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성 토마스 아퀴나스: 가톨릭 신학은 과학 [교리학습][성경해석][성서신학] 782_

인쇄

. [218.55.90.*]

2014-02-15 ㅣ No.1523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성경을 또한 연구하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은 과학(Science)일까요 아닐까요?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다음은 어떤 가톨릭 신자가 주장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성경은 과학의 언어로만 쓰여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시길 기도합니다]
(이상, 발췌 끝).

 

<----- 그렇다면, 성경이 아무런 내용도 없고 수사학적 언어의 유희들만으로 쓰여졌다는 것인지요???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오로지 수사학적 강조 그 자체으로부터, 논리적(logically), 윤리적(morally), 혹은 형이상학적(metaphysical/ontological) 참(true)인 바는 결코 도출될 수 없음을 부디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서 신학(Biblical Theology)"이라는 과학/학문 분야의 명칭에서, "신학(theology)"은 한 개의 과학/학문(science) 입니다.

 

그리고 특히 구약 성경 본문은, 소위 말하는 의인관(擬人觀, anthropomorphism)(*)에 따른 인간들의 언어로, 즉, 피조물인 인간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기록되었기에, 성경 본문 중에는 피조물인 인간들의, 우상 숭배 등의, 미신(superstition) 행위들에 관한 내용도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에 있는 NAB의 스바니야서 입문을 읽어 보십시오: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UG.HTM

 

그리고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superstition(미신)"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www.newadvent.org/cathen/14339a.htm

 

-----

(*) 게시자 주: 의인관(擬人觀, anthropomorphism)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06.htm <----- 필독 권고

-----

 

따라서, 이러한 미신(superstition) 행위들들을 엄밀하게 가려내어 신앙 생활 전반에서 제거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일 때문에라도 소위 말하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이라는 과학(학문, science)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2.

2-1.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science(과학/학문)"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의 제2-1항에 주어져 있는, 그리고 역시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intellectual virtues(지성덕들)"에 대한 설명 중에 주어져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21.htm <----- 필독 권고

 

2-2.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앞 부분에서, 가톨릭 그리스도교의 신학이 과학/학문(Science)임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2011년 6월 8일자 글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60.htm <----- 필독 권고

 

2-3. 또한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theology(신학)" 라는 용어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t/t074.htm

(발췌 시작)

THEOLOGY

신학(theology)

 

Literally "the science of God," used by the Stoics in the third century B.C. to describe a reasoned analysis of the deity. Earlier uses were more naturalistic. Thus, Plato in the Republic and Aristotle in his Metaphysics called Homer, Hesiod, and Orpheus theologians because they first determined the genealogies and attributes of the gods.

 

신격(the deity)에 대한 어떤 사리에 맞는(reasoned) 분석을 서술하기 위하여, 기원전 3세기에 스토아 철학자(the Stoics)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던, 글자 그대로 "하느님에 대한 과학/학문(science)"(*)을 말합니다. 초기의 사용들은 더 자연주의적(naturalistic)이었습니다. 따라서, 플라톤(Plato)은 [자신의 저술인] 국가(the Republic)에서 그리고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은 자신의 [저술인] 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일리아드(Iliad)와 오딧세이(Odyssey)의 작자라고 알려진 그리스의 서사 시인인] 호메로스(Homer), (기원전 8세기경의 그리스 시인인) 헤시오도스(Hesido), 그리고 (무생물까지도 감동시켰다는 하프의 명수인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Orpheus)를 신학자(theologians)들이라고 불렀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처음으로 잡신(gods)들의 계보(genealogies)들과 속성(attributes)들을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

(*) 번역자 주: 과학/학문(scien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의 제2-1항에 주어져 있는, 그리고 역시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intellectual virtues(지성덕들)"에 대한 설명 중에 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21.htm <----- 필독 권고

-----

 

With the advent of Christianity, theology came to mean what its etymology suggested, and was defined by St. Augustine as "reasoning or discourse about the divinity." Through the patristic age to the period of the Schoolmen, this remained the acceptable generic meaning. Peter Abelard (1079-1142) is credited with first having used the tern in its modern connotation. St. Thomas Aquinas (1225-74) defended theology as a science because it investigates the contents of belief by means of reason enlightened by faith (fides quaerens intellectum), in order to acquire a deeper understanding on revelation. He also distinguished theology proper from "natural theology" or what Gottfried Leibniz later called "theodicy," which studies God as knowable by reason alone and independent of divine authority. Since the thirteenth century the term has been applied to the whole study of revealed truth and gradually replaced its rival synonyms. (Etym. Latin theologia; from Greek: theo, God + -logia, knowledge.)

 

그리스도교의 도래와 함께, 신학은 그 어원이 제시하는 바를 결국 의미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에 의하여 "신성(divinity)에 관한 추론 행위(reasoning) 혹은 논술(discourse)" 로서 정의되었습니다(was defined).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시대(the patristic age)를 거쳐 스콜라 철학자(the Schoolmen)들의 시기까지, 바로 이 정의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반적인 의미로 남아있었습니다. Peter Abelard(1079-1142년)는 이 용어를, 이 용어의 현대의 함축(connotation) 안에서 첫 번째로 사용해 왔다고 생각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 신학(theology)을 한 개의 과학/학문으로서 옹호하였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계시(revelation)에 대한 어떤 더 깊은 이해를 획득하기 위하여, [세 개의 향주삼덕(three theologic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그리하여 세례시에 처음으로 하느님에 의하여 세례자의 영혼에 성화은총(sanctifying grace)과 함께 주입되는 초자연덕(supernatural virtue)인] 신덕/믿음(faith)에 의하여 교화된(enlightened) 지성/이성(reason)에 의하여(by means of)(fides quaerens intellectum), 신념/믿음(belief)의 내용들을 연구하기(investigates)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고유한 신학(theology proper)"자연 신학(natural theology)" 혹은 이후에 고트프리드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가, 이성만으로 알 수 있는 그리고 하느님의 권위에 대하여 독립적인 것으로서 하느님을 학습하는, "신정론(神正論, theodicy)" 이라고 불렀던 바로부터 구분하였습니다. 13세기 이후로 이 용어는 계시된 진리에 대한 전체 학습에 적용되어 왔으며 그리고 점진적으로 그 경쟁하는 동의어들을 대신하였습니다(replaced). [어원. Latin theologia; from Greek: theo, 하느님(God) + -logia, 지식(knowledge).]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4. 그리고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biblical theology(성서 신학)"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b/b112.htm

(발췌 시작)
BIBLICAL THEOLOGY

성서 신학(biblical theology)

 

Systematic exposition of the teachings of the Bible. There are two principal forms of biblical theology. One stresses subordination to Christian dogmatics. It works through the material furnished by exegesis, correlates ideas with facts, synthesizes them on the basis of an organic principle consistent with their nature and respective value, and places them into the stream of the history of revelation.

 

성경의 가르침들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exposition)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성서 신학의 두 개의 주된 형태들이 있습니다. 성서 신학의 한 형태는 그리스도교 교의학(dogmatics)들에 대한 종속을 강조합니다. 이 형태는 (성경 본문에 대한) 주석(exegesis)에 의하여 공급되는 질료(material)를 통하여 일을 하고, 관념(ideas)들과 사실(facts)들을 서로 관련시키며, 그들의 본성 및 각각의 가치와 모순이 없는 어떤 유기적인 원리를 기초로 하여 그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synthesizes), 그리고 그들을 계시(revelation)의 역사라는 흐름 안쪽에 자리를 잡아 줍니다.

 

The other form of biblical theology sees the development of exegesis into theology as the work of reason enlightened by faith. Its purpose is to enter, through grace, into more intimate contact with transcendent reality as revealed in the sacred text. In this sense biblical theology is an ideal that always tends toward a goal without stopping at the results already achieved.

 

성서 신학의 다른 형태는, [세 개의 향주삼덕(three theologic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그리하여 세례시에 처음으로 하느님에 의하여 세례자의 영혼에 성화은총(sanctifying grace)과 함께 주입되는 초자연덕(supernatural virtue)인] 신덕(faith)에 의하여 교화된 이성(reason)의 일로서, 신학 안쪽으로 (성경 본문에 대한) 주석(exegesis)의 발전을 봅니다. 그 목적은 성스러운 본문에 드러내어진 바대로의 초월적 실재(transcendent reality)와 더 많은 친밀한 접촉 안쪽으로, 은총을 통하여, 들어가는 데에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 있어 성서 신학은, 이미 성취된 결과들에서 중단 없이, 어떤 목표를 향하여 항상 기울어지는 경항이 있는 어떤 이상(an ideal)입니다.

 

The two forms of biblical theology, as auxiliary to dogma and as instrument to religious insight, are not incompatible. They are mutually conducive to heighten the value of both Scripture and dogma, by integrating two areas of religious knowledge which derive from a common, divine source.

 

교의(dogma)에 보조적인 것으로서 그리고 경신덕적 통찰(religious insight)에 대한 도구로서, 성서 신학의 두 형태들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incompatible) 아닙니다. 그들은, 한 개의 공통적인, 하느님에 기인하는 원천(divine source)으로부터 유래하는 경신덕적 지식(religious knowledge)의 두 개의 영역들을 통합함으로써, 성경과 교의 둘 다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상호 도움이 됩니다(conducive to).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3-1. "성경 본문의 영성적 의미(spiritual senses)들은,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에 반드시 근거하여야 한다"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르쳤으며, 바로 이 가르침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9-119항"에 발췌되어 그대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2010년 10월 5일자 글의 제5항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64.htm <----- 필독 권고

 

바로 위의 주소를 클릭하여 제5항 전문을 읽은 후에, 출처 2에 주어진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당 항들로의 링크를 클릭하여 나머지 부분을 읽도록 하십시오.

3-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있을 글을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읽어보실 것을 또한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9.htm  <----- 필독 권고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3시간

 



991 2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