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잊을 수 없는 플래카드

인쇄

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14 ㅣ No.5439

 

첫 아기가 막 돌을 지날 무렵의 일입니다.

만년직업군인인 나는 군대 훈련장에서 다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수술경과도 좋고 회복도 빨랐지만 아내에겐 남편의 사고 소식이 청천벽력이었던 모양입니다.

"여보. 어떻게 된거야?"

"호들갑떨 거 없어.. 다 나아가니까. 으차. 우리 아들 왔어?"

아이를 들쳐 업고 달려온 아내는 연신 눈물만 훔치다가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말에 병실을 나섰습니다.

한참 뒤 지금쯤은 갔겠지 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아내가 병실 모퉁이에 서서 혹시라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고개를 늘여빼고 서 있었습니다.

"아니 저 사람이....!"

남편을 차디찬 병실에 두고 돌아가려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던 것입니다.

며칠 뒤 튀원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나는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목발을 짚은 해 아내가 나와 있기로 한 버스터미널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아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늦을 사람이 아닌데...!"

잘못봤나 싶어서 터미널을 한 바퀴 다시 도는데 대합실 한귀퉁이에서 낯익은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터미널 모서리 기둥에 기댄 채 졸고 있는 모자. 아내와 돌배기 아들이었습니다.

늦지 않으려고 새벽차를 타고 와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정광식 우리 아빠 파이팅!’

시골집 벽에 붙어 있던 철 지난 달력을 오려 만든 환영 플래카드였습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나는 목발을 던지고 다가가 졸던 아내가 놀라 깰만큼 와락 두 사람을 끌어안았습니다.

 



5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