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듣지 못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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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16 ㅣ No.5445

 

그는 뇌질환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는 중환자였습니다.

나는 회진할 때마다 그에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져 그의 기억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자.. 다음 질문. 여기 이 분이 누구죠?"

이 대목에서 그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내가 지옥에 가서도 알아볼 우일한 사람이죠. 내 사랑하는 아내."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마음이 턱 놓였고 그의 아내도 여왕처럼 환한 미소를 보이며 행복해 했습니다.

"딩동댕! 하하하 정답입니다.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으시네요."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의 병세는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악화되어 갔습니다.

어떤 날은 거의 종일이라고 할 만큼, 긴 잠에 빠져 깨어날 줄을 몰랐고 어떤 날을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환자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똑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여기.. 이분이 누구죠?"

환자는 퀭한 눈을 깜박이며 가쁜 숨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옥에서도 알아볼 유일한 사람...."

그 다정한 한마디를 듣고 싶은 아내의 목 타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퀭한 눈을 자꾸만 깜박일 뿐, 끝내 대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보.. 여보 여보."

나는 여자의 그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깊은 죄책감을 안은 채 병실로 나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어보지 말 걸. 얼마나 후회가 컸던지....

그날 밤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그 뒤 다시는 그 부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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