 주님께 대한 교만일 수도 있다고 깊이 느껴 알고 있기에, 이번의 위의 글들 중에서 미흡 혹은 잘못된 부분은 모두 저의 것이고 좋은 것들은 모두 천주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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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록(wkdwjdfhr) (2006/08/03) :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오래 오래 머물러 주십시요. 항상 배우는 자세로, 낮은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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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3년 3월 17일]

마태오 복음서 15,21-28은, 가톨릭 교회 전례력에 있어, 매년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마태오 복음서 15,21-28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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